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펠리니의 모더니즘, 그 시작, <8과 1/2>
2005-05-19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EBS> 5월21일(토) 밤 11시40분

‘누군가 그가 겪고 있는 삶의 미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은 이같은 감독의 초고로부터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이미 <길>이나 <달콤한 인생> 등의 영화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새로운 적자임을 자임하고 있었던 펠리니 감독은 당시 슬럼프를 겪고 있었으며 이를 영화에 그대로 반영하고자 했다. 혼란과 백일몽의 연속, 과거에 관한 추억과 초현실적 모티브가 어지럽게 얽혀 있는 영화 속 분위기는 그러므로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호학자 크리스티앙 메츠는 “무능력에 관한 위대한 창조적 명상법을 창안한 작품”이라며 <8과 1/2>을 설명하기도 했다. 영화감독 귀도는 어느 날 자신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추락하는 꿈을 꾼다. 지금까지 8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 귀도는 다음 영화로 자전적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지만 몹시 지쳐 있는 상태다. 온천에 가지만 그곳에서도 생활과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근원을 알 수 없는 기이한 환상을 보기도 한다. 헤어질 용기가 없어 함께 살고 있는 아내 루이사에게도 그리고 애인에게도 지쳐 있는 그에게 한 여성의 이미지가 새롭게 나타난다.

<8과 1/2>은 영화 속 어느 감독의 방황을 다룬다. 감독으로 분한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영화배우, 제작자 등 스탭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돈과 여자, 불안한 흥행과 비평가의 날카로운 언어가 그를 괴롭힌다. 이 환경 속에서 귀도는 자신에게 집착하면서 환상의 늪에 잠겨간다. 순수하고 진실한 영화라는 감독의 꿈, 그리고 여성을 향한 욕망이 그를 여러 방향에서 잡아당긴다. 펠리니 감독은 영화 속 귀도라는 인물에 대해 “거대한 것에 투쟁하고 있으며 공포에 대해 현실적 위험에 대해 저항하는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8과 1/2>엔 인물의 무의식을 반영한 듯한 장면들이 많다. 귀도는 여러 여성을 지배하는 환상에 잠기고 종교적인 것에 대해 반발감을 느낀다. 그리고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누군가는 귀도의 내면을 그대로 읽어내기도 한다. 혼란과 불확실성, 그리고 타협에 관한 이야기를 남기면서 영화는 하나의 축제와도 같은 결말로 향한다. “삶은 축제이다”라는 귀도의 대사는 한편의 심리적 오디세이를 연상케하는 <8과 1/2>을 정리하는 메시지로 남겨지고 있다. 사실, 영화 <8과 1/2>은 질서정연한 작품은 아니다. 감독은 완벽한 구상없이 촬영을 시작했으며 중년 남자의 방황과 위기라는 출발점으로부터 창작의 어려움과 예술의 정의 등 여러 주제를 작품에 녹여냈다. <8과 1/2>은 모더니즘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면서 이후 감독이 만드는 <영혼의 줄리에타>를 미리 암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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