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생·홍익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산업디자인학과 대학원 의상디자인 전공·<닥터K>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인터뷰> 포스터 촬영
“한컷 영화!” 영화 포스터 사진을 찍는 강영호(32)씨는 모든 피사체의 꿈틀거림을, 단 한장의 압축 파일로 만들어야 한다. 정확함이 요구되는 일이지만, 기술적인 데이터보다 주관적인 느낌을 더 선호한다. <인터뷰> 포스터 작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파리의 퐁 데자르 다리 위에서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있는 은석(이정재)과 영희(심은하)도 해지기 직전 포커스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감’으로 낚아채 올렸다. 아름다운 풍경을 뭉개서 아련하게 처리한 이유를 두고 강영호씨는 로맨틱한 느낌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 그 장면은 은석과 영희의 무의식 속에 둥둥 떠다니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쳤지만, 둘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죠. 진실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원해야 따르는 것 아닌가요?” 그의 작업에서 “피사체 자체의 리얼리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영화가 ‘공동작업’임을 아는 이상 무턱대고 자신의 느낌만을 밀어붙일 순 없다. 다만 시간 없다는 독촉에 떠밀려 무색무취의 배우 얼굴을 찍는 “안전빵 포스터”는 싫다. 그는 순간적인 인물 표정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싸지만 단 한번의 테이크를 위해 사전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충분히 몸을 푸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산 벌판에 2천개의 의자를 깔고서 찍었던 <인터뷰> 포스터의 경우 진실을 말해줄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는 은석과 카메라에 찍히지 않으려고 살짝 고개를 트는 영희의 표정을 잡았다.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는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대상에 대한 애정 없이는 힘든 작업이다. 주관적인 느낌이 중요하지만 도가 지나친 공격성을 보일 정도면 곤란하다. “투명한 카메라는 있을 수 없어요. 카메라를 들고 제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만 빼곤 저 역시 그 상황을 연기하는 배우예요.” 촬영이 끝나고 나서 인화할 때까지가 가장 힘들다는 강영호씨는 그때를 두고 “상대 없이 혼자서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 연기”에 비유한다.
언젠가 “사진 무용”(?)을 해보고 싶다는 강영호씨. 그가 카메라에 홀딱 반하게 된 건 연극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에서 무대 의상을 맡게 되었을 때다. 그때 보았던 사진작가 김중만씨의 ‘멋진 폼’에 빠진 그는 혼자 렌즈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없이 친구와 함께 몽고 등지를 여행하다 찍은 사진이 알려지면서, 98년 패션 카탈로그를 맡게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영화 포스터 작업은 <닥터K>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있지만, <인터뷰>를 자신의 데뷔작이라 생각한다. 홍대 근처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는 상상사진관. 한때 작업할 곳이 없어 혼자 “상상” 사진관이라 불렀던 가상 스튜디오의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4월의 반은 촬영 때문에 뉴욕에서 보낼 계획인 강영호씨는 앞으로도 계속 “작은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