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잔디밭, 커다란 개를 데리고 빙글빙글 춤을 추는 남자. 남자의 이야기를 듣던 부인과 소년들의 눈에 어느새 개는 커다란 곰이 되고 공원은 쇠라의 그림 같은 서커스의 사육제로 변한다. 지난 겨울에 본 <네버랜드를 찾아서>의 한 장면입니다.
피터 팬을 쓴 극작가 존 베리의 인생을 통해 사람에게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상상력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이 영화를 본 날은 파리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을부터 다음해 봄이 오기 직전까지 늘 파리엔 비가 내립니다. 그맘 때의 파리는 거리도 마음도 모두 우울한 회색입니다. 건축을 공부하는 남편과 결혼해서 프랑스에 온 지 4년, 벌써 네 번째 겨울인데도 저는 도무지 이 도시의 우울에 익숙해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오후 파리 구석의 한 영화관에서 저는 그를 만났습니다. 조니 뎁. 불온하고 반항적이고 거친 청춘을 거쳐 왔으며 아이돌 스타로 출발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괴팍한 영화에만 출연해온 괴짜.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가진 배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그날 그가 가진 변하지 않은 그 무엇인가에 결국, 매혹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랑하는 모든 것에 상처를 입히던 <가위손>의 에드워드로부터 어머니에 대한 악몽을 간직한 채 목 없는 기사를 쫓는 <슬리피 할로우>의 심약한 수사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캐리비안의 바다를 떠도는 잭 스페로우 선장까지, 지금까지 그가 연기한 배역은 모두 현실과는 100만년 이상은 떨어진 환상 속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배우 조니 뎁이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환상입니다. 드라마를 쓰면서 왜 그렇게 자꾸 주인공을 죽이냐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건 사라짐이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옛 사랑, 옛 기억, 잃어버린 것들, 소멸 된 것들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프랑스의 소설가 모디아노는 자신의 소설 <서커스가 지나간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커스가 지나간 다음, 천막이 걷힌 다음 현란한 서커스의 불빛이 사라진 텅 빈 공터에서 나는 남아 있는 공포를 느낀다’. 실은 저도 사랑이든 젊음이든 아름다움이든 세상에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결국은 소멸로 갈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렵습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 아름다운 것들이 그저 한순간 서커스처럼 존재했다가는 어느새 무섭게 사라져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것들이 지나간 다음 남은 삶의 공허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저는 그렇게 드라마마다 주인공들을 죽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를 박제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 이유일 겁니다. 제가 조니 뎁 이란 배우에게 매혹된 것은. 그는 영화를 통해서 변하는 것들 속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존 베리로 분한 그가 병상에 누운 케이트 윈슬렛에게 보여줬던 네버랜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믿기만 한다면 세상의 무엇이든 가능하다며 속삭이는 그. 현실에선 우리가 결코 볼 수 없었던 꿈들을 재현해 주는 그. 단지 개와 춤추는 것만으로 이미 지나버린 서커스의 빈자리를 다시 채워줄 수 있는 그.
그와 함께 상상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이제는 더 이상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비 오는 오후에 저는 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를 만나고 영화관을 나서자 하늘은 오랜만에 활짝 개어 분홍색 황혼이 하늘 가득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치… 환상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