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뻑 취한다. 와인의 향기에 취하고, 재즈의 느긋함에 취하고, 사랑의 농담에 취한다.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가 갈수록 편해진다. <일렉션> <어바웃 슈미트>를 거쳐 완성된 <사이드웨이>엔 <시티즌 루스>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순화된 여성판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같은 영화는 이제 없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가 무색무취로 변한 건 아니다. 그는 페인식 소박한 천국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두 남자가 총각파티를 겸해 와인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두 여자를 만난다. <사이드웨이>는 그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다. 공자는 마흔이면 불혹이라고 했다. 필자 또한 나이 마흔이면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한데, <사이드웨이>의 두 마흔살 남자를 보자. 영어선생은 어머니의 쌈짓돈에 여전히 손을 대고, 결혼을 앞둔 배우는 여자만 보면 아랫도리가 가만히 있질 않는다. 흔들림 없는 신념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인간관계에도 서툰 그들을 보면서 자꾸 웃음이 나오다가, 결국 궁상맞은 사십대가 무슨 죄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날이 추워지면 캘리포니아의 우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가을을 지나 영화가 마칠 때쯤 사부자기 오는 비가 마음을 적신다. 궂은날을 지나온 한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좀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엔 조금씩 늦게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다. 부록으로는 화목하고 경쾌한 분위기가 가득한 ‘제작 뒷모습’, 페인의 익살맞은 노트가 붙어 있는 ‘삭제장면’이 있다. 미국판 부록이 몇개 빠졌으나 DVD는 영화의 산뜻함과 그럭저럭 어울린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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