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영화를 ‘본다’고 표현하지만 그 표현에서 ⅓ 정도는 ‘듣는다’가 포함돼 있다. 액션, 에스에프, 공포 등 장르영화로 가면 그 비중은 훨씬 높아진다. 주로 강북에 있는 언론사 영화기자들의 원성을 사면서도 대작 장르영화들이 사운드 시설이 좋다는 강남 메가박스에서 언론시사회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심하게 듣고 흘리는 사운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에 가보았다. 사운드 믹싱에 왠 촬영소? <쉬리>부터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개봉중인 <혈의 누>까지 사운드 ‘빵빵한’ 영화의 소리를 담당한 ‘블루캡’은 종합촬영소 일부를 임대해 작업하고 있는 회사다. 지금은 7월 개봉 예정인 공포영화 <여고괴담4:목소리>를 작업중이다. 무섭다. 하필 공포영화라니. 전날 시사회에서 <하우스 오브 왁스>를 보며 내내 틀어막고 있던 귀가 아직도 얼얼했다.
어라? 북적거릴 줄 알았는데…
일본영화 <웰켐 미스터 맥도날드>처럼 더빙을 하는 배우와 효과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기계를 만지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북적거릴 거라고 생각했다. 전혀 아니었다. 살금살금 들어간 첫번째 방에서 만난 최익환 감독은 비디오 화면을 보면서 후시녹음(ADR) 담당자와 더빙처리할 대사 부분을 체크하고 있었다. 마이크는, 커다란 믹싱기계는 다 어디 있는 거야? “사운드 작업은 보통 후시녹음 부분과 특수효과음제작, 폴리녹음, 앰비언스를 분리해서 작업하죠. 특히 사운드가 중요한 공포영화에서는 동시녹음을 해도 사소한 소리들까지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다른 영화에 비해 후시녹음 분량도 꽤 많은 편이죠. 한 30% 정도?” ‘폴리’란 걸음 소리, 비오는 소리 등 일상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 파트. <클리프 행어>에서 암벽을 탈 때 나는 크고 작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직접 녹음기를 부착하고 암벽 등반까지 했다는 ‘폴리’녹음의 전설적 존재인 잭 폴리의 이름을 딴 효과음 파트다. 앰비언스는 거리와 실내 분위기 등 영화를 보면서 거의 인지하지 못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미시적 소음들을 조합해내는 파트다.
비오는 소리는 ‘폴리실’ 에서
폴리실을 가보니 ‘돛대기 시장’이 따로 없었다. 낡은 냉장고, 자동차 문짝부터 생수병까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보통의 녹음실처럼 생긴 작은 부스에 블루캡의 김석원 대표가 앉아 있었고 소품들이 있는 아래 방에 폴리 아티스트인 심규종씨가 파트너와 함께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심씨가 힘껏 내던지는 커다란 찰흙 덩어리는 주인공이 쓰러질 때 나는 쿵소리를 대신한다. “뭉쳐진 도예찰흙은 사람 피부와 비슷한 질감이예요. 실제로 몸이 부딪히거나 맞을 때 소리가 잘 안나거든요. <주먹이 운다>의 펀치가 오가는 장면도 찰흙덩어리를 때리면서 소리를 만들어냈죠.”
놀랍게도 걸음소리 뿐 아니라 의자에 앉을 때 나는 교복의 사각거리는 소리, 악보를 들 때 나는 종이소리까지 모두 폴리 녹음으로 새롭게 제작되고 있었다. “폴리는 영화와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합니다. 화면에 실감을 높이면서도 그냥 귀에 묻혀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튀면 안되죠” 김 대표가 말했다. 영화에서 보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소리들이 대부분 이처럼 인공적인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폴리아티스트에게 주문되는 일은 끝도 없다. “얼마 전에는 어떤 단편영화에서 개가 개밥먹는 소리까지 냈는 걸요.” <실미도> 때부터 블루캡과 작업한 심규종씨는 우리나라에 대여섯명도 안되는 폴리아티스트 가운데 한명이다.
사람 놀래키는 ‘특수효과실’
특수효과실에는 사운드 에디터 박주강씨가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여러가지 샘플을 뒤적이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기괴한 공포음이나 사람을 깜짝 놀래키는 소리가 박씨가 만들어야 하는 음향들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액션영화는 효과음의 사실성이 중요하죠. 반면 공포영화의 소리들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소리들이 많이 들어가요. 그만큼 찾아내기도 조합하기도 힘들죠.” 그렇지만 별 것도 아닌 장면에서 요란한 굉음으로 사람을 놀래키는 “상도덕에 어긋나는 사운드”는 피하겠다는 것이 박씨와 최 감독의 공통된 생각이다. 아직 한국 공포영화에는 맥락없이 놀래키는 특수효과음들이 남발되는 편이지만 세계적으로는 한물 간 추세라고 한다. “물 떨어지는 소리나 팬 돌아가는 소리처럼 평범한 일상의 소리 하나를 돌출시켜 왜곡하거나 변형해서 긴장감을 높이는 게 새로운 트랜드예요. <패닉 룸>같은 영화에서 잘 표현됐죠.” 또한 그는 <여고괴담4:목소리>에서 각각의 주인공 캐릭터별로 마치 테마 음악처럼 테마 효과음을 표현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여고괴담4:목소리>는 ‘사라져가는 목소리’를 모티브로 한 소리의 영화다. 사운드 작업에만 두달 정도 투자한다. 길어야 한달, 급하게는 일주일 만에 완성하는 여느 영화들보다는 여유있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슬쩍 작업실을 열어본 사운드팀에게는 언제나처럼 빠듯하고 초조하게 하루가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