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관객 100만명 넘은 <혈의 누> 제작한 좋은영화사 김미희 대표
2005-05-19
글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웰메이드 사극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좋은영화 김미희 대표는 올해 <씨네21>의 파워50 설문조사 결과 41위에 랭크됐다. 2002년 <신라의 달밤>으로 10위에 올랐던 그는 이후 3년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아라한 장풍대작전> <여선생 vs 여제자> <발레교습소> 등 한해에 3편이나 되는 영화를 내놓았지만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내진 못했고, 급기야 2005년 조사에서 무려 20계단이나 떨어지며 충무로의 관심의 초점에서 멀어진 듯했다. “이번에 안 되면 목매달아 죽을지도 몰라”라고, <혈의 누> 개봉을 앞두고 농담으로 흘려듣기에 과한 발언을 수차례 내놓았던 그가 드디어 원기를 회복했다. 5월4일 개봉한 <혈의 누>는 어두운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흥행을 예상하는 이가 많지 않았던 영화. 그러나 <혈의 누>는 본격적인 성수기라고 볼 수 없는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평일에도 8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6일 만에 전국 100만명 관객을 넘어섰다. <혈의 누>의 순항에 대한 축하 인사에 “변수가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몰라. 그냥 들어간 돈만큼만 벌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다음 영화 만들지”라고 답한 그는 인터뷰 도중에 “좋은영화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4일 동안 전국에서 1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4월 개봉 한국영화들이 50만∼70만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성수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긴 어렵다. 개봉 다음주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아직 남았다. 손익분기점이 높은 영화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이런 유의 영화는 대개 서울에서 잘될 거라고 하는데 특이하게 지방에서 잘된다. 정확하게 따져보진 않았지만 (지방이) 4배 정도 되는 것 같다.

-개봉 전날까지 초조해했을 것 같다.

=한숨 놓긴 했지만 지금도 머릿속이 하얗다. 여러 날을 중간고사 치는 심정이다. 잘 쳐야 하는데, 잘 쳐야 하는데 하면서. 새벽 2시까지 회사에 있다가 집에 가도 잠이 안 와서 죽겠다. 자기 위해서 안 하던 운동까지 한다. 어제도 탄천 주위를 한 시간 동안 배회했다. 그러다 새벽 5시에 출근하고. 스트레스 쌓이면 쌍꺼풀 지는데 며칠 동안 신경 썼더니 여기 봐라. 눈 한쪽에 쌍꺼풀이 생겼다. 농담으로 주위에서는 쌍꺼풀 수술 비용 아꼈다고 한다.

-개봉 시점을 전해 듣고 다소 의아해했다. 어린이날에 누가 피튀기는 영화를 보러 가나 싶어서.

=원래는 4월28일에 했으면 했다. 그런데 시네마서비스 배급팀에서 한주 늦춰서 가면 어떨까 하더라. 연휴 낀 주말에 관객을 한꺼번에 끌어들이자고 설득하기에 바꾼 거다. 전날이 되어서야 조금 걱정이 되더라. 하지만 우리 영화가 애들 손잡고 극장 나들이하는 층을 겨냥한 것은 아니잖나. 개봉하고 나서 배급팀에서도 18세 관람가 영화 중에 주말 개봉 스코어가 90만 넘는 영화가 지금까지 없었다면서 놀라워했다.

-<혈의 누>는 김영하의 소설 <아랑은 왜>에서 착안했다고 들었다.

=2001년이었나.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랑은 왜>를 읽었는데 과거를 재해석하는 방법이 재밌어서 이원재 작가에게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되 현대적인 드라마가 펼쳐지는 이야길 한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시나리오 최종고가 나오기까지 24번을 고쳐 쓴 터라 지금까지 나온 버전 중에 없는 설정이 없다. 영화의 끝이 혈우(血雨)가 아니라 한국인의 한(恨)의 정서와 관련된 상징적인 장면으로 끝나는 것도 있고, 범인의 몸에 강 객주의 혼이 들어가 있는 버전도 있다. 빙의에 걸린 범인이 씩 웃는 것으로 끝나는. (웃음) 이원재 작가가 김성제 프로듀서랑 같이 물고늘어져서 결국 해냈는데, 그들이 아니었으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나리오가 나온 뒤에도 투자받기가 어려워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대극이지 게다가 스릴러지. 시네마서비스 내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강우석 감독이 감독 입장에서 매력있는 작품이라며 손을 들어줬고 그래서 투자가 결정된 것이지만, 그도 흥행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시네마서비스의 부담을 좀 줄이려고 여기저기 부분투자 의사를 알아봤는데 다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더라. 관객이 몇만명이나 들겠느냐면서. 정말 잘 생각해보라고 적극적으로 뜯어말린 이도 있다. 차승원이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코미디로 기울어져 있는데 그걸 갑자기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들 했다. 못 만들면 강우석 감독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고 그래서 부담이 더 컸던 영화다. -캐스팅에 대한 우려 섞인 반응들은 촬영이 시작된 뒤에도 계속됐을 텐데.

=강우석 감독도 차승원이라는 카드에 대해선 걱정했었다. 하지만 내겐 믿음이 있었다. 서로 속마음을 터놓을 정도로 친하다고 할 순 없지만 몇 작품 하면서 차승원이라는 배우가 하나 물고 들어가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의 연기에 대해 약간 튄다는 말로 아쉬움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는데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배우야말로 감독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 아닌가. 영화가 몰입도는 좋은데 배우의 연기가 튀어서 아쉽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차승원은 7개월 넘는 촬영기간 동안 힘든 때도 있었을 텐데 짜증 한번 안 냈다. 사실 음악 믹싱하는 데까지 찾아와서 ‘감독님, 이건 왜 이렇게 하시는 거죠?’라고 묻는 배우들이 요즘 얼마나 있나. 차승원은 그걸 다 한다.

-애초 <혈의 누> 연출은 김대승 감독이 아니라 다른 신인감독이었는데.

=준비하던 이가 중간에 이 작품을 소화 못하겠다고 손을 떼더라. 김대승 감독은 김성제 프로듀서가 추천해서 알게 됐다. 김 감독이 결합하면서 영화의 무대가 외딴섬이라는 공간으로 바뀌었고, 7일 동안 벌어지던 살인이 5일로 좀더 타이트하게 압축됐다. 인간들의 욕망에 관한 묘사들도 좀더 풍부해졌고.

-스스로 밝혔듯이, 김대승 감독은 스릴러 장르에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메가폰을 맡길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

=난 공포, 스릴러 장르의 문법들에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반면, 김대승 감독은 처음부터 장르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이를테면 류해진이 도모지(塗貌紙)를 당해 숨막혀 죽는 장면에서도 난 빠르게 편집해서 빅 클로즈업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감독이 오랫동안 지켜보는 롱테이크를 쓰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지켜보는 롱테이크로도 드라마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감독의 말을 받아들인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원규가 수사하는 방법도 ‘옛날에도 저랬단 말이야?’ 할 정도로 좀더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것이길 바랐는데 감독은 지옥 같은 섬 분위기 묘사에 공들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나. 죽어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면 내가 직접 연출을 했어야겠지. 제작자 중엔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이도 있겠지만 난 능력이 없어 그렇게 못한다. 내 것 하려다 감독이 잘할 수 있는 것까지 망치는 건 싫었다. 트러블 만들어서 좋을 것이 하나 없다. 돌이켜보면 난 정말 복 많은 사람이다. 차승원도 그렇고, 개봉하는 전날까지 영화를 손에서 놓지 않은 김대승 감독도 그렇고, 독종 같은 사람들하고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좋다.

-촬영 중 제작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감독과 배우와 스탭들은 많았겠지만 내 입장에선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딱 하나 있다면 돈문제지. 여름에 촬영에 들어간 터라 날씨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촬영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사극이라는 게 소품 하나라도 없어지면 모든 걸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한번 촬영 나가면 1천만원 이상 들어갔다. 다른 영화의 서너배는 되는 거다. 그래서 한동안 투자사에 보충촬영하겠다는 말을 차마 못했었다.

-위험부담이 큰 영화를 관객이 지지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

=관객이 트렌드를 좇는 것 같지만 그 이상으로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있다. 웰메이드 영화로 승부수를 던지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개봉 전에 몇몇 매체를 통해서 리서치를 했는데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좋았고, 그래서 일반인 대상 시사회도 갖지 않고 개봉했다. 조선 시대 연쇄살인극에 대한 호기심과 차승원의 변신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것 같다. 올해 초에 <마파도>가 잘된 것도 좋은 일이다. 젊은 A급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아줌마들까지 재밌다면서 극장에 가지 않았나. <삼거리 박씨 미행기> 투자를 진행하면서 투자사들에서 편협한 데이터를 들이밀면서 이건 안 된다고 할 때가 가장 답답했고 힘들었다. 데이터만으로는 과감하고 새로운 영화는 절대 못 만든다.

-지난해 무려 3편을 개봉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발레교습소> <여선생 vs 여제자>에 대한 본인의 평가가 궁금하다.

=<발레교습소> 말고 두편은 사실 돈을 벌었다. 다 망했다고, 그래서 좋은영화 힘들다고 알고 있지만. 모든 작품이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서 조금만 더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여기서 물러나면 낭떠러지라는 절박감이 없었던 것 아닌가, 그 정도의 간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내가 안일했던 점은 없나 반성 많이 했다.

-농담이었겠지만 <혈의 누> 안 되면 목매달겠다고 했다. 좋은영화를 차려서 <투캅스3>가 실패했을 때만 하더라도 늙은 남자에게 시집가거나 취직을 알아봐야겠다고 했는데 말이다. 다음에 혹시나 위기가 또 오면 할 농담도 없겠다.

=정말이지 김치성 대감처럼 최후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했다. 지난 몇년 동안 이런저런 일 겪으면서 회사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됐다. 그래서 올해 1월부터 금융권 출신인 조경식 부사장을 영입했고 회사의 재무에 관한 일을 맡겼다. 난 영화 만드는 데만 전념하려고.

-스트레스 때문에 도졌던 위염, 장염, 지방간은 다 치료했나.

=다 나았다. 전엔 조급하고 못 참는 성격이라 스트레스가 생겼는데 이젠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마흔이 넘으니까 저절로 되는 건가. 전엔 내 맘대로 일이 안 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스트레스가 쌓여 병이 생기고 했던 건데. 병이 생기니 도대체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요즘은 손톱, 발톱 케어하는 것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젠 후배들이 내가 발에 파충류 색깔 매니큐어를 바르고 오면 분위기를 파악할 정도가 됐다.

-욕심이 과한 것 아닌가. 본인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좋은영화 기획실만 하더라도 일하는 방식에서 위계가 느껴진다.

=누가 그러던가? (웃음) 위계라고까지 할 거 없다. 내 연애 상담까지도 할 만큼 격이 없다. 다만 내가 마케터 출신이다보니 눈이 가는 게 많을 테고 그러다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사실 영화사마다 특색이 있는데 아무래도 대표의 출신과 관련이 있지 않겠나.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가 제작 파트에 꼼꼼하게 관심을 두는 것이나 강우석 감독이 감독들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것이나 다 같은 거다.

-싸이더스와 합병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확정된 것은 아니다. 협의 과정이 남았다. 처음엔 <삼거리 박씨 미행기>에 백윤식 선생님을 캐스팅하려고 차승재 대표를 만났었고, 그러다 제의를 받게 됐다. 사실 여러 회사들로부터 제의를 많이 받고 있다. 그중에 대형 매니지먼트사도 있고 대기업도 있다. 좋은영화 차린 지가 벌써 7년인데 아직도 일희일비한다. 그게 싫다. 아무래도 회사 덩치가 커지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게 수월해질 것 아닌가. 1년에 내가 할 수 있는 영화가 대략 3편인데 그것만 같고선 투자 유치나 캐스팅이 힘들다. 영화 만드는 데만 전력투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는 거다.

-올해 라인업이 궁금하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을 배경으로 두 남자의 의리에 관한 영화 <애수>(가제)가 있다. <영웅본색> 같은 이야기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라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제작한 이성훈 프로듀서를 끌어들였다. 한국전쟁에 관한 데이터가 많은 친구라 기대가 된다. 인터넷 소설이 원작인 로맨틱코미디 <키애누리브스 꼬시기>(가제)와 전에 <유월>로 알려졌던 정통멜로 <오늘>도 하반기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염정아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 아나운서로 나온다. 아, 그리고 장규성 감독의 <군수와 이장>이 있다. 근데 아직도 시나리오를 안 내놓고 버티고 있다. (웃음) <피도 눈물도 없이>와 <혈의 누>의 김성제 프로듀서는 이번엔 오랫동안 갖고 있던 자신의 아이템으로 감독 데뷔한다. 따로 영화사도 차렸고, 난 그냥 도와주는 정도다.

-올해는 좋은영화 3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보여진다. 창립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코미디에 주력하며 영화사의 브랜드를 알렸다면, 지난 3년은 코미디, 멜로 등 주류 대중영화를 만들면서 새로운 시도들을 더했다고 본다. 그동안 뭘 얻었고, 뭘 잃었나. 앞으로는 뭘 얻으려고 노력할 것인가.

=노후 대책 묻는 건가? 가진 거라곤 아파트 한채밖에 없어서 나도 늙어서 뭐 먹고사나 그런 고민한다. (웃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아준다고 성공하는 건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같이 일한 강혜정(류승완 감독의 동반자)한테도 나가서 니 회사 차려서 한번 해봐라 그랬다. 젊으면 못할 게 없다면서. 힘들 때 손 한번 내밀 테니 그땐 한번 꼭 도와주라, 고도 했다. 그런 말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 많이 만들었다는 게 돌아보면 가장 뿌듯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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