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 이튿날, 리비에라 해변으로부터 차로 20여분 떨어진 작은 마을의 한 식당에서 장동건을 만났다. 그는 한국, 미국, 중국 세 나라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합작영화 <무극>의 홍보차 감독 첸 카이거, 배우 장백지, 사나다 히로유키(<라스트 사무라이>), 촬영감독 피터 파우(<와호장룡>) 등과 함께 이 곳을 찾은 터였다.
영화 <무극>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신분제와 전쟁, 엇갈리는 사랑을 다룬 3천만달러짜리 블록버스터다. 내몽고를 비롯한 중국 대륙의 곳곳을 돌며 130일간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장동건은, 피부는 까맣게 그을렀어도, 예의 윤기 흐르는 정중한 태도로 칸의 햇빛을 환하게 반사시키곤 했다.
-영화 전체를 만다린어로 소화한다던데 감독이 본인의 중국어 실력을 굉장히 칭찬했다.
=열심히 하려고는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어차피 외국인이 하는 말이니까 완벽할 수는 없다.-맡은 캐릭터에 대해 설명해달라.
=영화가 만화적이고 신화적인 데가 많아서 캐릭터의 경우도 보편적이거나 단선적인 캐릭터들이 많다. 내가 맡은 ‘쿤룬’이란 역은 노예다. 모습 자체도 후줄근하고 좀 그렇다. (웃음) 하지만 배우가 해야될 게 많다.-액션 장면도 많았을 텐데.
=중국영화에서 흔히 보는 무술 종류의 액션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내가 하는 액션은 쿤룬이란 캐릭터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들을 표현하는 거다. (잠시 망설이다가) 빛보다 빠른 거다. (쑥스러운 웃음) 종족이 아예 다른 인물이다. 처음엔 그걸 몰라서 노예로 지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된다.-연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영화 특성상 어느 일정 부분에서는 연기의 리얼리티를 포기해야될 때도 있었고 그게 제일 힘들었다. 감독, 스탭, 배우들이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작업하다보니까 배우로서 내 색깔을 내기도 좀 힘들다.-촬영은 주로 어디서 했나.
=내몽고, 샹그리라 등 여러 곳을 옮겨다녔다. 내몽고 같은 경우는 해발이 4천미터나 되기 때문에 계단 하나만 올라가도 숨이 차는 곳이다. 거긴 호텔에도 방마다 산소호흡기가 비치돼 있을 정도다. 그런데서 나는 막 달려야되니까….(웃음)-첸 카이거 감독과의 의사소통은 원활했는지.
=감독님이 디테일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시는 스타일이다. 리허설 때부터 워낙 꼼꼼하게 했기 때문에 내가 잘못 알고 다른 걸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은 없었다.-다음에도 합작 프로젝트를 제안받으면 또 할 생각이 있는지.
=합작영화를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아무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나 혼자만 한국인이라는 낯설음을 극복하는 것이 처음에 가장 어려웠다. 다시 하게 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는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