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애니메이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이하 <블러드>)에서 세일러복을 입고 일본도를 휘두르며 인간의 모습을 한 뱀파이어의 목을 긋던 소녀 사야의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 이 작품이 오는 10월, 일본에서 50회짜리 TV시리즈 <블러드 플러스>(원제 ‘Blood+’)로 부활한다. 제작사인 스튜디오 IG로선, 개봉 당시 각종 상을 휩쓴 작품인데다가 쿠엔틴 타란티노가 <킬 빌>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부탁하며 “똑같이만 만들어달라”고 했던 만큼 의미가 각별한 작품이다. 또한 방영이 결정된 <MBS> <TBS>계의 토요일 저녁 6시대는 <건담 시드 데스티니> <강철의 연금술사> 등 초히트작이 연속해서 방송되었던 애니메이션의 프라임 타임이다.
이처럼 힘을 쏟은 기획인지라 제작진은 제작발표회 또한 독특한 내용의 대규모 이벤트로 기획했다. 지난 5월9일 도쿄대 야스대 강당에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개강연을 겸한 이벤트가 바로 제작발표회였다. 야스다 강당은 1969년 경찰들이 무력으로 학생들의 강당 점거를 진압함으로써 일본 학생운동의 정점이자 좌절의 상징처럼 알려진 장소. 아직도 건물의 외벽엔 그을린 흔적이 뚜렷한 그곳에 1500여명의 일반인, 취재진이 오시이 마모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은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무대에는 타란티노 이름의 화환도 서 있었다.
사회자로 <TBS> 아나운서와 함께 무대에 등장한 이는 <킬 빌 Vol.1>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고고 유바리 역의 구리야마 치아키였다. 여학생 교복을 입고 철퇴를 휘두르던 고고의 모습은, 타란티노가 처음부터 밝혔듯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주인공 사야의 모습을 본뜬 것이었다.
새 시리즈 <블러드 플러스>의 연출은 극장판 <블러드>를 공동기획했던 후지사쿠 준이치가 맡았다. <공각기동대>의 TV시리즈 <공각기동대 스탠드 얼론 콤플렉스>의 각본과 소설판, 게임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날 오시이는 원래 <블러드>가 오시이 학교 출신의 후지사쿠와 가미야마 겐지가 습작 기획으로 냈던 두 가지 아이디어를 합해 시작했다고 전해줬다.
강해진 현실비판, 다양해진 마케팅
이날 행사의 토론 제목도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전쟁’이었지만, 제작진은 <블러드 플러스>가 강하게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작품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요코다 미군기지를 배경으로 전쟁을 은유했던 극장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TV시리즈는 배경을 2005년 현재 오키나와로 옮겨온다. 오키나와는 1972년 일본에 반환될 때까지 미국의 통치하에 있었고, 지금까지도 대대적인 미군기지가 설치되어 있는 곳. 후지사쿠 감독은 “요코다 기지를 뛰어나가던 극장판의 사야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지금의 ‘전쟁’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1년 전 이전의 기억이 없을 뿐, 따뜻한 가족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여고생 사야에게 어느 날 신비스러운 첼로연주자 하지가 나타나 일본도를 건네주면서 그의 삶은 통째로 바뀐다. 제작진은 오키나와뿐 아니라 전세계를 도는 로드무비 형식이 될 듯하다며 “전투신을 많이 보여준다는 게 아니라 스토리로 전쟁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시이 마모루는 자신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또한 걸프전쟁이 없었으면 없었을 작품이라며 “전쟁은 그 시대 최대의 엔터테인먼트다.… 반전영화든 호전적 영화든 결국은 마찬가지다”라고 논쟁적인 화두를 던졌다. “베트남전과는 전혀 다른 걸프전을 보며, 전쟁을 보는 방법이 바뀌면 전쟁 자체도 의미가 바뀐다고 생각하게 됐다. 왜 타인의 전쟁이 즐거울까…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개된 단 한장의 스틸을 보면, 사야의 얼굴은 극장판보다 볼살이 빠진 소녀만화의 주인공 같은 느낌. 가도가와 서점은 오는 7월, 3명의 작가가 각각 그린 <블러드 플러스> 만화 3종을 3종의 만화잡지에 선보이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실시한다. 한 작품은 <블러드 플러스> 내용에 가장 충실하며, 나머지는 각각 러시아 혁명전야를 무대로 한 외전과 새 등장인물 하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외전이 될 것이라 전했다. 2006년에는 소설판도 발행될 예정이다. 뱀파이어와 사야의 전투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