[국내뉴스]
<남극일기> 남극, 그 차가운 밀실병동
2005-05-13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극지’라는 말에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게 있다. 태고의 순수를 간직한 듯한 신비로움과 사람들의 출입을 거부하는 완고함은 순연한 의미의 ‘정복욕’을 자극한다. 우주선을 띄우고 위성으로 전세계의 풍경을 방 안에서 지켜보는 세상이 됐어도 탐험가들의 극지 정복기가 주는 감동은 바래지 않는다. 사람을 거부하는 자연의 힘에 맞서 싸워 승리하는 탐험기는 그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다. <남극일기>의 출발도 남극점이라는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사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모습을 드러내야 할 ‘승리’의 고지는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진다. 영화 초반 순백으로 펼쳐졌던 광활한 설원은 뒤로 갈수록 좁은 병원 복도처럼 싸늘하게 푸른 기운을 드러내며 옥죄어 온다. <남극일기>는 이처럼 공간의 전형성을 뒤집으면서 기존의 탐험 드라마가 가는 길과 다른 고지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영화가 꽂는 깃발은 정복이나 승리가 아니라 엇나간 욕망, 또는 거대한 환상이다.

도달불능점. 남극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이 지점은 1958년 소련탐험대에게 단 한차례 정복을 허용했을 뿐,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곳이다. 최도형(송강호)이 이끄는 한국의 탐험대 6명은 세계 최초 무보급 횡단으로 도달불능점 정복에 나선다. 6개월간 이어지는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 대원들은 초조한 마음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지만 감기 바이러스가 살 수 없는 온도에서 감기몸살 증상을 보이는 대원 한명의 낙오와 80여 년전 이곳에서 사망한 영국 탐험대원의 일기를 발견하며 혼란과 공포에 빠지기 시작한다.

바이러스도 얼리는 빙점의 땅
정복욕마저 광기로 변질된다.
첫 낙오자와 80년전의 일기…
6인 탐험대를 둘러싼 미스터리


미스터리 장르를 표방한 <남극일기>에서 남극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에 가깝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시선 가운데 상당 부분이 남극의 시선이다. 대원들이 텐트 안에서 잡담을 할 때 작은 창으로 이들을 은밀히 엿보고, 시시때때로 눈폭풍을 일으키며 대원들이 두려움에 얼어붙은 모습을 즐기는 듯 지켜본다. 남극의 시선은 종종 이 곳에 오기 전 추락사한 도형의 아들 시선으로 환치되며 공포감을 확대한다.

영화에서 공포를 관장하는 것이 남극이라면 인간들이 보여주는 건 자연의 농락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이성이다. 엄격하지만 듬직한 아버지 같던 대장 도형은 자연의 파괴력과 실종, 죽음 같은 사건으로 인해 다른 대원들이 약해질수록 더 강해져 간다. 아니, 강해지는 게 아니라 미쳐간다. 그는 돌아가는 길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통신도구를 망가뜨리고 앞장서 걷기만 한다. 격렬한 고함이나 큰 동작 없이 간결한 대사와 순간의 눈빛만으로 광기를 번득이는 송강호의 연기는 보기 드문 명연이다.


<남극일기>는 6년의 제작기간, 85억원의 제작비로 완성된 임필성 감독의 첫연출작이다. 첫대원의 실종이나 일기의 행방 등 영화의 중간중간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마디가 허술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남극일기>에는 미덕이 더 많다. 남극이라는 장소를 단순히 시각적 쾌감의 극대화를 위한 오브제로 사용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넓은 설원을 세상에서 가장 좁은 밀실로 바꿔내는 연출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며, 상투적인 정복 드라마의 유혹을 떨궈낸 점도 신인감독으로 가기 힘든 결단으로 보인다. 더불어 <공각기동대> <링2>의 음악을 만들었던 가와이 겐지가 선사하는 웅장하면서도 서늘한 음악은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19일 개봉.

“모비딕의 선장 같은 인물 그리고 싶었다”

임필성 감독 인터뷰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

“아직도 안 끝난 거 같아요.” 촬영만 9개월, 전체 준비기간 6년. 함께 데뷔를 준비하던 류승완 감독은 벌써 세편의 영화를 개봉했고, 막바지 촬영 도중 김지운 감독으로부터 “서울이 남극으로 변할 때까지 찍으려고 하느냐”는 말을 들으며 <남극일기>를 완성한 임필성(33) 감독은 개봉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99년부터 제작사를 세 군데나 옮겨다니면서 온통 머릿 속에는 <남극일기> 생각 뿐이었으니 빠져나오는 데도 시간이 걸릴 법하다.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 출신인 임 감독은 98년 연출한 단편 <소년기>로 부산 단편영화제를 비롯해 클레르몽 페랑, 시카고 등 국제 단편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99년작 <베이비>도 카를로비바리, 베니스 등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 출품됐다. <남극일기>는 단편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충무로의 유망주로 떠오르던 99년 가을부터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갔다.

임 감독은 “내가 좀 더 현실적이었다면 첫 영화로 이런 대작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남들 서너 작품 하면서 할 고생을 한 번에 한 게 엄청난 훈련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남극일기>의 모티브는 10대 시절 감동적으로 읽었던 소설 『모비딕』(백경)이다. “『모비딕』의 에이허브 선장 같은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 그의 목표에 대한 집착이나 광기의 이유는 실마리만 건네질 뿐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게 매력이었고, 광기라 하더라도 그 투지가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강해질 때 어떤 숭고함이 느껴진다. 에이허브 선장은 도형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사실 도달불능점은 어떤 장소라기보다 도형이라는 인물 그 자체다.”

“예민하고 변덕 심한” 감독이 현장에서 새로운 걸 주문하면 투덜거리면서도 끝내 준비해내는 한국 스태프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룰에서 움직이는 뉴질랜드 현지 스태프들과의 실랑이는 여러 잡지에 공개된 제작일지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야기. “내가 만날 뉴질랜드 스태프들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왜 안 해주냐 떼를 쓰니까 현지 제작실장이 뉴질랜드에서 그렇게 영화 찍는 사람은 피터 잭슨밖에 없다고 했다, 아마도 나쁜 의미로 ‘한국의 피터 잭슨’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것”이라지만 피터 잭슨의 팬이고 외모도 피터 잭슨과 많이 닮은 그로서는 싫지 않았던 눈치다. 결과적으로 모두와 악수를 하게 됐지만 뉴질랜드 촬영 당시 툭하면 촬영이 지연되면서 거의 영화 속 도형처럼 미쳐가는 기분이었다는 그는 주인공 송강호와의 사적인 대화자리에서 “영화의 끝을 보기 위해서라면 내 팔 다리를 다 잘라서라도 기어가고 싶다”고 토로해 송강호의 연기에 ‘본의 아닌’ 영감을 주기도 했다고.

그는 <남극일기>를 “극단적인 영화”라고 표현했다. “나름대로 대중의 시선을 끄는 장르적 코드들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남극을 아름다운 자연으로 그리지 않고 극한의 공포스러운 풍경으로 묘사하면서 그 차가운 느낌을 끝까지 밀어붙이려고 했다”며 “관객의 취향에 따라 반응이 갈릴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이 차(영화)에 흔쾌히 올라탄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달리는 느낌으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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