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 오브 에코> <스티그마타> <헌티드 힐>. 최근 개봉한 3편의 공포영화를 보면, 10대 공포영화의 유행이 지나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영화들은 미국에서는 모두 지난해에 개봉했고, 뒤늦게 한국을 찾아왔다. <식스 센스>와 <블레어 위치>의 거대한 성공 뒤 개봉한 공포영화의 흥행은 <헌티드 힐>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좋은 설명이다. <슬리피 할로우>는 팀 버튼의 범작이었고, <스터 오브 에코>는 탄탄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식스 센스>와 너무 흡사했다. <스티그마타>는 졸작이다. <헌티드 힐>은 비평가들에게 욕을 먹어도, 공포영화 애호가들은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어쨌거나 관객은 정직하다.
유행이 지나가면 진짜가 온다
누군가의 말처럼 10대 공포영화의 유행이 지나가면, ‘진짜’ 공포영화들이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1996년 <스크림>이 공포영화의 재림을 알린 뒤, 모든 스튜디오가 10대 공포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나는 지난 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와 <캠퍼스 레전드>는 흥행에서 반짝했지만, 인기를 지속시키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스크림>에 필적할 만한 수작이 나오지 않았다. 하물며 <스크림>조차도, 영화의 역사에 아로새겨진 공포영화의 걸작 반열에는 끼지 못한다. 이구동성으로 절찬하는 공포영화의 마스터피스는 <할로윈> <엑소시스트> <죠스> <사이코> <나이트메어> 등이다. 올해 개봉한 <스크림3>는 여전히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건 <스크림> 시리즈가 이미 블록버스터급으로 성장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스튜디오는 10대 공포영화에 눈 돌리지 않고, ‘진짜’ 공포영화를 만든다. 물론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에서. 아직 뉴 라인이 준비중인 <제이슨 대 프레디>는 개봉하기만 하면, 흥행성공은 당연하다고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또한 <헌티드 힐>의 제작사인 다크 캐슬 프로덕션이나 재건된 해머 프로덕션 등 공포영화 장르에 매진할 계획인 전문 제작사들도 생겨났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스터 오브 에코> <스티그마타> <헌티드 힐>을 돌이켜보면,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공포영화들은 ‘게임의 법칙’을 교묘하게 활용했고, 그 기술적 숙련도에 따라 제각각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스터 오브 에코> <스티그마타> <헌티드 힐> 3편의 평점을 매긴다면 <스터 오브 에코>가 첫손에 꼽힌다. <스터 오브 에코>는 ‘평범’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잘 짜인 완성도 높은 공포영화다. <식스 센스>에 앞서 나오기만 했다면, 어느 정도 주목을 받을 만했다. <스티그마타>는 <엑소시스트>가 되고 싶어한 아류작에 불과하다. 공포영화 팬만이 아니라 일반 관객까지 끌어들이려 갖가지 양념을 뿌렸지만 이야기만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반면 <헌티드 힐>은 공포영화 애호가들을 겨냥하여, 그들이 선호하는 장르적 요소들을 듬뿍 담아놨다. 평론가들의 평은 무시해도 좋다. 공포영화 ‘장르’를 즐긴다면, <헌티드 힐>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패스트푸드’다. 물론 국내에서는 세편의 영화 모두가 흥행에서 실패했다. 언론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씨네21>에서도 공평하게 모두 1페이지씩만 할애했다. 주류 매체는 늘 장르영화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고, 늘 찬밥신세다.
<스터 오브 에코>, 우직하게 장르의 법칙을 따르다
이 세편의 공포영화들이 놓인 자리를 한번쯤 뜯어볼 필요는 있다. 이 영화들은 공포영화의 다양한 장르적 유형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 목표도 분명히 다르다. 우선 실패작부터 시작하자. <스티그마타>가 실패한 이유는 너무나 선명하다. 신들린 소녀와 ‘엑소시스트’(악마를 쫓는 주술사)가 등장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스티그마타>는 전형적인 첩보물이다. 히치콕의 영화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처럼 우연히 기밀정보를 알게되고, 거대한 조직에게 쫓기는 무고한 인물. 수많은 영화에서 답습한 이 공식을 <스티그마타>는 별다른 고민없이 차용한다. 프랭키는 죽은 신부의 묵주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티그마타’(성흔)가 온몸에 나타나 고통받는다. 스티그마타가 독실한 신자에게만 나타난다는 점은 일단 번외로 돌리자. 이건 영화니까. 공포영화에는 의도와 무관하게, 악령이나 괴물의 습격을 받는 선한 주인공이 늘 등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스티그마타가 말 그대로 ‘성흔’, 즉 성스러운 축복이라는 점이다. 프랭키가 앤드루를 공격하고, 굵은 목소리로 지껄이는 장면은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엑소시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스티그마타>는 주류영화가 되고 싶은 공포영화다. <엑소시스트>에서 출발해 <스크림>과 <식스 센스>가 계승한 월계관을 이어받고 싶었던 것이다. 시도는 거창하지만, 욕망에 비해 일천한 재능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스릴러의 공식과 공포영화의 테크닉을 뒤죽박죽으로 섞었지만 <스티그마타>에서 느껴지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 혹은 희열도 아니다. 어느 것에도 성공하지 못한 <스티그마타>가 잊어버린 것은, 오히려 장르적 공식에 충실한 영화가 대중의 사랑도 받는다는 점이다. <매트릭스>는 복합장르인 동시에, 가장 장르의 공식에 충실했다.
<스터 오브 에코>는 <식스 센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미 톰의 아들은 자연스럽게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있고, 톰은 최면에 빠져들어 ‘6감’의 문이 열린 뒤 아들과 동일한 시야로 보게 된다. 약간의 훈련만 있다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누구나 넘나들 수 있다고, <스터 오브 에코>는 말한다. 장화홍련 유형의 귀신은 동양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귀신이 한풀이를 해달라며 나타나 범인을 잡게 되는 이야기는 현대의 서양에도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주목할 점은 <스터 오브 에코>가 귀신이야기를 최면과 광기라는 관점에서 치밀하게 파고든다는 점이다. <스터 오브 에코>의 톰은 주변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유는 한 가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른이 말하면 당장이라도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한다. 어른의 상상은 죄악이고, 범죄다. 그의 광기는, 자신이 믿는 것을 이루기 위해, 혹은 증명하기 위한 시도다. ‘광기’라도 없다면, 그에게 남은 것은 정말로 미치는 것,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것뿐이다.
<스터 오브 에코>는 우직하게 공포영화 장르의 대로를 걸어간다. 데이비드 코엡은 일부러 지나치게 괴기한 장면을 삭제해 가면서까지, 관객을 ‘공포’의 핵심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림동화가 실제로는 상당히 잔혹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인 것처럼, 동서양의 신화와 전설이 살육과 치정이 얽힌 ‘인간’의 이야기인 것처럼 공포영화는 귀신을 통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무서워하는 한 이유는, 귀신의 존재 자체보다 귀신의 존재가 우리의 세계를 위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이 세계의 완결성이 침해받기 때문에, 합리성의 파탄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스터 오브 에코>는 한 소녀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살인자를 응징하는 것만으로 마무리를 짓지는 않는다. 톰은 오히려 더 많은 원혼의 속삭임을 듣게 된다. <스터 오브 에코>는 <식스 센스>의 우아한 결말 대신 정통적인 장르의 공식을 따른다. 그런 우직함이 <스터 오브 에코>를 소수의 것으로 만들었다. <스터 오브 에코>에는 일반적인 관객을 끌어들일 어떤 요소도 없다. <식스 센스>의 로맨스도 없고, <블레어 위치>의 거대한 ‘스캔들’도 없었다.
<헌티드 힐>, 테마파크 유령의 집
반면 <헌티드 힐>은 장르의 공식을 이벤트로 확장시킨다. 이미 말한 것처럼 <헌티드 힐>은 비평가들에게 졸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헌티드 힐>은 명작도 아니고, 우수한 장르영화도 아니다. <헌티드 힐>은 윌리엄 캐슬 감독의 58년작 <하우스 온 헌티드 힐>의 리메이크작이다. 늘 원작과 비교되게 마련인 리메이크작의 처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작 자체도 영화사에 남을 걸작은 아니었다. 전성기를 달리던 50년대 B급 공포영화의 대표작이고, 팀 버튼이 숭배하는 빈센트 프라이스의 작품일 뿐이다. 그런 원작을 <리셀 웨폰>과 <매트릭스>의 제작자인 조엘 실버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로버트 저메키스가 공동으로 제작을 맡아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전략을 택했을까.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B급영화에 대한 애정과 조엘 실버의 매끈한 장르공식이다.
<헌티드 힐>은 전형적인 B급영화의 이야기 구조에, 첨단 특수효과를 얹어 공포영화 애호가에게 익숙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장 드봉의 <헌팅>처럼, 고상하게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법도 없다. <헌티드 힐>의 첫머리에는 공포 테마파크의 설립자인 백만장자 스티븐 프라이스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스티븐 프라이스는 빈센트 프라이스에 대한 ‘오마주’이고, 공포 테마파크의 전략은 그대로 <헌티드 힐>의 전략으로 탈바꿈한다. 알면서도, 뻔한 두려움에 젖어보는 것.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가끔씩 비집고 나오는 기이한 모습을 즐기는 것이 바로 싸구려 공포영화의 한결같은 전략이다. <헌티드 힐>은 미치광이 박사 배너킷 역으로 제프리 콤즈를 기용하며 80년대 스플래터영화에 대한 애정까지 과시한다. 제프리 콤즈는 <좀비오>란 제목으로 출시된 스튜어트 고든의 포복절도할 스플래터영화 <리애니메이터>에서 사이코 과학자 역을 맡아 공포영화의 아이콘이 된 배우다. <헌티드 힐>은 장르적 즐거움을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헌티드 힐>이 개봉될 당시 배급사인 워너 브러더스는 영화의 상황처럼, 하룻밤을 특정 장소서 지내면 경품을 주겠다고 홍보했다. 로버트 저메키스처럼 스필버그 사단이었던 조 단테의 작품 <마티니>에서 보이듯, 관객의 공포감을 자극하기 위하여 의자를 흔들고 쇼를 만들던 50년대 B급 공포영화와 요즘 블록버스터의 바람몰이 홍보전은 크게 다르지 않다. <헌티드 힐>의 제작자인 조엘 실버도 그점을 잘알고 있다. <헌티드 힐>은 B급 공포영화의 느슨한 이야기에 짜릿한 흥밋거리를 담아내면서, 할로윈의 일반 관객이 충분히 찾아올 만한 오락을 제공한다. <헌티드 힐>은 그저 테마파크의 유령의 집 같은 영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쾌감을 준다. 이런 정도의 공포영화라면, TV에서 히트한 <납골당 이야기>처럼 언제나 일정한 수준의 성공이 가능하다. 공포영화의 마니아는, 어떤 장르의 마니아보다도 충성도가 높다. 공포의 쾌감은 워낙 중독성이 높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