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투덜양] 우길 걸 우기시오! <킨제이 보고서>
2005-05-27
글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투덜군, <킨제이 보고서> 마케팅의 사실왜곡을 폭로하다

<식스 센스>의 개봉 이래, 최근까지 워낙에 각종 반전무비들이 창궐해왔던 까닭에 이른바 ‘스포일러’는 영화 주최쪽과 관객 모두를 위협하는 커다란 적으로 급부상했다. 평소 ‘시류에 편승하여 대세에 야합한다’라는 신조를 품고 살아온 필자 역시 이에 부화뇌동하여, 사실 그거 좀 안다고 하여 영화 보는 데 큰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닌, 아니, 사실 그런다면 그건 오히려 영화쪽이 문제가 있는 거라고 보여지는 사소한 얘기를 적어놓고도 일일이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등등의 자진납세를 하는 등 오로지 스포일러로 낙인 찍히지 않고자 하는 작금의 추세를 맹목적으로 따라왔다. 그 영화들이 내놓은 같잖은 반전 나부랭이들의 실체를 백일하에 발고해내기는커녕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에 필자는, 지난날 필자가 걸어왔던 비겁하고도 안이한 행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깊은 반성과 속죄의 의미로 이번에 개봉하게 된 <킨제이 보고서>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고자 한다.

<킨제이 보고서>는 <러브 액츄얼리>에 출연했던 두 배우가 주연을 맡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영화의 대통을 잇는 로맨틱코미디라는 냄새를 풍기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심지어 이 영화는 ‘섹스 액추얼리’라는 카피마저 과감히 사용함으로써 그러한 의도를 더욱더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결국 많은 관객은 이 영화가 ‘킨지 보고서를 만들 당시 벌어졌던 각종 해프닝을 로맨틱하면서도 코믹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린 영화’ 뭐 이런 걸 기대하셨을 텐데, 이는 실상과 달라도 대단히 다르다.

그렇다면, <킨제이 보고서>는 어떠한 영화인가. 이 영화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전기영화다. ‘킨지 보고서’를 만든 앨프리드 킨지 박사의 삶을 다룬, 나름대로는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의 전기영화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로맨틱코미디의 탈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을 필요도 없이, 그렇게 알려지면 손님이 들 것 같지가 않으니까지 뭐겠어. 근데, 그렇다면 이 영화를 로맨틱코미디로 오해한 채 봄내음 가득한 핑크빛 사랑과 정열을 가슴 가득 안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대체 어쩌라는 얘기인가.

필자는 기억한다. 왕년, 우리나라에서 비디오 문화가 막 태동하던 그 시절, 주최쪽이 영화의 실체와는 전혀 관계없는 제목이나 카피 그리고 그림을 비디오 껍데기에 박아놓음으로써 수많은 걸작들이 B급 에로영화 또는 3류 액션영화 또는 쌈마이 공포영화로 오해되어, 어두운 비디오숍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써야만 했던 그 시절을 말이다. <킨제이 보고서>가 그런 걸작들의 반열에 들 수 있는 영화는 결코 아니나, 하여튼 그때의 그 아픈 추억은 필자로 하여금 <킨제이 보고서>의 홍보 작전에 반항하는 스포일러를 소리 높여 외칠 것을 명하고 있다. 이렇게 말이다.

“<킨제이 보고서>가 로맨틱코미디라면, <용가리>는 자연사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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