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
2005-05-19
글 : 김은정 (로마 통신원)
“왜냐하면 김기덕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15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알베르토 바르베라와 김기덕 감독이 다시 만났다.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자신이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던 200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섬>을 발굴한 인물이다. 대학에서 영화역사를 전공한 영화평론가 출신인 바르베라는 1989년부터 98년까지 토리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일했으며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은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유럽에서 제일 큰 규모인 토리노 영화박물관장으러 재직 중이다. 올해 토리노 영화박물관은 한국영화제(4월15일부터 7일 동안)와 김기덕 감독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바르베라를 만나 유럽에서 김기덕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김기덕 감독의 <섬>을 어떻게 발굴하게 되었는가.

=우연히! 2000년 베니스영화제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1500여편의 영화를 받았다. 이 영화들을 두달 반 동안 봐야 했다. 나는 5명의 심사위원과 함께 이 일을 나누어 했는데 심사위원 중 한명인 로베르토 툴리아토가 한국영화가 있는데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했다. 기자회견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녁 9시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가누며 <섬>을 봤다. <섬>은 즉시 내 관심을 유발시켰다. 영상의 수준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영상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배우의 개성, 평상적인 것을 영화화하는 능력,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 거의 환상적이었다! 나 역시 폭력적인 장면에서는 멈칫했다. 화면 앞으로 베니스 관객의 다양한 표정이 지나갔다. 도대체 베니스가 어떤 식으로 이 영화를 소화할 것인지…. 어떤 사람들은 과격한 장면에 대해 틀림없이 비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영상미가 풍부하고 독창적이고 새로운 영화였기 때문에 과감히 모험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1999년 영화제 집행위원장 첫해를 역임하고 있을 때 한국영화인 <거짓말>을 선정했던 경험이 있다. 그 영화 역시 극단적이고 과격하고 자극적이었다. 관객은 그 영화를 보고 여러 면으로 나뉘었다. 웃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영화 시작 얼마 뒤 자리를 뜨는 관객도 있었다. 그 영화 역시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런 경험을 이미 했던 터라 <섬>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선정하는 데는 전혀 어떠한 의심도 갖지 않았다. 김 감독이 <섬>을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미 네 작품을 했지만 유럽에서는 미지의 감독이었고 영화제라는 것이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선정하게 되었다.

-이듬해에도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베니스에 초청됐다.

=2001년 <수취인불명>을 봤다. 이 영화는 <섬>과는 다른 영화였다. 김 감독의 영화는 영화마다 다르다. 어떤 감독의 영화는 같은 느낌에 같은 스토리에 같은 개성의 인물을 반복하는데 김 감독은 전혀 다른 것 같았다. 전 영화와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이지만 영화들을 다 같이 놓고 볼 때는 전혀 다른 영화가 하나도 없다. 다시 반복된다. 그렇지만 막 보고 난 뒤의 느낌은 전혀 다른 주제로 다른 사람이 만든 영화인 듯하다. 이것 역시 그의 영화에 빠지게 하는 것 중 하나이다. 그의 강한 호기심, 바꾸고 싶은 욕구, 주제에 맞는 방법을 찾아 적합하게 조정하는 능력에 우주와 세계를 바라보는 그만의 시각이 조화를 이룬다. 관객과 평단은 그의 이런 진가를 인정한다. 결론적으로 그의 집념과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영화제의 욕구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김 감독의 영화를 초청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숨은 이야기가 있나.

=숨은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그 전해에 <거짓말>을 선정했을 때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베니스영화제에 선정됐다. 이탈리아에서 한국말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다. 자막을 준비하고 있을 당시, 어떤 한국 사람에게 이탈리아어 자막을 부탁했는데 이것이 큰 실수였다. 그의 이탈리아어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영화 소개와 그가 준비한 자막은 많은 웃음을 자아냈다. 조금 당황스럽고 황당무계한 번역이 사람들을 웃게 했다. 기자회견용 번역도 실수투성이였다. <섬>을 초대할 때 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김기덕 감독 영화 특별전이 5대 주요도시에서 릴레이로 진행되고 있는데 토리노에서 그의 특별전을 하게 된 계기는.

=왜냐하면 김기덕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이나 문화의 틀 안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그의 영화 <빈 집>은 이탈리아에서 대단한 성공을 누렸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서 관객이 좋아하는 것은 항상 아니다. <빈 집>은 쉬운 영화가 아니다. 복잡하고 관객에게 머리 쓰는 일을 하게끔 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상업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낮았다. 특히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개봉했는데 이 시즌엔 상업영화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다른 상업영화들과의 경쟁에서 <빈 집>은 상당한 수익을 영화 배급회사인 미카도에 안겨주었다. <빈 집>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관객이 영화를 보고 호기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에게 ‘한번 가서 봐’라고 전달한 것이 가장 주효했다. 특별전 첫날, 아직 김 감독이 올 거라고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전 객석이 메워지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과 알베르토 바르베라

-반면에 이탈리아 평론가들은 김 감독을 ‘나쁜 남자’라고 부른다. <나쁜 남자>라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김 감독의 영화만이 아니라 한국영화는 이탈리아영화에 비해 ‘피’가 보이는 장면들이 훨씬 많이 등장한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면이 어쩌면 비평가를 더 자극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식 아니면 유럽식 잔인성이나 폭력성은 한번 걸러진, 그래서 관객이나 평단에게 미리 예고하는 편이다. 대부분 이런 잔인한 장면이나 폭력성을 만날 수 있는 영화는 어떤 영화들인지 드러나는 반면 김 감독 영화의 잔인함과 폭력성은 그런 걸러지는 과정과 기다리지 않은 상태를 초월한 다른 폭력성이다. 도덕적이고 일상적인 삶에서 보여지는 폭력이 상징적인 의미로서 더욱 강한 이미지를 준다. 그렇지만 표면과 본질을 혼란해서는 안 된다. 김 감독은 폭력적이지도 않고 폭력을 권유하지도 않는다. 그의 세상에서 폭력은 일부분일 뿐이다. 그의 영화에서 폭력은 그가 속한 사회의 반감, 의심, 문제의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영화가 대규모로 이탈리아 관객과 만남을 가진 시기는 언제부터인가? 어떻게 한국영화를 알게 되었나.

=1992년 페사로영화제에서이다. 한국영화 특별전을 유럽에서 최초로 기획한 영화제였다. 이 영화제에서는 1960년대 영화부터 90년 초기의 영화들로 30여편의 영화가 소개됐다. 역사와 문화에서 전혀 다른 나라의 영화로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당시 한국영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조금 맛을 보여주는 정도였을 뿐 한국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90년대 중반경에 타이, 홍콩, 도쿄, 서울을 돌아다니며 동양영화를 접할 기회를 가졌다. 한국영화와의 만남도 이때 가졌다. 특히 스크린쿼터라는 강한 기둥이 한국영화를 받치고 있는 힘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 내에서 할리우드영화로부터 한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국민들의 열성이 영화인들에게 큰 힘인 것은 틀림없다.

-베니스영화제의 영화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단지 세계의 3대 영화제에서 전혀 공개된 적이 없는 미발표 작품이어야 한다. 나머지는 집행위원장의 성향이 강하게 작용한다. 잘 알려진 감독의 영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영화, 이 모든 것이 함께 섞여서 기준이 된다.

-지금 상영작의 수준이나 행사의 개성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국제영화제는.

=전세계의 영화 배급회사, 비평가, 영화 제작사들이 참가하는 국제영화제는 베니스, 칸, 베를린, 토론토, 부산영화제이다. 이 영화제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국제영화제들이고 두 번째 카테고리의 영화제들을 보면 유명한 영화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미지의 영화들을 소개받을 수 있는 영화제들이다. 카를로비 바리, 토리노, 스위스, 그리스, 부에노스아이레스, 상파울루, 뉴욕, 도쿄 등의 영화제들은 상업적이지 않기 때문에 훨씬 동시대의 경향에 민감하다고 하겠다.

-언제 영화와 인연을 맺고 일하게 되었는가.

=대학에서이다. 1969년 영화역사를 전공할 당시 토리노에 있는 영화제들을 맡아 준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영화역사와 관련한 일련의 자료들을 모아서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제타 디 포폴로>라는 일간지에서 1980년부터 3년 동안 영화평론가로 일하고 1983년 일간지가 폐간되면서 토리노영화제에서 영화제의 모든 행사를 도맡아서 했다.

-최근 영화 중 좋았던 영화는 어떤 작품들이었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이다.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빈 집>, 이란의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들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토리노의 영화박물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현재 1910년경 이탈리아영화들을 복구하고 있고 SF영화와 관계된 전시회와 일련의 행사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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