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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근대의 싹을 밟았는가, <혈의 누>
2005-05-25
글 :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션 : 김연희
좌절된 근대에 대한 총체적 고찰 보여주는 <혈의 누>

※ 이 글은 <혈의 누>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혈의 누>는 소설 <혈의 누>로부터 이름과 더불어 ‘혈의 누’로 대표되는 ‘신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따왔다. 영화 <혈의 누>는 신소설 장르의 주제/소재/특징을 갖는다. 신분제 비판, 미신 타파, 자유연애 등의 신소설의 주제의식들이 영화 <혈의 누>의 신분제에 대립하는 강 객주, 무속에 대립하는 수사관, 연애감정에 휩싸인 범인 등을 통해 드러나고, 신소설의 주요 소재인 원한/복수/살인(<귀의성> <봉선화> <구의산> <춘몽> <소양정> <화상설> <현미경> 등에서 범죄 은폐, 복수, 탐욕, 질투에 의한 살인이 중심사건이다)이 영화 <혈의 누>에도 이어진다.

또한 ‘주제는 근대성을 주창하면서 내러티브는 전근대성에 묶여 있는’ 불철저함이 신소설의 한계로 지적되는데, 영화 <혈의 누> 역시 근대와 전근대간의 모순과 중첩이 발견되는데, 여기에선 그 모순이 한계가 아닌 풍부함으로 전유된다.

조선의 근대를 절멸시킨 범인은 누구인가

외세에 의한 강제개항으로 식민지적 근대를 겪은 우리 국민은 ‘자생적 근대’를 꿈꾼다. 자생적 근대의 맹아를 찾고자 하는 눈물겨운 노력은 ‘실학’을 ‘구성’해내고, 정조 시기를 ‘조선의 르네상스기’로 재명명하기에 이르렀다. 18세기는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시계와 안경을 곁들인 호사스러운 화면으로 공상하는 시절이자, 소설 <영원한 제국>이 ‘자생적 근대의 좌절’을 ‘왕권 대 신권의 대립’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풀며 애석하게 추억한 시대이다.

그러나 <혈의 누>는 호시절이었던 정조시대와 이양선이 출몰하기 시작하던 헌종시대 사이, 거의 블랙박스에 가까운 순조시대로 들어가, 무엇이 ‘자생적 근대’를 절멸시켰는지 입체화한다. 망원경, 안경, 총 등 도구의 유입이 근대성을 성취시키지 않으며, 지배계급의 정치이데올로기 변화가 근대를 추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구조선의 축소판 ‘동화도’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혈의 누>는 ‘자발적 근대의 좌절’을 ‘외세의 침략’이나 ‘소수의 지배계급’의 문제가 아닌 ‘조선 내부의 총체적 문제’였음을 뼈아프게 드러낸다. 지배세력(김치성과 토포사)의 구질서가 중간계급(장 호방, 조 객주 등 발고자)의 사욕을 매개로 기층민의 비겁한 동의와 담합함으로써 근대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다. 또한 근대적인 인물들 역시 불완전한 근대성을 보인다. 원규는 합리적인 사고로 무장하고 있지만, 아버지와 유교적 인본주의(지배자에 의한 자비)가 그를 존재론적/인식론적으로 지배한다. 강 객주는 초기자본가로 거시적 근대성인 신분철폐를 주장하나, 미시적 근대성인 자유연애에는 봉건적이다. 김인권은 산술과 공학에 능하고 자유연애의 욕망을 구현하지만, 거시적 측면에서는 아버지의 기득권을 유지하며 산다. 그가 미시적 근대성만 획득했다는 사실은 ‘심허로’로 인해 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자폐성에 의해 더욱 구체화된다. 반쪽짜리 근대성의 표징인 강 객주의 원혼과 김인권의 살의가 한몸이 되어 ‘2인3각의 복수극’을 펼치고, 이는 무당에 의해서는 주술적으로, 원규에 의해서는 사실적으로 해명된다. 그러나 원규의 태생적 한계와 마을 사람들의 폭거는 사태를 봉합하고 진실을 봉인한다.

다수의 죄의식, 마녀사냥이 시작되는 지점

마을 사람들의 할극(割劇)과 혈우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진정한 주제를 드러낸다. <여고괴담>에서 “내가 잘할게”라는 선생에게 “넌 늙은 여우가 될 거야”라며 해치려는 귀신을 친구가 말리자, 귀신이 물러가며 혈우가 내린다. 그러나 <혈의 누>에서는 “내가 바로잡겠다”는 원규에게 “너도 아비처럼 칼로 부끄러움을 덮고 살 것”이라 비웃는 범인은 죽지만, 마지막 처형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대신 집행된다. 그들은 과거와 연루되어 있기에, 복수를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죄의식을 면죄받고자 복수를 완수한다.

<혈의 누>는 근대를 좌절시킨 책임을 외부로 돌리거나 지배층에 한정시키지 않고, 조선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또한 억압된 역사의 봉인된 진실과 과거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죄의식이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과거청산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과거청산이 ‘아버지’와 절연치 못하고 대중을 선정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인본주의자의 결단에 의해 ‘해원 상생’의 논리로 전개되리라는 믿음은 순진한 미망이며, 오히려 ‘우리 안에’ 만연된 죄의식을 소수에게 국지화해 ‘나쁜 소수와 결백한 다수’의 구도에서 면죄받으려는 대중의 욕망이 ‘마녀사냥’혹은 ‘희생양 참수’의 광포한 논리로 몰고 가기 쉽다는 것을 경고한다. 근대국민국가 만들기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 참으로 의미심장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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