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마릴린 먼로
2005-06-02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그녀가 다가와 안아주는 꿈을 자주 꿨던 소년은 어느날, 그녀와 키스했습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꿈을 꾼 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년은 한동안 그녀가 다가와 안아주는 꿈을 자주 꿨습니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품에 안겨 제발 이 꿈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더랬습니다. 언제 처음 그녀를 만났는지는 가물가물하군요. 아무튼 그녀를 만나기 전에 신문에서 이상한 표현들을 먼저 접했습니다. 육체파, 섹스심볼, 백치미, 뭐 그런 말들이었죠. 소년은 아직 육체파가 인상파나 전자파 혹은 양은이파랑 어떻게 다른지 몰랐습니다. 그저 육체파가 있으면 영혼파도 있겠구나, 싶었죠. 아무튼 실물을 처음 봤던 날, 소년의 어머니는 꽤나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아이 눈에 초점이 없는 걸 보고 앞으론 그녀를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보지 말란다고 안 볼 소년이라면 오늘 이 자리에 불려나오지도 않았겠지요. 어머니의 눈을 피해 그녀를 만나는 건, 솔직히 더 좋았습니다. 눈에 초점이 풀려도 뭐랄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가 바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소년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죠. 그녀의 얼굴은 늘 인생의 고뇌 같은 건 난 몰라, 하는 표정이었으니까요. 정말 아이처럼 순진했던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죠.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고, “다이아몬드는 여자들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그녀는 돈만 많으면 노인이든, 아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떠돌이 쇼걸인 그녀에게 필요한 건 안락한 집이었지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 황홀한 꽃미남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녀는 이런 인생의 목표를 숨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마 사랑을 몰랐기 때문이겠죠. 그녀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가 사랑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자신의 인생 목표도 떳떳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소년은 그녀에게 충고하고 싶었습니다. “돈과 보석에만 매달리지 말고 진짜 사랑을 해보라”고.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죠. 초등학생 꼬마가 사랑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랬는지. 아무튼 그녀의 행복을 기원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매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달콤한 키스를 나누곤 했으니까요. 소년의 바람대로 말이죠.

물론 이제 어른이 된 소년은 더 이상 그녀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한대로 “키스는 황홀하지만 집세를 내주지 못하며 다이아몬드만이 영영 변치 않는 모양으로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그녀는 적어도 신데렐라보다 훨씬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왕궁에 들어가리라 꿈도 꾸지 못했던 신데렐라와 달리 그녀는 백만장자와 결혼하려고 참 무던히 애를 썼죠.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고 아이 같은 말투로 바보처럼 말하는 그녀에게 어떤 남자가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동철 <씨네21> 편집장

아직 ‘정숙’을 지고의 덕목으로 꼽던 시절에 그녀만은 여자의 매력이 ‘정숙’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죠. “이렇게 더울 때 전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 속옷을 아이스박스에 넣어둔답니다”(<7년만의 외출>)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을 만큼 그녀는 자기 매력을 잘 이용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가 낭만적 사랑에 눈이 멀어 다이아몬드를 내팽겨친 적은 없다는 사실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녀가 수십년간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남아있던 이유도, 조금씩 변형되면서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이유도 그냥 섹시한 육체만 앞세우는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튼 끝으로 비밀 하나를 털어놓겠습니다. 소년은 그녀와 키스한 적이 있습니다.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요. 어땠냐고요? 음.... 딱딱했습니다. TV 브라운관이 좀 딱딱하잖아요.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