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DVD로 만날 수 있는 남극 영화들
2005-05-19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글 : 한청남
글 : 김정대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임필성 감독이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대작 <남극일기>가 5월 19일 오늘 날짜로 전국 개봉에 들어갔다. 베일을 벗기도 전에 숱한 화제를 몰고 다녔던 영화는, 제목처럼 흔치 않는 남극을 무대로 하고 있다. 비단 한국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에서도 남극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그리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영화 속에서 만나는 광활한 얼음 대륙은 뉴질랜드에서 촬영이 된 것이지만, 가본 적이 없는 우리들에게 진짜 남극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럼 DVD 타이틀로 만날 수 있는 남극 영화 관련은 몇 편이나 될까? 적어도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에서는 남극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 세계에서 남극은 너무나 매혹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업 영화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하얀 설원으로 뒤덮인 영화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남극이 배경인 영화들을 골라내기는 쉽지 않다. 반면 북극이 무대인 영화들은 굉장히 많다. <괴물>의 오리지널, 레이 해리하우젠의 <심해에서 온 괴물> <인썸니아> <폴라 익스프레스> <아이스맨> 등 장르도 각양 각색이다.

그에 반해 남극이란 대륙은 아직까지 그리 친숙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은 <남극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에게 미지의 대륙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DVDTopic에서는 남극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 가운데 여섯 편의 작품을 꼽아보았고, <남극일기>에서 나오는 장면과 비슷한 상황이 존재하는 두 편의 영화도 같이 선정했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100년 만에 찾아오는 무더위라는데, 이런 때일수록 보는 것만으로 시원해지는 영화 한 두 편 정도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남극을 배경으로 한 영화

괴물 - The Thing (1982)

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는 괴물과 그 소름끼치는 묘사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남극이라는 고립된 지역, 그것도 탐사단의 기지 내부라는 밀폐된 공간이 주는 폐쇄적 공포와 인간의 외형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괴물 때문에 동료조차 밑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하는 극단적인 불신감이다. 설사 괴물을 완전히 물리쳤다 해도, 구조대가 오지 않는 한 남극이라는 공간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것은 동료들을 모두 묶어놓은 주인공 맥크리디가 누가 괴물인지를 판별하기 위해 그들의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하는 시퀀스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 갇힌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괴물이다! 한 명 한 명 차례가 돌아가면서 고조되는 긴장감과 마침내 괴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선보이는 특수효과의 향연은 그 이전까지 쌓인 폐쇄공포증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낸다. (유니버설 픽쳐스)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 Alien Vs. Predator (2004)

<에이리언>과 <프레데터> 시리즈의 오랜 팬이었던 폴 앤더슨이 순수한 오타쿠적 감성으로 두 시리즈의 팬들에게 ‘바친’ 화제작. 1989년 다스 호스 코믹스에서 두 괴물의 대결을 다룬 코믹북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순간부터 영화화는 예상되었지만, 정작 그 결과물은 15년이나 지난 뒤에야 나왔다.

폴 앤더슨이 만든 이 영화 버전은 만화책에서 배경의 일부만 차용했을 뿐 전혀 다른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오리지널 시리즈들에 대한 예우의 차원에서 앤더슨은 CGI 대신 애니매트로닉스 등 고전적인 아날로그 특촬 기법을 주로 활용하여 두 괴물을 촬영했으며, 오리지널 시리즈들에 대한 오마주 장면들도 영화 곳곳에 숨어있다. 다만 어린 관객들도 수용하기 위해 PG-13등급으로 조율되어 제작된 점(이로 인해 두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잔혹 신’이 제대로 묘사될 수 없었다), 그리고 상영 시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 아쉽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남극인데, 빙하 아래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다. 하긴 극지방과 관련된 ‘X-파일형 음모이론(?)’은 이미 예전부터 유행하던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쇼킹한 것만은 아니지만. 고대 아즈텍, 이집트, 캄보디아 양식이 혼합된 이 피라미드 양식은 <프레데터 2>의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프레데터의 우주선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현재 2편의 각본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진다. (20세기 폭스)

엑스 파일 - The X Files (1998)

남극대륙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 얼음으로 뒤덮이기 전의 거대한 땅덩어리에는 고대 문명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도 있고,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처럼 태고적 지구를 지배했던 무서운 존재들이 해동되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엑스파일>은 그곳에 외계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류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지니고 지구를 방문한 그들은 어찌된 일인지 빙하 속에 묻혀 잠들어 있다.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추위 따윈 간단히 극복할 수 있는 그들이 어째서 그토록 기나긴 세월동안 수면을 계속해왔을까. 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진실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고, 멀더와 스컬리는 우주로 날아오르는 초거대 우주선을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다. 남극의 비밀은 언제쯤 밝혀질 것인가. TV 시리즈에 비해 다소 허술한 영화로 평가받지만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갈라지는 장면만큼은 압도적이다. (20세기폭스)

투모로우 - The Day After Tomorrow (2004)

가정을 소홀히 하면서까지 기후연구에 몰두하는 홀 박사는 남극에서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무서운 재앙을 예감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다가와 지구 전체가 순식간에 빙하기처럼 얼어붙게 된다.

<인디펜던트 데이>에서 외계인의 침략을 황당하지만 거대한 스케일로 연출했던 롤랜드 에머리히는 <투모로우>의 남극대륙을 아직까지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순수한 땅이자 자연의 경고를 읽을 수 있는 곳으로 설정한다. 그런 그곳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는 것은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징조다. 단순한 할리우드 재난 영화로 치부할지 몰라도 우리가 사는 곳이 내일이라도 남극처럼 변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인간에게는 대재앙으로 다가왔던 일들이 바로 지구 스스로의 정화작용에 다름 아니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20세기폭스)

요성 고라스 - 妖星ゴラス (1962)

지구 질량의 6,000배나 되는 항성 ‘고라스’가 갑자기 태양계에 난입, 모든 물체를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인류는 지구상의 어떤 무기로도 파괴할 수 없는 고라스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남극에 거대한 분사구 ‘제트 파이프’를 설치, 지구 자체의 궤도를 바꾼다는 기상천외한 계획을 세우는데….

<고지라>를 만든 일본의 토호 영화사가 1962년에 발표한 SF 재난극. 발상 자체는 황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정교한 특수촬영이 어우러진 재미있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의 남극은 혹한과 불모의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지구의 존망을 건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수백 개의 제트 파이프가 불을 내뿜는 장면은 아날로그 특촬의 백미이며,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바다코끼리 모양의 괴수 ‘마그마’는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강한 인상을 남겼다. (도호, 국내 미출시)

남극이야기 - 南極物語 (1983)

남극대륙에 꼭 비참함과 공포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인해 썰매견들을 두고 귀국해야했던 일본의 남극 탐험대는 1년 뒤에 다시 찾은 남극에서 감동과 조우한다. 바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개들이 그들을 맞이한 것이다.

1958년 실제 있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1983년 개봉 당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일본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가 등장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고. 일본의 국민배우 다카구라 겐의 선 굵은 연기와 더불어 실제 오로라의 모습 등 남극 대자연의 풍광을 아름답게 담은 영상이 눈부신 작품이다. 국내에 잘 알려진 영화는 아니지만 반젤리스가 작곡한 테마 음악은 많은 이들의 귀에 익숙할 듯. (포니캐년, 국내 미출시)

남극일기와 비슷한 상황의 두 장면

기묘한 이야기 중 ‘설산’ - 설원의 외딴 오두막

<기묘한 이야기> 극장판에 수록된 '설산'은 비행기 사고로 조난을 당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설산이 몰고 오는 눈보라와 강추위 속에서 점점 생명의 끈을 놓치게 된다.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하나둘씩 환각 상태에 빠지고, 때마침 눈보라 속에서 나타난 오두막집은 그 절정의 순간이다.

<남극일기>에서도 끝없이 펼쳐진 설원에서 외딴집이 등장한다. 두 영화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추위를 피하는 장소가 결국 비극적 사건을 토해내는 곳으로 변화가 된다는 점이다.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은 종종 자제력을 상실하고 스스로를 사지로 몰고 간다. 조난이란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설산>과 도달불능점이란 목표를 가지고 자의로 길을 떠난 이들. 결국 전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지옥을 만들었고, 후자는 미지의 대륙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이 스스로를 집어 삼켰다.

버티컬 리미트 - 크레바스의 공포

산악 영화, 특히 눈 덮인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본 사람에게는 ‘크레바스’라는 용어가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바로 빙하 속에 생긴 깊은 균열을 뜻하는데 산악인들에게는 극히 조심해야할 위험요소로 인식된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땅이 갑자기 꺼지면서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돌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인 동시에 영화적 긴박감을 주기에 알맞은 장치다.

<남극일기>에서는 크레바스의 존재가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극대화시키고 긴장감을 높여주는데, 산악 액션 영화 <버티칼 리미트>에서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다. 기상조건을 무시한 무모한 산행으로 인해 눈사태를 만나고 급기야 크레바스 아래로 추락한 사람들. 설상가상으로 고산병으로 인한 폐부종에 걸린 그들은 마냥 구조대의 손길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위기에 처한다.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목숨까지 위협하게 되는데…. <남극일기>와 <버티칼 리미트>는 분명 다른 성격의 영화지만, 두 편 모두 극한 환경 속에서의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거라는 걸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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