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전쟁영화는 어떤 작품일까? <지옥의 영웅들>은 비록 최고의 전쟁영화가 아닐지 모르지만, 최소한 <지옥의 영웅들> 앞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함부로 들먹이면 안 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는 오마하 해안 상륙 장면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전쟁의 영웅들>은 이후 수많은 전쟁영화의 전범이 되어왔다.
사실 치열한 전투장면을 기대한 관객에게 <전쟁의 영웅들>은 도리어 심심할 영화다. 스펙터클보다 군데군데 끼어 있는 이상할 정도의 평온함이 더 인상 깊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옥의 영웅들>의 진정한 적자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닌 <씬 레드 라인>이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옥의 영웅들>은 1차대전의 마지막 날 시작해 2차대전의 마지막 날 끝난다. 미 보병 1사단 16연대 3대대 1중대 1소대 1분대에 속한 노병과 네 명의 분대원은 1942부터 1945년에 걸쳐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프랑스, 벨기에, 독일,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장을 가로지르는데, 그들 5인조는 주위의 병사들과 달리 절대 죽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 전장을 헤매는 유령일 거라고 추측도 해보지만, 결국 새뮤얼 풀러는 개인의 자유와 생존, 순수의 종말, 비극에 눈뜬 자의 슬픔을 말하려던 게 아닌가 싶다.
풀러는 그들을 해방의 사도도, 낙원을 찾은 불청객도 아닌 단지 한명의 군인이자 인간으로 대한다. 실제로 2차대전에 참전했던 풀러는 살아남은 자의 증언을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했던 바, 그 결과물인 <지옥의 영웅들>은 그가 영혼과 유머를 잃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두 차례의 자유의 날과 그날 주인공이 실수로 저지르는 두 번의 살인, 포효하는 검은 말, 부서지는 총, 벌판 위에 쓸쓸히 놓여 있는 십자가와 검은 눈의 그리스도, 꽃이 수놓아진 헬멧, 전장에서 태어난 아이, 노병의 등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유대인 소년 등 풀러는 구차한 설명보다 간결한 영상으로 함축된 의미를 전달했다. 전작들의 두드러진 특질이었던 비극과 희극 그리고 광기가 교차되는 부조리함과 모호함 역시 여전하다. 실로 지옥 같은 전장의 현실 속에서도 시와 담담함과 초현실적인 순간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지옥의 영웅들>은 가장 원숙한 전쟁영화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