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코믹하고 시적인 아마게돈, <지구를 지켜라!>
2005-05-18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한국에서 온 과장된 예측불허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한국의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장준환의 멋지고 장난기어린, 약간은 피비린내나고 자꾸 웃겨주며 예측하기 힘든 첫 극영화에는 광적인 음모들이 가득하다. <지구를 지켜라!>는 엉성하게 만든 공상과학 장비들로 무장한 두 괴짜가 중년의 사업계 거물을 지하주차장에서 납치하며 시작한다. 장준환의 초기 단편, <2001 이매진>의 주인공은 자신이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었는데 이 영화에서 35살의 영화감독은 훨씬 더 망상에 들린 반영웅을 설정한다. 이병구는 자신이 일하던 화학회사의 사장, 강만식이 외계인, 더 정확히, 안드로메다 성운의 왕자라고 믿는다. 지구는 이 외계인들에게 넘어가 다음 월식 때 파괴될 터이다. 병구가 약간 어벙하고 느릿한 여자 동료인 순이에게 설명하듯 그야말로 강만식은 외계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놈이다.

일단 병구와 순이가 강만식을 별스럽고도 별스러운 다 쓰러져가는 산장에 가둔 다음 병구는 강만식이 안드로메다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물파스를 발에 발라댄다. 어쩌면 지구의 구세주일지도 모르는 병구가 별 표정없는 포로를 고문하기 위해 끊임없이 옹알대는 허튼소리들을 통해 <지구를 지켜라!>는 마니아적인 분위기를 강화시켜간다. 병구가 양봉을 하고 순이는 한때 외줄타기 공연자였으며 병구를 “오빠”로 부른다는 사실들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요즘 개봉된 다른 한국영화, 박찬욱의 <올드보이>처럼 장준환의 영화도 복수, 환각, 그랑기뇰(Grand-Guignol)의 자극적인 혼합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박찬욱의 2002년 스릴러, <복수는 나의 것>에 나온 주연배우(신하균)도 같고 분위기가 어딘가 닮아 있지만 모든 면이 땀으로 칠해진 듯한 매끈한 환상곡, <올드보이>보다 덜 짓누른다. <지구를 지켜라!>는 굴곡진 한국의 최근사를 언급하고 있지만 장준환은 느긋하게 영화를 끌어간다. 뉴웨이브적인 이 한편의 영화는 스틸 사진들, 감시용 카메라, 특수효과, 뉴스장면들과 반복되어 들려오는 불협적인 편곡의 노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괴상하게 나가다 마음을 졸이게 하고 가학적으로 돌변하는 <지구를 지켜라!>는 그 기지와 인물들 속에서만 일관성을 유지한다. 영화에는 여러 미친 사람이 나오는데, 병구의 산장에 들렀다가 개가 사람의 뼈를 뜯고 있는 것을 볼 때까지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독특한 형사도 그중 하나다. 영화는 환경에 대한 과장된 히스테리를 보여주며, 섬뜩하게 하는 <양들의 침묵>식 수사물로 시작되어 인류 역사를 가장 가능한 한 잔혹한 면에서 되돌아보다가 <외계의 제9호 계획>(Plan 9 from Outer Space)와 언더그라운드 풍자작가인 크레그 발드윈의 <Tribulation 99> 언저리 어딘가에 놓이며 끝난다. 장준환은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우스꽝스러운 공룡의 멸종 이론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패러디를 시도하고 있고 윌리엄 버로(미국의 실험소설작가- 역자)를 위해 만들어진, 공장 제어실 아마게돈의 코미디가 있다.

이 섬뜩하고 사나우며 바쁜 구경거리가 지닌 가장 뛰어난 점은 이 영화가 얼마나 진지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감동적이고 시적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병구의 (산업재해로 코마에 빠진) 어머니가 환상 속에서 병구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때나 지구가 터져버릴지라도 텔레비전이 영영 늘 우리를 기억하리라는 생각이 어떻게 서글프지 않을 수 있을까?

(2005. 4. 19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번역 이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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