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수염 난 여자랑 사랑 해 보셨수? <마스크 속, 은밀한 자부심>
2005-05-30
글 : 김수경
사진 : 이혜정
이스트만 코닥 제작지원작 <마스크 속, 은밀한 자부심> 촬영현장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학교 근처 한적한 주택가의 빌라. 30도 경사진 지하차고 입구에 조명이 드리워진다. 맞은편의 놀이터 앞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는 노덕 감독. 이스트만 코닥 제작지원작인 <마스크 속, 은밀한 자부심>의 마지막 촬영현장. 동이 틀 때까지 거의 20컷을 촬영해야 하지만 노덕 감독은 침착하고 꼼꼼하게 리허설과 테스트를 병행한다. 4회차 160컷에 달하는 촬영스케줄 탓에 하루에 거의 40컷을 찍어야 했다. 여주인공 정으로 분한 정유미의 “32시간 동안 진행된 첫 촬영이 가장 힘들었다”는 술회는 당연지사. SKT 011, 대한항공 프라하편 CF로 얼굴을 알렸고, <댄서의 순정>에서 김기수의 상대역으로 분한 그녀는 현재 한양대 연극영화과 재학 중. <마스크 속…>은 수염난 발레리나 정과 남자친구이자 애견미용사인 구철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성 정체성과 사회적 통념을 탐색하는 이야기. 언뜻 장준환 감독의 단편 <털>을 연상시키는 이 프로젝트의 스탭 중에는 유난히 <지구를 지켜라!>에 참여했던 인원이 많다. 노덕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의 스크립터로 참여했다.

지하차고 앞으로 걸어 들어오는 구철과 정이 만나는 것으로 개시된 밤촬영은 다섯번의 테스트로 포문을 열었다. 노 감독의 설명대로 “전체적으로 카메라 움직임이 많은 영화”인지라 동선과 타이밍이 언제나 관건이다. 다음 컷인 2분가량의 롱테이크를 위해 촬영 세팅을 변경하는 동안, 노 감독은 두 배우를 놀이터로 데려가서 리허설을 한다. 세팅 이후에도 리허설을 두번 더 하고는 드디어 슛. 구철이 수염달린 정의 모습을 처음 보는 장면. 보지도 않고 질겁을 하는 구철의 연기에 현장은 웃음바다. 구철은 수염달린 정의 모습을 실제로 본 뒤 감동하고, 두 사람은 키스한다. 구철 역의 최현은 서울예대를 졸업한 연극 무대 출신으로 여배우 정유미와 정확히 열살 차이다. 신한솔 감독의 <싸움의 기술>에도 출연할 예정. 몇 장면을 합치는 콘티 변경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한발한발 다가온다. 노 감독은 “하늘을 덮고라도 오늘 안에 끝냅니다”라고 호언했지만, 변하는 하늘 색깔에 낯빛이 초조해진다. 우유, 생즙,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들이 어둠 속을 뚫고 돌아다니고, 설상가상으로 전깃줄에는 참새가 짹짹거리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배우들의 얼굴이 나오는 장면은 다 해결했다. 남은 것은 인서트. 김무유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거의 바닥에 누이는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숏보다 더한 로앵글이 준비된다. 조명팀은 사방에 고보(빛을 가리는 판 모양의 차폐막)를 하나씩 들고 빛을 막느라 필사적이다. 수염을 흩뿌리는 급조된 ‘특수효과’가 막을 내리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가 모두의 입에서 터져나온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