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극장전>의 배우 김상경
2005-06-01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정치인이나 재벌 보면 느끼하다. 칸도 그랬다.”

씨네21> 창간 10주년 특집 표지 ‘화양연화’ 편을 찍던 날, 김상경은 답답한 표정이었다. “<극장전> 속 동수란 인물은 그러니까… 이렇게 이상한 놈이고 저렇게 야시꾸리한 친구거든요. 근데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이해가 안 되죠?” 그리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뒤 김상경이 느낀 답답함이 머릿속에서 뎅, 공명음을 울렸다. “아마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 아니 한국영화를 통틀어도 가장 이상한 캐릭터일 것”이라는 김상경의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을 때 그와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극장전>이란 영화에 관해, 동수란 캐릭터에 관해, 김상경이란 인간에 관해. 어떤 질문에도 속내를 확 뒤집어 보이며 거침없이 대답한 김상경과의 2시간 동안의 대화를 풀어놓는다.

-칸영화제에 다녀온 느낌은 어떤가.

=그쪽 미디어 관계자들이 나를 보고 기분이 안 좋냐, 왜 이리 담담하냐 하고 묻더라. 누군가는 상경씨는 너무 여유로워 보이고 홍상수 감독님은 권태로워 보인다고도 했다. (웃음) 그런데 진짜로 하나도 안 떨리고 담담했다. 솔직히 좀 실망했다. TV에서 볼 때는 레드카펫이 무지 길고 되게 큰 줄 알았더니 (손을 작게 벌리며) 요만큼이더라. 물론 아무나 밟을 수 없는 거지만, 영화제라는 게 그들만의 잔치라는 느낌도 들더라.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니까 되게 영광스럽고 그런 느낌이 별로 없었다.

-현지 언론과 인터뷰도 많이 했겠다.

=그중에서 마지막날 <카이에 뒤 시네마>와 일대일 인터뷰를 했는데 무척 좋았다. 영화배우처럼 생긴 기자가 내 영화를 너무 잘 봤고 너무 잘 알고 있는 거다. 그런데 그 사람이 프랑스나 미국에서 시나리오 들어오면 하겠냐고 묻더라. 그래서 언어의 한계 때문에 어렵겠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프랑스 배우 중 누구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이자벨 위페르를 좋아하는데 내가 벙어리 역할이라면 함께 연기하는 것을 생각해보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시나리오를 쓰겠단다. 아, 꼭 쓰라고, 나중에 보자고 했다. 칸의 성과라면 그거 하나다. (웃음)

-그래도 느낀 게 있다면.

=한국 팬이 진짜 고마워졌다. 홍 감독님 영화는 말의 뉘앙스가 중요하잖나. 근데 칸에서 상영할 때 보니까 뭔지 모르는 것 같더라. 번역이란 게 그렇잖나. 대충 의미만 통하게 되는 거지. 영화의 아주 디테일한 느낌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폼잡는 애들 앞에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 물론 홍 감독님이나 나한테나 칸에 왔다는 게 앞으로 영화를 해나가는 데 좋은 요건이 되긴 할 거다. 말 그대로 명함이 되겠지. 그리고 우리 영화가 수많은 영화 중에서 경쟁에 올랐다는 것, 그 정도. 내가 뭐 “아, 이제 월드야”, 이렇게 오버하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봐주고 이해하고 웃고 그러는 게 고마운 일이더라.

-수상을 못한 데 대한 서운함은 없었나.

=이번에 워낙 거장들의 영화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주목받은 게 대부분 그쪽 언어의 영화더라. 우리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너무 늦게 튼 것도 있고. 하여튼 전혀 안 섭섭하다.

-남우주연상을 노려볼 만하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것도 될 수 없는 거다. 내가 영화에 전체적으로 다 나오지도 않고. 그리고 내가 표현하는 것을 다 이해하려면 말과 뉘앙스를 알아먹어야 하는데. 그리고 워낙 좋은 배우들도 많이 왔다. 토미 리 존스나 빌 머레이나.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맨 처음엔 웃겼다. 1, 2부 다 내가 주연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아, 감독님이 내 연기 폭을 상당히 넓게 보는구나. 야, 1인2역에 재수생 역할까지. (웃음) 뭐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1부에 다른 배우를 쓴다고 해서 처음엔 실망했다. 어, 반만 나오는 거야? 이게 뭐야, 그랬다.

-동수라는 캐릭터는 정말 희한하다.

=편집 과정에서 잘렸는데, 회상신이 세개 나온다. 친구들과 술 먹다가 잔 씹는 장면, 친구 신혼집에 가서 깽판 치는 장면, 그리고 어떤 여자와 동거하는 장면인데, 그걸로 동수에 대한 설명이 다 된다. 참 이상한 놈이다. 그런데 그걸 잘라내서 처음에는 서운했다. 그걸로는 좀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었는데 기술시사 때 큰 화면으로 보고서 딱 저거다, 생각했다. 그 장면들이 있었으면 오히려 너무 넘쳤을 것 같았다.

-소주잔은 진짜로 씹었나.

=특수효과팀에서 설탕으로 만든 잔이었다. 음향효과 때문에 실감나게 느껴졌을 거다.

-지난번에 동수 캐릭터를 설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캐릭터에 대한 상은 어떻게 잡았나.

=가장 먼저 찍었던 게 앞서 말한 회상장면이었다. 그때 엉뚱한 면이 있는 동수의 캐릭터가 처음 만들어졌다. 가령, 신혼부부를 축하해주는 자리에서 동수는 신랑에게 어떤 여자 이름을 대며 걔를 왜 안 불렀냐고 한다. 그 여자는 신랑이 사귀던 여자다. 와이프에게 동수가 다 얘기해주고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그러면 신랑이 그런 얘기를 왜 하냐고 따지고, 동수는 사랑하는 게 죄냐, 이런 식으로 말한다. 거기서 느꼈던 게 동수는 어떤 면에서 되게 솔직하고 생각이 앞섰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또 동수에겐 순수한 점도 있고 세상과 언어소통이 안 된 채 고립돼 자기 세계에서만 산 측면도 있다. 그게 다 동수를 연기하는 데 있어 내 기준이 됐다. 그런 캐릭터니까 동창들을 만났을 때도 자기 얘기만 하고, 오래 사귄 친구에게 다리 저는 걸 처음 봤다고 하고, 또 쓸데없는 것을 기억하고, 그리고 여배우를 쫓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아, 그런데 과거신을 너무 많이 얘기하면 안 되는데. 아마 그 장면들은 DVD에도 안 넣을 거다. 내가 얘기한 거 자세히 실리면 감독님이 전화해서 ‘너 왜 그런 얘기를 했어’ 할 거다.

-그 정도의 기준만으로 충분했나.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확실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았나.

=물론 이해가 안 되면 안 된다. <생활의 발견> 때도 어떤 부분에서는 감독님과 부딪쳤다. 경수가 경주 막창집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의 다리를 보다가 남자친구가 째려보니까 벽에 가서 그림 만지고 하는 장면 있잖나. 그날 찍을 때 감독님한테 이렇게 비겁하고 쫀쫀한 놈이 어딨냐고 했더니, 감독님이 “아, 있어…” 그랬다. 그러고보니 감독님 사고방식엔 있을 것 같더라. 하긴, 그 상황을 모면해야 하니까. 경수가 추상미 남편인 듯한 남자에게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누가 이러냐, 막 웃기려고 쓴 거야?” 그랬다. 감독님은 “아 그럴 수도 있어. 네가 여자를 쫓아갔는데 그 사람의 남편인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어떻게 모면할래. 근데 거기가 경주잖아. 그러면 한옥집 구경 온 것처럼, 외국인인 것처럼 해야지 어떡하겠니”, 이러더라. 근데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래본 적이 있거든. 학생 때 남대문시장에서 아줌마들이 외국 사람에게 얼마나 거짓말하는지 알고 싶어서 중국인인 것처럼 ‘왕쭤 워워셔마’ 그랬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뭐라 그럴 수도 없고. 동수가 하는 행동도 이해 안 될 것 같지만… 근데 또 잔을 깨먹는 인간도 봤다, 나는. 화가 난다고 잔 깨먹는 걸. 그렇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걸 신뢰하고 연기할 수 있는 거다. 사실 나는 이해를 못하면 절대 안 한다. 그런데 <생활의 발견> 때부터 지금까지 느낀 것은 홍 감독님은 자기 세계를 확고하게 만들어놓았다는 거다. 어디를 찔러도 빈틈이 안 생기게 만든 세계가 있다. 무슨 딴죽을 걸어도 이건 이래서 그렇다, 저건 저래서 그렇다, 다 설명이 된다.

-이번에는 이해 안 되는 게 없었나.

=이해 안 된 건 수백개다. 가령 여자를 쉽게 따라가는 것도 내겐 없는 면이다. 그냥 여자를 따라가본 적도 없다. 잔 씹는 것도 그럴 수 있고. 휴대폰 반주로 노래 부르는 것도 그렇고. 그 장면을 쓸 줄은 몰랐다. 애초에 없던 건데, 그냥 한번 해봐라, 그래서 들어간 거다.

-이번엔 안 따졌나.

=이미 회상신을 찍으며 동수가 대단히 이상한 놈인 걸 알았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감독님이 얘기를 얼마나 엉뚱하게 써가느냐가 궁금했던 거지, 동수의 행동이 이해 안 된 게 아니다. 이해는 가는데, 표현을 어떤 식으로 갈 건가가 문제였다.

-그 엉뚱함, 또는 이상함의 일관성을 어떻게 잡아냈나.

=감독님과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인데, 크게 톤의 차이가 탁 날 때가 있다. 그게 영실을 만날 때다. 극장에서 전화하는 장면만 봐도 뭔가 권태로운 인간 같기도 하고 그렇잖나. 그런데 영실이 만났을 때는 생기가 있고 예의도 바르다. 톤 자체가 바뀐다. 감독님에게 일관성의 문제를 고려할 때 뭔가 이상한 것을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감독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네가 제정신 차리려고 노력하는 거 아니겠냐” 하더라. 그래서 그 부분에 뭘 넣었냐 하면, 이건 내 의견을 감독님이 수렴한 것이기도 한데, 안경점 앞에서 얘기를 다 끝내고 영실이 가면 (초점없는 눈빛을 지으며) 이렇게 돌아본다. 그때 표정이 내가 모르는 나의 표정이다. 또 영실이가 회식자리에서 나갈 때 동수가 따라가는데, 귀신처럼 스르륵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을 영실에게 딱 꽂은 채. 대부분 사람은 누구를 쫓아가도 땅을 보거나 하잖나. 그리고 몸의 각도도 일부러 영실쪽으로 바짝 기울여서 이상한 놈이라는 것을 보였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본 사람이 있더라고. 봉준호 감독이 시사회를 보고나서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너의 눈빛과 45도 몸각도가 죽였다’고 그러더라. 아, 이 여우가 이걸 아는구나, 했다.

-영화 속에서처럼 1부 찍은 것을 보고 촬영에 들어갔나.

=일단 1부를 찍을 때 현장에 많이 갔다. 홍 감독님의 스타일대로 순서대로 찍었으니까. 그리고 1부가 다 만들어진 다음에 가편집한 것을 보고 촬영에 들어갔다. 어차피 동수가 영화를 보고 나온 상황 아니냐.

-영화가 동수의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냐. 1부를 본 게 영향을 줬나.

=영향을 받았지만 많이 가져가지는 않았다. 안경점 앞에서 영실이가 “영화네요”, 그러니까 동수가 그러잖나. “네?”라고. 그러니까 동수는 그걸 모르는 거다, 그리고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기를 할 때 뒤에 이어지는 상황을 알고 연기하느냐, 모르는 채로 하느냐를 갖고 고민을 많이 한다. 예전에 박근형 선생님도 후배들에게 너 왜 뒤를 알고 하니, 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 일이란 게 결국 뒤의 일을 모르고 가는 건데, 뒤의 상황을 다 알고 연기하니까 재미없어지고 진짜 궁금증을 유발하지 못한다고.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했다.

-홍상수 감독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변하긴 많이 변했다. 영화사를 만들어서 대외적으로 변한 게 있고. 내용상으로도 변화가 있고. 내가 직접적으로 느낀 변화는 연기를 끌어내는 방법이 달랐다는 거다. 나나 감독님이나 맨 처음에 서로 부담된 게 뭐냐면, 둘이 작업을 한번 해봤으니까 <생활의 발견>의 반복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감독님은 배우로부터 모든 것을 끌어내는 타입이기 때문에 더욱 비슷해질 수 있었다. 또 캐릭터가 아주 다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일상적인데 뭔가 바뀌어야 하니 그게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계속 테이크를 반복했다. 자꾸만 다르게 가보자고 하더라. 아예 의도적으로. 어느 인터뷰에서 그랬는데 감독님은 내 연기가 자기 생각대로 나왔는데도 무조건 다 아니라고 했다더라. 자신에게 부담이 되니까 나에게 깁스를 하는 거라고, 날 불편하게 만들어서 방법적으로 다르게 나오게 만드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치는 거다. 너무 답답해서 어떻게 하라고요, 하면 “몰라, 몰라, 그냥 해봐” 그런다.

-촬영 끝날 때까지 그랬나.

=나중엔 테이크 수가 줄었다. 모든 촬영이 그렇지만 크랭크인 때부터 5번째 촬영까지가 가장 힘든 것 같다. 그때 톤을 잡으면 그 다음엔 그냥 가는 것 같다.

-줌을 많이 썼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선 무엇이 달랐나.

=줌이 좋았던 이유는 얼굴이 크게 나와서다. 감정표현이 얼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데, <생활의 발견> 같은 경우에는 타이트한 앵글이 딱 하나 있잖나. 점집 앞에서 쳐다보는 장면 말이다. 문제는 줌이 슥 들어올 때 내가 기다려줄 것이냐 안 기다려줄 것이냐였다. 가장 좋은 건 배우들이 의식 안 할 때 알아서 따라와주는 것이지만 안 맞을 때도 있다. 그리고 줌이 아주 중요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감각으로 맞췄다. 몇번 찍어보고 모니터로 줌이 들어오는 스피드를 본다. 김형구 촬영감독도 대단히 테크닉이 좋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속도로 줌이 들어오는데, 그 스피드를 헤아려본다. 그런데 연기하면서 하나, 둘, 이렇게 숫자를 세면 안 된다. 연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대신 그 상황에 맞는 생각을 하면서 그 초 수를 계산했다.

-지난번에는 동수란 캐릭터와 자신이 사고체계가 달라 힘들었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니 유사점도 많다.

=그럴 수도 있다. 다른 이들과 섞이지 않으려는 부분도 그렇고. 그런데 이렇게 연기를 다 하고 나면 지금의 내 모습이 원래의 내 모습인지 연기한 캐릭터가 침투된 것인지 헷갈린다. 동수 블로그라는 곳이 있어서 글을 쓰다가도 내가 원래 이렇게 생각했던가, 동수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아리송하다.

-연기한 캐릭터에 영향을 많이 받는 모양이다.

=<생활의 발견>를 끝낸 뒤에는 집중이 안 된다고 할까,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래서 한달인가 한달 반을 북한산에만 올라갔다. 혼자 음악 듣고 김밥 먹고. 그렇다고 무슨 생각을 한 것도 아니고, 멍하니 있었다. 이 기분에는 정체가 없다.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분석도 안 된다. 그러다 풀렸는데, 이번엔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배우로서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지 확고하게 정리가 된 것도 있고. 예전에 1년 넘게 작품을 안 하고 그랬던 이유 중에는 그런 게 정리가 안 되니까, 그랬던 것도 있다. 그런데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전작을 빨리 털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나.

=<카이에 뒤 시네마> 기자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 페르소나라는 이야기도 하고, 둘 사이에서 비슷한 점을 느낀다고. 나는 그건 보는 사람들 입장이니까 그렇게 느끼면 그렇게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도 기분 나쁘지도 않다고. 그리고 그 양반은 우리가 트뤼포와 장 피에르 레오의 관계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나는 레오가 누군지 모르거든요, 라고.

-홍 감독이 다음 작품도 같이 하자고 했다고 하던데.

=아, 그건 그전에 인터뷰할 때 누가 김상경과 또 작업할 거냐고 물으니까 또 해도 될 거 같다고 한 거다. 그런데 이제 둘이 함께하는 건 당분간 쉬어야 할 것 같다. 감독님이 여름에 또 영화를 찍고 싶어한다는 말이 있긴 한데, 어차피 나와 스케줄도 안 맞고. 지금까지 두번 하면서 서로에게 짜내는 게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물이 컵에 꽉 찬 느낌 있잖나. 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수위가 좀 내려가면 다시 할 수 있겠지.

-동수도 그렇고, 인간 김상경도 그런데, 소년성이랄까, 또는 철없어 보이는 요소가 있는 것 같다.

=사회화되기 힘들다는 면에서는. 제도권이랄까 사회적인 것에 대한 불편함이 많이 있다. 나는 정치인이나 재벌을 보면 느끼하다. 그게 권위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칸도 느끼하더라. 운동삼아 골프를 좀 치는데, 골프장에서 깜짝 놀랐다. TV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상투적인 어른들이 다 있더라. 저렇게 연기하면 완전 삼류배우다 싶을 정도로 행동하면서. 가령 휴식공간에 앉아 있는데 아저씨들이 들어오더니, (아주 느끼한 말투로) ‘어이 김양아, 여기 오리알 세개 좀 가져와봐’, 이러더라. 완전히 상투적인 연기로 말이다. 순서도 무시하고 종업원도 무시하더라. 어쩌면 내가 철없다고 할 수 있는 게, 그런 걸 보고 능숙하게 웃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못한다.

-그러면 동수처럼 행동한다는 건가.

=그런데 내가 동수가 되지 못하는 것은 뒤에서 씹지 앞에서 못 씹는다는 거다. (웃음) 내가 동수라면 그 사람들 앞에서 잔이나 하나 깨물고 나오겠지. 나는 그냥 아예 그런 사람이 있는 데 가지 않고 만나지 말자는 거다.

-영실이 동수에게 “이제 집에 가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고 보면 동수뿐 아니라 홍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에겐 하나같이 집이 없다. 하지만 인간 김상경은 집을 너무 좋아하지 않나.

=맞다. 난 집이 너무 좋다. 며칠 동안 집에 틀어박힌 적도 있다. 그래서 연예 기자들이 너무 궁금해한다. ‘도대체 뭐하고 사세요’라면서. 그냥 책 보다가 영화 보고 싶으면 아트레온까지 걸어가서 혼자 쭐레쭐레 보고 나오고. 답답하면 북한산에도 간다. 구파발쪽 코스로 가는데 샛길을 개발해서, 평일에 가면 입장료를 안 낸다. (웃음)

-다음 계획은.

=7월 정도부터 드라마를 찍을 거다. 변호사로 나오는데 작가와 PD는 멜로라고 하더라.

-작품선택이 빨라졌다.

=내가 지금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게 뭘가 생각해보니까 제일 심심하지 않고 재밌는 게 연기더라. 그럼 연기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퀄리티의 작품을 기다리다보면 문제가 심각해지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러다가 평생 10편도 못 찍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내가 꽝이라고 본 시나리오도 다 개봉하고 사람들도 다 보고 하더라. 아, 그럼 70∼80%만 만족스러워도 할 수 있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오랜만에 예전 이미지로 돌아온다.

=멜로를 하고 싶었다. <생활의 발견> 이후로 추레한 쪽으로 가다가 오랜만에. 예전에 했던 것과 <생활의 발견> 이후 쌓은 게 있으니, 그게 잘 결합돼서 또 다른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기대가 있다.

-깔끔한 이미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던 건 아닌가.

=굳이 깔끔 떠는 걸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지금까지 ‘운빨’로 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진짜 바람도 ‘운빨’을 다져서 나이 들어서까지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 어떤 연기를 하고 싶다, 그런 것도 별로 없다. 단지 아주 삼류인생, 진짜 밑바닥 삶을 연기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안 해봤으니까. 머리도 한번 빡빡 밀어보고 싶고. 태어나서 단 한번도 머리를 밀어본 적이 없으니.

-영화는.

=몇개 보이긴 한다. 칸에도 시나리오를 몇개 받아갔는데 그중 괜찮은 게 하나 있는 것 같다. 상업영화인데, 장르로 설명하기엔 좀 복잡하다. 완성도 면에서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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