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제2회 도빌아시아영화제
2000-03-28
글 : 조종국
3월17일부터 사흘동안 열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랑프리 등 4개 부문 수상

도빌, 아시아로 열린 창

유럽의 작은 휴양도시에서 열린 제2회 도빌아시아영화제. 영화 <남과 여>의 무대가 됐던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지역의 도빌 바닷가에서 열리는 영화제라는 점이 우선은 흥미를 끌고, 아시아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제가 유럽에서 열린다는 것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올해 도빌영화제는 마치 대종상영화제를 옮겨놓은듯, 거의 한국영화를 위한 축제였다. 지난 3월17일부터 사흘 동안 파리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가량 걸리는 도빌시에서 열린 이 영화제엔 아시아지역 9개국 영화 25편이 상영됐고 최근 ‘상승세’를 반영하듯 한국영화가 단연 돋보인는 평가를 받았다.

<인정사정…> <정사> <쉬리> 돌풍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작품상인 그랑프리, 감독상(이명세 감독), 촬영상, 남우주연상(박중훈) 등 총 6개 부문 중 주요상 4개를 휩쓴 것을 비롯 경쟁부문에 나간 <정사>, 비경쟁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쉬리> 등도 관객의 찬사를 받아 한국영화가 독무대를 이뤘다. <쉬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은 다른 상영작들과는 달리 대형 극장을 거의 메운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특히 강제규 감독은 무대 인사차 들른 상영장에서 관객의 사인공세에 시달렸으며, 박중훈도 인기를 끌었다. 한편 <정사>는 상영시간이 오전 10시로 잡혀 관객이 <쉬리> 등에는 못 미쳤으나 ‘유럽쪽 정서에 맞는 영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 밖에 여우주연상은 중국영화 <검은 눈동자>에서 열연한 타오홍에게, 관객상은 홍콩영화 <정부>에 돌아갔다.

<인정사정…>의 이명세 감독과 박중훈

상영작은 한국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정사>를 비롯, 개막작으로 상영된 인도영화 <대모>,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일본 데쓰카 마코토 감독의 <백치>, 홍콩 장완정 감독의 <유리의 성> 등 경쟁부문 9편, <쉬리>와 부산영화제 출품작인 홍콩의 <재견아랑> 등 비경쟁 파노라마 부문 5편, 이두용 감독의 <내시>,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황비홍> 등 서극의 홍콩영화, 개막작으로 상영한 <대모>의 여주인공인 인도 배우 샤바나 아즈미 출연작 등을 상영한 회고전 11편 등이다. 심사위원장은 아시아 영화에 밝은 영국 비평가 토니 레인즈씨가 맡았고, 파리에 살고 있는 배우 윤정희씨, 베트남 출신 감독 트란 안 훙, 프랑스 작가 샨 사, 프랑스 감독 이브 부아세 등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에서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강제규, 이명세, 이재용 감독, 배우 박중훈, 프로듀서 김준종씨 등이 게스트로 참가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 도빌을 찾은 파리 유학생을 비롯한 현지 동포들도 많았다.

<남과 여>의 풍광, 그리고 휴식 같은 영화제

싸인해 주고 있는 강제규 감독

도빌아시아영화제는 유럽에서 열리는 아시아영화제라는 독특한 컨셉과 함께 영화제 분위기도 다른 영화제들과는 크게 구분된다. 많은 영화제들이 갈수록 산업적인 쪽에 관심과 비중을 두는 경향과 달리 호젓한 바닷가 휴양도시에서 ‘우아하게’ 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영작은 또 유럽에서 열리는 영화제답지 않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 위주로 고른다는 것이 또다른 특징이다. 도빌아시아영화제는 올해 두 번째 열린 신생영화제이지만 도빌의 영화제 역사는 꽤 깊다. 다른 나라에 널리 알려 있지는 않지만 올해로 26회를 맞는 도빌미국영화제가 해마다 9월에 열린다. 이 영화제는 베니스영화제 직전에 열려 주요 미국영화가 유럽지역에 첫선을 보이는 창구구실을 해왔다.

게다가 미국의 유명 감독과 톱스타들이 베니스로 가기 전 도빌의 정취를 즐기기 위해 앞다퉈 몰려들고 이에 뒤질세라 프랑스 등 유럽의 유명 영화인들까지 가세해 도빌미국영화제는 어떤 영화제보다 스타들이 몰려드는 영화제로 정평이 나 있다. 이처럼 스타들이 북적이는 까닭은 인구가 1만명이 되지 않는 작은 도시지만 프랑스 상류층 사람들의 별장이 즐비한 휴양지로 유명한 도빌이라는 도시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 <남과 여>에서 배우자를 잃고 실의에 빠진 카레이서 장과 시나리오작가 안느가 자식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장소가 바로 이곳 도빌이다. 도빌은 <남과 여>에서 ‘샤바다 바다바다바…’라는 효과음이 후렴처럼 반복되는 음악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해변과 주인공들이 거닐던 나무다리조차 그대로 남아 있어 로맨틱한 정취가 흠씬 밀려온다. 여름이면 일광욕을 즐길 수 있게 만든 간이 방갈로 같은 휴식공간이 해변을 따라 빼곡이 들어서 있고, 유명배우들의 이름을 새긴 표식까지 붙어 있어 영화의 분위기를 되살린다. 고개만 돌리면 <남과 여>의 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열리는 영화제라니 최고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밖에 없다. 이런 휴양지에서 영화제가 가능한 것은 프랑스답게 근사한 극장이 세곳이나 있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된다. 심지어 해변 가까이에 있는 카지노에도 나이트클럽 같은 위락시설 대신 큼지막한 극장이 있다는 사실은 프랑스가 문화적인 나라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부산영화제와 결연, 유럽이 보인다

부산-도빌영화제 자매결연식

도빌아시아영화제 운영과정을 살펴보면 여러 나라의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본래 영화제의 의미보다 일종의 관광상품으로 기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영작을 도시 분위기와는 좀다른 대중적인 상업 영화으로 고른다는 점이나 모든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고, 젊은이들보다 휴양지를 찾은 나이가 지긋한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 등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아시아영화만 상영하는 영화제를 연다는 것은 아시아쪽을 겨냥한 관광상품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미약하나마 아시아영화가 나름대로 도약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원래 직업은 외과의사로 영화제를 주관하는 집행위원장 알랭 파텔은 아시아영화와 한국영화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런 판세가 반영됐음을 드러내다. 그는 “한국영화가 역동적인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알랭 파텔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에도 참석해 초청할 아시아영화를 골랐으며, 부산국제영화제와 도빌아시아영화제의 자매결연도 추진해 성사시켰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참석한 결연식에서 알랭 파텔은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초청작을 고르는 창구로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혀 도빌아시아영화제가 한국영화와 아시아영화를 유럽에 알리는 무대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는 유럽에서 처음 상영되는 작품만 고른 탓에 상영작이 적고 섹션과 초청작의 짜임새가 허술해 아직 본격 영화제로서 제자리를 잡지는 못했지만 프랑스 영화잡지 <프리미어>가 주관매체로 나서는 등 현지 언론의 관심이 높은 것을 보더라도 가능성을 가진 영화제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찬 에어프랑스 한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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