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피스의 무대와 무르나우의 시와 로셀리니의 그림과 에이젠슈테인의 율동과 르누아르의 음악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존재하게 됐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니콜라스 레이다.’ 장 뤽 고다르가 1959년에 쓴 글은 감독에 대한 최상의 경의라 하겠다. 프랑수아 트뤼포부터 빈 벤더스까지 뉴웨이브 감독들에게 니콜라스 레이의 영화는 그런 존재였다. 무대와 시와 그림과 율동과 음악이 모두 녹아 있는 그 어떤 것. 그들에게 레이의 <그들은 밤에 산다>는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에 버금가는 데뷔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누아르의 외양을 띈 <그들은 밤에 산다>는 사실 아름다운 서정시며, 영화의 영적인 느낌은 버려진 자들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들은…>은 ‘이 소년과 소녀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하련다’란 자막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레이는 한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자들을 최초로 주체적인 인물로 선언했던 게다. 도주하는 범죄자들이 종종 신경과민증 환자였던 반면, <그들의…>의 보위와 키치는 순수하고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가련한 연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응시의 대상이 아닌 진짜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같은 해 등장한 <건 크레이지>와 <미치광이 피에로>(1965),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 <황무지>(1973), <슈가랜드 특급>(1974), <내추럴 본 킬러>(1994) 등 영향을 주고받은 영화는 많지만 아무도 <그들은…>의 울림을 넘어서진 못했다. 레이의 주인공들은 아웃사이더라기보다 부적응자에 더 가깝다. 보위와 키치의 고독은 이후 방황하는 십대와 레이스 옷에 총을 든 여자와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외로운 로데오 선수 등에게로 옮겨갔다. <그들은…>의 원작소설인 에드워드 앤더슨의 <우리 같은 도둑>을 25년 뒤 다시 영화화한 사람은 로버트 알트먼이었다. 1970년대 초반 전성기를 보내던 그가 리메이크를 결심한 것이나 몇몇 사건묘사와 화면 구도를 <그들은…>에서 놀랍도록 유사하게 따온 점이 흥미롭긴 하지만, <보위와 키치>는 기본적으로 ‘도주하는 갱스터’의 규칙을 따른다. 현실과 시, 고통과 초현실의 결합이 사라진 <보위와 키치>는 거칠고 사실적이며 간혹 요란을 떤다. 라디오를 이용한 상황 묘사와 상세한 관계의 기술에서 보듯 알트먼은 장기인 시대와 인물 읽기에 치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DVD는 감독과 작품에 관한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싣는 등 RKO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보위와 키치> DVD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출시본이란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