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는 '분노 바이러스'라는 설정을 통해 좀비 영화를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장르로 탈바꿈시킨 수작이다. 이 영화는 지난 2003년 국내 극장 공개시 두 가지의 다른 결말을 함께 상영하여 화제를 모았는데, DVD에는 극장공개판을 통해 알려진 것을 포함, 총 3가지의 각기 다른 결말이 들어있다.
첫 번째 결말은 클라이맥스에서 큰 부상을 당한 짐(실리안 머피)이 병원에서 죽는 것으로, 옵션으로 선택 가능한 감독과 각본가의 음성해설에 따르면 가장 작품에 걸맞는 결말이라고 한다. 극장공개판에서 빠른 커트로 순식간에 지나간 치료 장면을 여기서는 온전히 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일행이 도착한 병원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짐이 깨어났던 곳과 동일한 병원이라는 점이다.
사경을 헤매는 짐을 위해 필사적으로 응급처치를 하는 셀레나(나오미 해리스)와 해나(메간 번즈). 그러나 결국 짐은 숨을 거두고, 두 여자는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된다. 짐을 대신하여 권총을 집어드는 어린 소녀 해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 결말은 전투기를 향해 구조요청을 하는 일행이 등장하는 극장공개판과 상황이 같다. 단, 여기서는 짐이 없다. 이것은 첫 번째 결말의 연장선상에 해당하는 장면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재봉질을 하며 짐 대신 닭과 대화하는 셀레나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세 번째 결말은 촬영된 장면이 아닌, 스토리보드와 나레이션으로 재구성된 시퀀스다. 해나의 아버지 프랭크가 감염된 후, 일행이 군인들을 만나지 않은 채 도입부에 나온 병원으로 돌아와 또 다른 생존자를 만난다는 설정이다. 여기서도 짐은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 배우들을 대신해 감독과 각본가가 직접 연기한다.
이렇게 다양한 결말을 통해 <28일 후...>의 DVD는 하나의 작품을 관객 각자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제작진이 최선의 결말로 내세웠던 첫 번째 결말, 극장공개판에서 보았던 희망적인 결말과 함께 감상자 자신만의 결말을 연출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