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밀밭 빛깔 같은 금발에 190cm 가까운 훤칠한 키, 큰 입으로 시원하게 그리는 미소의 애시튼 커처는 전형적인 ‘미국산’이다. 그의 성공담도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이다. 커처는 배우로 데뷔 전 시급 12달러를 받으며 식품제조공장의 바닥을 비질했고, 아이오와대학에 다닐 때는 너무 가난해서 매혈(賣血)을 한 적도 있다. 그는 70년대를 배경으로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복고적이고 코믹한 방식으로 그려낸 TV시리즈 <70s Show>의 성공적인 데뷔로 스타덤에 올랐고, 그뒤 영화로 활동무대를 넓혔다. 그리고 전세계가 그를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든 가장 미국적인 사고를 쳤다. <미녀삼총사: 맥시멈 스피드>에서 전신 성형을 하고 근사한 몸매를 드러내며 요란하게 영화계에 복귀한 15살 연상의 데미 무어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무어, 무어의 전남편인 브루스 윌리스, 무어와 윌리스의 세딸들(커처를 ‘다른 아빠’라고 부른다는)과 함께 포즈를 취한 애시튼 커처의 사진은 미국의 연예 프로그램에서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되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두편, TV 쇼 두개, 그리고 연예프로그램들과 가십 잡지에 수시로 등장하는 애시튼 커처는 행복한 ‘노출 과다’ 상태. 십대 소녀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장난꾸러기 꽃미남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애시튼 커처는 TV와 영화 양쪽에서 모두 인기가 높다. 커처는 한국에서도 케이블TV로 방송 중인 <70s Show>의 바보 같고 철없는 켈소 역으로 데뷔했다. 그는 이후 몇편의 영화에서 단역을 거쳐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의 숀 윌리엄 스콧과 함께 출연한 <내 차 봤냐?>에서 <덤 앤 더머>에 버금가는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커처의 필모그래피는 코미디로 제대로 꽃을 피운다. 그 자신이 제작에 참여한 <펑크드>는 우리나라로 치면 <몰래카메라> 같은 TV프로그램. 스타들을 당황스런 상황에 빠뜨려놓은 뒤 커처가 “너 속았어!”라며 등장하는 이 프로는 2003년부터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영화에서도 착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간 커처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에서 철 안 드는 새신랑을, <열두명의 웬수들>에서 그 자신을 패러디한 것 같은 왕자병 걸린 배우를 연기하기도 했다.
커처의 필모그래피는 그의 재능이 청춘코믹물에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의 표정 연기나 얼굴 생김새는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보다는 까불고 장난치고 환하게 웃는 데 더 잘 어울린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얼굴만 믿고 반짝 떴다 질 청춘스타라고 치부해버리기는 힘들다. 그는 연기만큼이나 제작 일에도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TV쇼 <펑크드>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물론이고, 주연을 겸한 스릴러물 <나비 효과>의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코미디로 굳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자구책이 아니었을까. 커처는 ‘최고의 배우’보다 ‘가장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옛말을 믿지 않는다. 내 생각에 복은, 소망이 너무나 간절해서 가만히 앉아 있는 대신 행동을 취하는 자에게 온다.”
<우리, 사랑일까요?>에서 애시튼 커처는 제 짝인 여자를 스쳐지난 뒤 그녀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7년이나 되는 세월을 보내는 올리버를 연기한다. <우리, 사랑일까요?>의 올리버는 보통 남자다. 그의 짝인 에밀리는 고스족 같은 검은 옷차림과 짙은 화장으로 무장한 쿨한 여성이지만, 올리버는 그저 안정된 일거리를 갖고 가정을 꾸리는 게 지상목표다. <70s Show>에서 70년대 청춘을 연기한 적이 있는 그는 이번에는 90년대 소시민적 젊은이의 일면을 보여준다. 에밀리의 창 밖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직접 부르는 장면에서 커처의 모습은 평범한, 그래서 그에 대한 애정을 쉽게 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다. 그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불타오르는 청춘의 열정이 아니라, 도전정신에 모든 것을 던지는 모험심이 아니라, 그저 그를 보는 것만으로 씩 미소짓게 하는 즐겁고 유쾌한 그 지점에. “나는 단지 아주 재미있게 살고 싶을 뿐”이라는 커처의 말은 그래서 전혀 놀랍지 않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타블로이드에서 떠드는 무어와 자신에 대한 가십 뉴스를 읽게 된다면 마치 남의 일처럼 낄낄거리고 웃어넘길 것만 같은, 기꺼이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게 애시튼 커처가 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