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왔을 때 데이비드 린치가 멋지게 영화를 하나 뽑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프랭크 허버트의 <사구>는 린치가 능숙하게 다룰만한 원작은 아니었다. 스케일은 징그럽게 컸으며 제작비를 뽑기 위해 끝없는 타협이 요구되었다. 결국 린치의 작품은 어정쩡하게 편집되고 형편없는 특수효과가 날아다니는 범작이 되고 말았다. 물론 흥행에서도 말아먹었고.
린치 팬들도 실망이 컸겠지만 진짜로 실망한 사람들은 프랭크 허버트의 팬들이었다. 드디어 그네들이 몇 십 년 동안 사랑하던 소설이 영화화될 기회를 잡았는데 나온 결과물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색한 영화였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그래도 세상이 망하라는 법은 없다. 존 해리슨이라는 야심찬 인물이 허버트의 소설을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만들 계획을 세웠으니까. 이 작품은 1999년 싸이파이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고 반응이 좋아서 속편도 나왔다.
이야기는 어떠냐고? 린치의 영화와 같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모래행성 아라키스에서 온갖 정치적 암투가 벌어진다. 사악한 하코넨 남작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자기도 거의 암살당할 뻔한 주인공 폴은 수많은 역경 끝에 원주민의 리더가 되고 결국 그들의 메시아가 된다. 물론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그건 직접 보면서 즐길 일이다.
두 편의 작품들을 비교한다면 해리슨의 작품 쪽이 더 이야기가 즐길 만 하다. 비교적 넉넉한 러닝타임의 덕을 보고 있기도 하지만 해리슨에게 린치만큼의 예술적 야심이나 개성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허버트의 소설을 정성껏 받아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한다. 영화는 린치의 작품보다 원작에 충실하고 더 정상적이다. 허버트의 소설 팬들에겐 린치의 영화보다 해리슨의 시리즈를 더 추천하고 싶다.
괴상한 건 비주얼이다. 전설적인 비토리오 스토라로가 이 영화의 촬영을 담당하고 있는데, 어렵게 구한 거물에게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였는지 특수 효과가 아주 괴상하다. 일반적인 방식인 블루 스크린이나 그린 스크린을 쓰는 대신 행성의 배경을 표현하기 위해 스튜디오 벽에 벽화를 그려 넣은 것이다. 이 특수효과는 너무 노골적이고 복고적이라 오히려 신선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와 갤러리로 구성된 부록들은 그냥 예의만 차리는 편. 다큐멘터리엔 한글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