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내 재능은 로맨틱 코미디인걸”, <프렌즈>의 매튜 페리
2000-03-28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모든 배우가 로버트 드 니로일 필요는 없다. 드 니로처럼 한 순간 눈빛에 삶의 깊이까지 녹여내지는 못하더라도, 딱 두시간 동안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그것이 배우의 가장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미덕일지 모른다. 가벼운 TV시트콤을 주로 거쳐왔지만, 매튜 페리(30)는 그 미덕에 충실한 배우다. 페리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마음속 가장 밑바닥의 기억까지 흔들어놓는 전율을 느끼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페리에겐 스쳐가는 일상의 세세한 감정을 포착해 웃음으로 내어놓는 능력이 있다. 17명을 살해한 마피아 조직원 지미 튤립(브루스 윌리스)이 옆집에 이사 오고, 돈만 아는 아내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을 없애려 하고, 그 와중에 지미 튤립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버린 치과의사 오즈. 그 난감한 상황에서도 페리는 처량한 표정으로 견딜 수 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아담 샌들러처럼 한없이 불쌍해 보이다가도, 톰 행크스처럼 대책없이 느긋하기도 한, 페리는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배우다.

평범한 외모의 배우들이 흔히 그렇듯, 페리에게도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무명 시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행운이 따라준다고 생각했다. 식당에서 여자친구들을 웃기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띄어 <지미 리어든의 인생에서의 어느 하룻밤>에 리버 피닉스와 함께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출연한 TV시리즈 네편이 모두 참담한 실패를 겪으며 조기에 끝나버렸다. 그래도 연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페리는 스스로 “시트콤의 지옥에 빠져 있었다”고 회상하는 시절로 접어들었다. <트레이시 울먼쇼>에서 <베벌리힐스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없이 많은 시트콤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면서도 지나는 사람 누구도 뒤돌아보지 않는 배우로 남아 있었다. 94년, TV시트콤 <프렌드>에 출연할 때까지는.

분방한 20대 독신 남녀 여섯명이 이끌어가는 <프렌드>는 곧 배우들의 출연료를 편당 100만달러까지 높여 놓으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 경쾌한 시트콤에서 페리가 연기하는 인물은 깜찍한 여피 챈들러. 그의 귀여운 유머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은 단조로운 생활까지도 웃음으로 바꾸어놓는다. “페리는 따뜻한 마음과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 정말 최고의 조합이다.” <프렌드>에 함께 출연하는 커트니 콕스의 말처럼, 따사로우면서도 친근한 코미디를 구사하는 페리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웃음의 공급원이다. 인터넷 영화사이트인 <필름 닷 컴>이 실패한 코미디 <영웅이 될 뻔한>(Almost Heroes)의 단점 중 하나로 코미디 배우로서의 페리의 재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정도다.

물론, 챈들러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페리에겐 그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ER>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조지 클루니나 <프렌드>의 로스로 남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동료 데이비드 슈위머와 다르다. 출연을 제의받은 많은 영화들 중 굳이 로맨틱 코미디 <사랑은 다 괜찮아>를 택한 이유를 묻자 “로맨틱 코미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라고 답하는 페리는 자신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프렌드>의 리사 쿠드로가 “너무나도 파란 눈동자가 매력적”이라고 표현하는 페리. 선량하게 반짝이는 눈동자의 페리는 아마 계속해서 바로 손에 잡힐 듯한 웃음을 전해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배우가 심각해져야만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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