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5월은 푸르구나, 아이들의 인권도 자란다, 제9회 인권영화제
2005-05-18
글 : 문석
5월20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제9회 인권영화제

우리는 ‘인권’이란 단어와 어린이, 청소년이란 계층을 얼마나 연관지어 살고 있는가. 5월20일부터 2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옛 허리우드극장)에서 열리는 제9회 인권영화제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포괄하는 의미망에서 은연중에 배제되어온 어린이, 청소년의 인권을 주제로 삼는다. 단지 입시나 교육제도뿐 아니라 노동, 성, 장애, 여성 등 폭넓게 걸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문제는 이번 영화제의 10편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사전제작지원작인 <사레가마 송>은 히말라야의 아름다움 아래 묻혀 있는 네팔 어린이들의 인권 실태를 다룬다. <먼지, 사북을 묻다>로 인권영화상을 받았던 이미영 감독은 5분짜리 뮤직비디오를 통해 거친 노동과 카스트 제도로 핍박받는 네팔 어린이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또 다른 사전지원작인 <이반검열>(감독 이영)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의 삶을 보여준다. 동성애자를 찾아내는 ‘이반검열’을 통해 정학이나 퇴학을 시키거나 손을 잡는 행위만으로도 처벌이 가해지는 청소년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 또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인권을 점검한 <우리 사이>(한현주), 사학재단의 횡포를 드러내는 <학교이야기>(전경진),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헤븐>(오진희) 등도 주목할 작품들이다.

어린이, 청소년의 인권 외에 국내작품, 해외작품, 비디오로 행동하라, 사전제작지원작 등 5개 섹션 32편이 선보이는 이번 인권영화제에선 1998년 의문의 죽임을 당한 김훈 중위 사건을 다룬 <진실의 문>(김희철), 여성을 공공연히 차별하는 서울 YMCA에 관한 다큐 <슬로브핫의 딸들>(문정현), 최진성, 윤성호 감독 등이 참여한 <독립영화인 국가보안법 철폐 프로젝트> 등도 상영된다. 5월21일 오후 3시에는 청소년 인권운동 관련단체들이 주관하는 ‘청소년 인권운동, 미래를 본다’라는 토론회가 열리며, 24일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는 영상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비디오로 행동하라’ 섹션 토론회를 개최한다(문의: 02-741-2407, www.sarangbang.or.kr/hrfilm). 영화제쪽이 꼽아준 해외 수작 4편을 미리 소개한다.

제9회 인권영화제

일시: 2005년 5월 20일(금) - 5월 26일(목)
장소: 서울아트시네마(구 허리우드 극장)
문의: 02-741-2407, www.sarangbang.or.kr/hr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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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예스맨/ 개막작

여기 웹사이트를 통해 탄탄한 기성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두 남자가 있다. 앤디와 마이크라는 이들은 1999년 ‘www.gatt.org’라는 도메인을 등록한다. 관세무역 일반협정(GATT)은 2차대전 이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기 전까지 국제교역을 조정했던 기구. 이들은 이 웹사이트를 언뜻 보기에 WTO와 상당한 관련이 있는 듯 보이게 만들어놓았다. 이유? 그저 풍자를 위해서.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이들에게 핀란드에서 열리는 WTO 회의에서 연설을 해달라고 메일이 온 것. 뿐만 아니라 방송사, 대학, 또 다른 경제단체에서 연락이 온다. 이들은 시침 뚝 떼고 ‘거사’를 결행한다. ‘섬유의 미래’라는 주제발표를 하기로 돼 있는 핀란드의 회의장에서 이들은 금색 옷에 거대한 남성성기 모양의 모니터를 부착한 뒤 ‘노동감시와 레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관리자용 옷’이라고 진지하게 발표를 한다. 어리둥절해하지만 이내 진지해지는 참석자들의 모습이란. 한 대학에서 벌이는 이들의 강의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일단 강의실을 찾은 학생들에게 햄버거를 돌린다. 웬만큼 다 먹었을 즈음,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방금 먹은 햄버거는 현대 과학기술의 힘으로 화장실에서 재활용된 햄버거라고. 자본주의의 논리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풍자하는 이 악동들의 딴죽걸기는 정말 놓치기 아까운 퍼포먼스다.

안티폭스

9개의 위성네트워크, 100개의 케이블 채널, 40개의 TV 방송사, 176개의 신문, 그리고 1개의 영화 스튜디오는 모두 호주 출신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소유물이다. <안티폭스>는 머독이 총애하는 미국의 전국 뉴스채널 <폭스 뉴스>다. 이 채널은 전 미국을 보수화하겠다는 신념을 품은 듯 공화당과 기독교 근본주의의 신념을 설파해왔다. ‘공정하고 균형있는’이라는 이 채널의 모토는 전직 <폭스 뉴스>의 간부, 앵커, PD에 의해 낱낱이 까발려진다. 이들에 따르면 조그마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상층부는 메모를 통해 뉴스의 방향을 지정했다. 예컨대 이라크 아부 그레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미군이 포로들을 조롱했을 때, “그 성가신 화면 대신 이라크 테러집단에 납치된 미국인의 이미지를 내보내라”고 하달하는 식이다. 이들은 동성결혼, 테러 등 온갖 사회문제를 부풀려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노골적으로 부시를 지지해왔다. 한 여론조사 결과, ‘이라크와 <알카에다>의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PBS> 시청자 중 16%만이 ‘예’라고 답한 반면 <폭스 뉴스> 시청자 중 ‘예’라고 답한 비율은 67%에 달한다. <안티폭스>는 <폭스 뉴스>가 노골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해 미국의 여론을 조작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라이베리아: 함락 초읽기

아프리카 서부에 자리한 라이베리아는 미국이 해방된 노예를 이주해 만든 국가다. 국기는 성조기와 유사하며 헌법은 하버드대학에서 만들어졌고, 공용어도 영어다. 냉전시대, 미국의 대아프리카 전진기지였던 이곳은 냉전의 말미인 1989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찰스 테일러가 권력을 잡고 전직 대통령 도에를 살해하면서 기나긴 내전은 시작된다. <라이베리아…>는 2003년 봄 조너선 스택과 제임스 브라바존이란 두 감독이 각각 정부가 있는 수도 먼로비아와 반란군 진영으로 들어가 담아낸 생생하고 처절한 내전의 기록이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쳇더미, 기관총을 들고 장난스럽게 난사하는 10대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라이베리아 국민 등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세계는 처참하기 짝이 없다. <라이베리아…>는 어떤 감상이나 낭만도 용납지 않는 이 살풍경 속의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까지 포착한 용감한 다큐다.

원자폭탄

<원자폭탄>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던 시절로부터 시작해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핵문제를 다룬다. 다큐멘터리라기보다 필름/비디오 작업이라 하는 게 가깝다 할 정도로 오래된 다큐 필름과 새로 촬영된 극영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을 자유롭게 엮어놓은 작품이다.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에 의해 과학과 역사의 승리라 불렸던 원자폭탄이 가져온 인류의 재앙을 감성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핵 피해자가 비단 일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054회의 핵실험 속에서 25만명의 미국 군인과 수천만명의 미국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다. 전세계에 2만2천기 이상 존재하는 핵폭탄 중 절반 가까이가 미국에, 나머지 절반쯤이 러시아에 있음도 보여준다. 어린이들에게 반핵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활용해도 무방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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