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올해 최대의 화제작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이 한창 제작중이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올 겨울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두 편의 <킹콩> 영화를 미리 보고 간다면 이번 신작을 더욱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1933년에 제작된 오리지널 <킹콩>은 지금 보아도 충분히 즐거운 모험-괴수 영화의 걸작이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라면 단연 킹콩과 공룡의 대결 장면을 꼽을 수 있는데, 모형을 미세하게 한땀 한땀 움직여 가면서 촬영하여 동작을 만들어내는 기법인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오래된 영화니 액션이랄 게 뭐 있겠어'라고 벌써부터 투덜대는 당신, 킹콩과 공룡이 엎치락 뒤치락하며 스크린이 좁다고 느끼게 할 만큼 격렬하게 싸우는 이 장면을 직접 보고 나서 이야기하라. 스톱 모션 특유의 단절된 동작은 오히려 영상의 판타지성을 더욱 높여주며 태고적의 신비를 간직한 거대한 마신(魔神)들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또한 금발의 미녀 앤 대로우를 노리는 공룡을 막기 위해 몸을 던져가며 싸우는 킹콩으로부터 그녀에 대한 사랑(!)이 느껴질 정도다. 종극에는 공룡의 입을 찢어 죽인 뒤 울부짖으며 가슴을 두드리는 킹콩의 모습은 박력 만점.
윌리스 오브라이언이 맏은 <킹콩>의 환상적인 화면은 후대의 아티스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까지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대가'로 칭송받는 레이 해리하우젠은 <킹콩>을 본 뒤 매료되어 오브라이언에게 직접 사사 받았으며, 쓰부라야 에이지는 50년대 일본에서 재개봉된 이 영화를 접하고 또 다른 괴수 영화의 고전 <고지라>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킹콩>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피터 잭슨 역시 이 영화의 소중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반지의 제왕>도 보지 못했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