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아름다운 무정형의 고집, <간큰가족>의 감우성
2005-05-26
글 : 김도훈

감우성은 편안해 보인다. 파리의 양철 지붕 아래 다락방처럼, 내장재를 그대로 드러낸 스튜디오로 새어들어오는 빛과 나무 바닥이 약간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를 무장해제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찰칵. 카메라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 그게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디지털카메라는 별로 말이 없다.

여전히 <거미숲>과 <알포인트>의 잔상이 아른거린다. 지친 영혼을 가진 남자의 광기어린 눈망울이 또렷이 떠오른다. 그 잔상 앞에서는 뽀글거리는 파마머리 백수가장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다. <간큰가족>에서 감우성은 북에 두고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시한부 아버지를 위해 ‘가짜 통일소동’을 벌이는 큰아들 명석을 연기했다. 백수가장이 노리는 것은 아버지가 ‘통일이 될 때까지는 사용할 수 없다’고 못박아놓은 엄청난 유산이다. 명석의 지휘 아래 간큰가족은 통일신문을 만들고, 통일방송을 만들고, 통일 서커스단을 만든다. <간큰가족>은 궁상맞은 삶에서 벗어나보려는 아들과 통일 꿈을 꾸는 아버지에 대한 코미디영화이며,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를 이어주는 가족드라마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를 하고서도, 감우성은 결코 자신을 함부로 풀어두지만은 않는다. “망가지는 영화였으면 나한테 섭외가 오지도 않았을 거다. 분명히 내 고유한 이미지에서 바라는 게 있었을 것이다. 코미디지만 나름대로의 합당한 조율을 해주기를 바랐던 거겠지. 그런데 그런 역할만 수행하면 코미디 장르에 도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서 헤어스타일을 제안했다. 사실은 상의도 없이 그냥 해가지고 갔다. ‘그냥 나 이렇게 가겠습니다’하고. (웃음) 누가 싫대도 내가 확신이 들면 되는 거다. 나만 잘되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영화에 도움이 되는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니까. 그런 자잘한 것까지 도움을 바라면서 수동적으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힘에 부친 전작(<거미숲> <알포인트>)들을 통과하면서, 감우성은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예정대로 진행되어 예상대로 성공하는 영화는 드물고, 그런 패를 손에 쥐기 또한 쉽지는 않다는 교훈이다. 그걸 깨닫는 과정은 뼈아팠지만, 그는 “이제는 좀 덜하다”고, “확실히 덜하다”고 말한다. 원 페어로도 판을 따는 요령을 배웠고, <간큰가족>은 그런 요령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작업한 영화였다. “진지한 것들에 좀 질려갈 무렵 마음 편하게 먹자 싶어서 출연했다. 그런데 의외의 성과가 있더라. 대본의 만족도도 그저 무난한 수준이었는데. 찍으면서 상당히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북한 촬영이 성사되어서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었다. 이제는 미리 넘겨짚어 함부로 영화를 예견하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해봐야 아는 거다. <간큰가족> 같은 경우는 흐뭇하다. 찍으면서 더 좋아진 케이스다.” 생각난 김에 어느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간큰가족> 섹션에 누군가가 달아놓았던 댓글을 끄집어내어 들려주었다. ‘어떤 영화인지 모르겠지만, 감우성이 고른 시나리오라면 믿는다’라는 짧은 댓글이었다. 감우성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너무나, 너무나 뿌듯하다. 그거 이상 좋은 게 없다. 나는 배우다. 사람들이 믿음과 신뢰를 가져주는 게 가장 큰 기쁨이다. 출연작이 세편 연속으로 흥행에 성공했다고 배우의 가치를 높게 쳐주는 건 광고계가 할 일이다. 나도 돈벌이 되는 일이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그건 신뢰를 얻고난 다음이다. 배우로서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관객의 신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는 관객의 신뢰를 얻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유독 작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고, 때로는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말을 듣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산으로 가면 배우가 먼저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앞에서는)수고하셨습니다. (뒤에서는)어차피 영화는 망했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그렇게는 못한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함께 영화를 만드는 순간, 개인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어야 하는 거다.” 감우성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예술이 아니고 사람 사는 모습이라고 했다. “예술이냐 아니냐는 보고난 사람들이 아름답게 포장해서 글로 표현해주면 되는 거고, 우리야 정신없고 난잡하게 일단은 벌여놓고 만들어가는 거지. 그 안에 있으면서 영화 만들기를 예술이라고 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는 조용조용히 ‘신뢰’와 ‘의미’같은 단어들을 내놓으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여러 배우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는 걸 오랫동안 간접적으로 봐왔고, 그렇기 때문에 그걸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아서 선택한 것이 지금 나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그는, 직선으로 돌파하는 영광의 길을 마다하고, 많은 가능성을 지닌 우회로들에 신중하게 곁눈질을 하면서 ‘그만의 방법’을 지켜나갈 참이다. “엉겁결에 좋은 패가 들어와서 영광을 누려보는 것도 좋겠지만, 다음 판을 감당할 실력이 없으면 어차피 그 판은 다 잃게 마련이다. 판돈은 지켜가면서 해야 한다. 밤을 새더라도 올인은 하지 않으면서 다음 판을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요령이다. 한꺼번에 베팅하는 작전은 쓰지 않는다. 조금씩 베팅하면서, 조금씩 손해도 보면서 말이다. 아니, 시작도 하기 전에 패 한장 손에 쥐고 ‘다이’할 순 없는 거 아닌가.” (웃음)

인터뷰를 마친 감우성은 조용히 스튜디오 다락방의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철컥. 어딘가에서 카메라의 셔터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감우성은 디지털카메라의 유려함보다는, 구식 카메라의 경쾌한 셔터음이 어울리는 남자다. 환쟁이고, 배우고,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를 지닌 이 남자에게는, 오래오래 땅속에 묻어두었던 담백하고 차가운 동치미 같은 구석이 있다. 그건 어떤 모양의 사기그릇에 담아도 제 맛만은 지켜낼, 보이지 않는 무정형의 고집일 것이다.

감우성이 말하는 반대말 사전

감독 / 배우

돈이 어디 있나. 할리우드에서야 한두편만 성공해도 수백억원을 버니까 감독으로 쉽게 데뷔하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될 수조차 없다. 다만 나는 배우 입장에서 영화의 질을 10% 업그레이드시키는 데는 최선을 다할 거다. 감독이 무슨 욕심으로 될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영화에 지나치게 깊이 참여하면 결함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배우인 나는 그런 결함들을 찾아나가는 거다. 편집본을 안 보는 이유도 냉정하게 영화의 완성도를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다.

논리 / 직관

예술이 어디 직관과 논리로만 되겠나. 적절히 조합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술가의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 내가 환쟁이 출신이라 예로 드는 거지만, 그림도 마찬가지다. 우연한 터치로만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획을 그으면서 계산된 실패와 반복을 거듭해야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건데. 사실 그게 가장 힘들다. 나도 그러고 살지 못하니까.

북한 / 남한

<간큰가족>에서 생뚱맞게 이산가족 이야기가 나와도 마음이 동해서 눈물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비록, 민방위 훈련 나가서 투철한 애국정신으로 훈련하지는 않더라도, 억울한 민족적 분노는 잊지 않으려 한다. 이 영화 속에서 내가 흘린 눈물은 흥행작을 만들기 위한 연기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영화 촬영을 통해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물론 그런 거 다 잊어버리고 돈이나 버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분노와 억울함은 항상 가지고 살았으면 싶다.

일상 / 일터

집에서 쉬는 게 최고다. 농사나 지으면서. 안 어울린다고? 상추, 가지, 오이, 토마토, 치커리. 심어놓은 게 열몇개는 된다. 참, 술도 담근다. 더덕주, 앵두주, 대나무주, 매실주. 음, 더덕주가 최고인 것 같더라. 담근 술 한잔하면서 그동안 못 본 영화 DVD로 보고. 사운드 빵빵하게 틀어놓아도 시골이라 뭐라하는 사람이 없다. 정말 행복하다. 지금껏 겪어온 경험들이 이렇게 나를 인도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지 않았더라면 스트레스를 온통 술로 풀었을 것 아닌가.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하고만 일상을 연장하는 것도 머리 아픈 일이고. (웃음)

사진 김보하·스타일리스트 윤상미(인트렌드)·의상협찬 타임옴므, CK, NARACAMI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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