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5월28일(토) 밤 11시40분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를 떠올리면 광인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귀레, 신의 분노>(1972)에서 그는 아마존의 밀림으로 군대를 끌고 들어가는 아귀레의 모험담을 펼쳐보인 바 있다. 병사들은 하나씩 죽어가고 그 와중에 과대망상의 증상을 보이는 아귀레는 스스로 절대자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클라우스 킨스키의 광적 연기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영화가 <위대한 피츠카랄도>이다. 마찬가지로, 아마존을 무대로 하는 이 영화에서 클라우스 킨스키는 거대한 배를 끌어올려 산을 넘는 무모한 모험을 벌인다. <아귀레, 신의 분노>와 <위대한 피츠카랄도> 모두 1970년대에 생겨난 새로운 독일영화, 즉 ‘뉴저먼 시네마’의 일원이었던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작이다. 20세기에 막 접어들었을 무렵, 유럽에서는 혁신적 문화의 기운이 감돈다. 피츠카랄도는 가극왕 카루소의 오페라 공연에 감명을 받고 아마존 정글의 친구들에게 들려주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정글에 오페라하우스를 세우는 믿지 못할 모험이 시작된다.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참다못한 그는, 아내 몰리와 함께 오페라하우스 건축에 드는 비용 마련을 위해 고무를 찾아 증기선을 타고 아마존 정글로 떠난다.
<위대한 피츠카랄도>는 비정상적 집념을 지닌 한 남자의 열정을 그려내고 있다. 정글에 발을 대디딘 피츠카랄도는 고무 거래에서 독점적 권리를 얻기 위해 묘책을 생각한다. 300t이 넘는 거대한 증기선을 끌어올려 육지로 향하게 하고, 높은 산을 넘어가는 것이다. 더위와 질병, 그리고 정글의 험한 기운이 위협하지만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다른 헤어초크 감독작에 비해 <위대한 피츠카랄도>는 신화적 비유나 내용상의 풍부함은 비교적 덜한 편이다. 하지만 큰 몸집의 배가 원주민들의 손에 이끌려 언덕을 넘는 장면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 밖에 카루소의 음악을 들려주는 낡은 축음기, 정글이라는 장엄한 풍경, 원주민과 피츠카랄도의 유대가 얽히는 등 시적 이미지가 영화를 지배한다. 원시와 문명의 만남, 그리고 광기와 예술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위대한 피츠카랄도>는 접하기 쉽지 않은 진경을 펼쳐 보이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어느 비평가가 논했듯 “모색과 꿈의 기록으로서, 인간의 대담성과 어리석고 몽상가적 영웅주의의 기록으로서” 손색없는 것이다. 헤어초크 감독과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는 애증관계로 얽혀 있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감독은 다루기 어려운 이 배우를 빗대 “짐승을 다스리는 기분”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킨스키가 세상을 떠난 뒤 헤어초크 감독은 그와 나눈 우정을 추억하면서 다큐멘터리 <나의 친애하는 적>(1999)을 만들어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