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대표 선수들의 작업 목적 & 연애 덕에 봉 잡은 언니들
연애란 뭘까? 우선 연애(戀愛)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 보면, ‘인간의 육체적 기초 위에 꽃피는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애정’이란 뜻이라고. 어렵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연애를 하는 것일까? 옆구리가 시리다 못해 결려서? 아니면 결혼이라는 ‘절대반지’를 얻기 위해서? 천 가지 사랑에 천 가지 목적이 있으니 그걸 어떻게 다 설명하랴만, 대표적인 연애 목적을 통해 슬쩍 짐작이나 보자.
연애의 목적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만날 운명이면 반드시 만나게 돼 있는 걸까? <세렌디피티>의 못말리는 운명론자 커플은 당연히 “YES”라고 할듯. ‘세렌디피티’는 원래 ‘우연한 행운’이란 뜻이다. 영국에서 온 사라(케이트 베킨세일)와 미국인 조나단(존 쿠색)은 이 세렌디피티 때문에 7년간의 세월을 엎어버렸다. 크리스마스이브, 뉴욕의 한 백화점에서 각자 애인에게 줄 장갑을 고르다가 그만 눈이 맞아버린 두 사람. 그러나 서로 연락처를 헌책과 지폐에 적어 어디론가 떠나보낸다. 계시를 잘 읽어야 행복할 수 있다면서(누가 영화 주인공 아니랄까봐). 그들은 결혼을 앞두고 둘 다 7년 전의 어렴풋한 추억을 떠올린다. 결국 “운명은 위험한 것”이라 장담하며 영국에 돌아간 사라는 홀랑 뉴욕으로 돌아와버리고, 조나단 역시 백화점 정산번호까지 알아내 사라의 주소를 추적한다. 과연 단 몇 시간 만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까? 당근! 운명의 상대라면 말이다.
연애의 목적은 스킨십이다
종족 보존에 힘쓰는 스킨십 선수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약아빠졌거나 쿨하거나. <연애의 목적>의 유림(박해일)이나 <싱글즈>의 동미(엄정화)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 유림은 처음 만난 교생선생 홍(강혜정)에게 집적대면서 “연애는 좋아하고 끌리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아무 계산 없이 즐거운 시간을 쌓는 것”이라고 쿨한 척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머릿속은 성욕으로 충만하다. 급기야 자동차 백미러를 이용해서 홍의 집을 엿보는 집착까지 발휘하는 유림. 왜 그는 섹스에 집착하는 것일까? <싱글즈>의 동미의 침착하고 화끈한 이유를 들어보자. “모든 남녀 문제는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나는 거야. 까놓고 즐기고 까놓고 사랑한다!” 그래서 성욕이 해결되지 않는 친구보다 애인이 좋다는 동미가 연애 상대를 고르는 기준은 확실하다. “이놈이 돈을 잘 벌 인간인가, 아니면 밤이면 밤마다 날 즐겁게 해줄 인간인가?” 좋아서 연애하다 우연히 결혼하고 목돈 마련해서 사업까지 하면 일석이조다, 이 말씀!
연애의 목적은 결혼이다
‘연애’라는 주식시장에 안정주가 있을까? 재테크적 관점에서 보면, 결혼을 목표로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싱글즈>의 수헌(김주혁)만큼 완벽한 남자도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나난(장진영)에게 호감을 느낀 그의 작업방식은 귀엽기 그지없다. 나난이 일하는 레스토랑에 대학교, 고등학교, 유치원 동창회까지 끌어들이며 관심을 끄는가 하면, 나난을 성추행한 상사를 패주다가 유치장에 갇히기까지 한다. 그걸 빌미로 밥 사달라, 데이트해달라, 하며 작업 수위를 높이더니 결국 나난에게 프러포즈한다. 게다가 결혼 후 유학 비용과 용돈을 다 대주겠다는 기특한 발언까지 날리면서. 그러나 애초부터 결혼을 목적으로 접근한 그는 나난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였던 게 사실. 거절당하고도 “아니면 말고, 기다리는 게 특기”라며 쿨하게 사라진다. 혹시 수헌처럼 ‘결혼이 행복한 인생의 보증수표’라고 믿는다면, 맞선주선회사에 등록해보자. 스펙 좋은 인물들이 깔리고 깔렸다니까.
연애의 목적은 현재의 행복이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찰스(휴 그랜트)는 난처할 때 짓는 특유의 표정만큼이나 설명하기 복잡한 캐릭터다. 여러 여자를 만나고 다닌 것을 보면 카사노바형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진실한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매주 토요일 친구 결혼식에 갈 때마다 ‘왜 항상 남의 결혼식에만 갈까?’ 고민한다. 마땅한 여자는 수없이 만났고 이미 여러 명과 잠도 잤기 때문이다. 급기야 사랑하는 캐리(앤디 맥도웰)가 딴 남자와 결혼하자, 그는 여태 결혼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강박증에 시달린다. 드디어 고대하던 자신의 결혼식. 그러나 그는 “신랑 입장!” 할 시간에 들러리로 온 친구에게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을 정도로 결혼에 확신이 없다. 결국 결혼과 인연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그가 캐리에게 입맞춤하며 묻는다. “나와 결혼 안 하고도 평생 살아줄 수 있어?” 그 질문에 찰스가 고민하던 문제의 해답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연애의 목적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다
<봄날은 간다>의 은수(이영애)는 고독한 여자다.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인 그녀는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상우(유지태)와 녹음여행을 떠난다.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의 역사는 은수의 작업 멘트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라면 먹고 갈래요?” 아파트에서 은수와 하룻밤을 보낸 상우는 그녀 생각을 하면서 혼자 이불 속에 들어가 빙그레 웃으며 많은 날을 보낸다. 그러나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태도가 돌변하고 만다. 결국 은수는 헤어지자는 말을 남기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 상우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항변하면서 은수의 새 차를 긁어놓는 식의 바보같은 집착을 보인다. 은수는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옛사랑의 빈자리를 못견뎌하는 상우가 어리석게 보일 정도로. 어쩌면 은수의 연애는 상대를 향한 애정보다는 자기의 고독을 감싸안는 방법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연애의 목적은 일상 탈출이다
여행은 평범한 일상에서 탈출하려는 일종의 도발이다. 연애도 자기를 떠나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본다면 넓은 의미의 여행이나 마찬가지. <비포 선라이즈>의 셀린느(줄리 델피)가 제시(에단 호크)를 만난 것도 파리로 가는 열차 안에서다. 마드리드에 유학온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빈으로 가던 미국인 청년 제시는 감수성 풍부한 프랑스의 대학생 셀린느에게 첫눈에 사랑을 느낀다. 이 자유로운 영혼들은 사랑, 실연, 결혼, 죽음 등 인생의 진지한 문제에 관해 해 뜰 때까지 토론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출발이 있으면 도착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그들은 6개월 뒤,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자는 무모한 약속을 하고 아쉽게 헤어진다. 그리고 그때는 9년 뒤 <비포 선셋>에서 다시 만나 해지기 전까지 토론하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이미 결혼을 한 제시는 옛 기억을 떠올려 셀린느에게 예전보다 더 직접적인 대시를 하지만, 여행 중의 추억은 기억 속에 고이 묻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연애의 목적은 놀이다
연애를 놀이처럼 즐기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멜리에>에서 관객들에게 해피바이러스를 전염시켜버린 아멜리에(오드리 토투) 같은 여자다. 마치 장난기 있는 오드리 헵번 같은 그녀에게는 사실 아픈 기억이 있다. 엄마는 노트르담성당에서 뛰어내린 관광객에 깔려 돌아가시고, 유일한 친구 금붕어 마저 자살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우연히 한 상자를 발견한 이후, 특유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기 시작한다. 카페의 웨이트리스가 된 그녀는 담뱃가게 아가씨와 그녀 주변에서 맴도는 총각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아래층 아줌마에게 남편의 편지인 양 가짜 편지를 보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어느 날, 그녀는 기차역 앞에서 만난 니노(마티외 카소비츠)에게 첫눈에 반한다. 이제부터 니노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녀는 몽마르트르언덕과 기차역을 오가며 수줍은 힌트를 남긴다. 그녀만의 독특한 표정만 보면 사랑 때문인지, 혼자 놀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연애도 놀이만큼 재미나게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연애의 목적은 소유다
<아는 여자>의 이연(이나영)은 밖에서는 바텐더로 일하고 집에선 라디오에 사연 보내기 바쁜 여자. 그녀는 별 볼일 없는 야구선수 동치성(정재영)에게 꽂힌 뒤, 그의 뒤를 밟는 일명 스토커다. 3개월 시한부삶을 선고받은 동치성이 자신이 일하는 바에 찾아와 술에 취해 녹다운된 순간, 속으로 만세만창은 했을 이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치성은 여관방에 자기를 업어다 놓은 낯선 여자를 보고 애 떨어질(?) 뻔했다. 그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필기 공주’라는 이름의 여자가 사랑을 고백하는 사연을 들으며 자기 이야기가 아닌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연은 사연 당첨 경품인 휴대폰을 받고 좋아라 한다. 휴대폰을 미끼로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각종 경품으로 데이트까지 하는 그녀. 그렇게 정성을 쏟았건만, 눈치없는 치성은 그녀와 어떤 사이인지 묻는 사람에게 어이없이 ‘아는 여자’란다. 해바라기처럼 늘 지켜본 그 남자, 꼭 내 걸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더 커져가는데…. 하지만 소유하겠다는 집착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는 <미저리> 본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걸?
연애의 목적을 찾는 일은, 미친 짓이다
‘연애의 목적’이란 말 자체가 잘못됐다, 연애의 목적은 없다! 같이 있고 싶고 자꾸 보고 싶으면 되는 거지, 연애에 무슨 목적이 있나? 있다면 연애 그 자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소위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국가대표급 연애선수 커플을 떠올려보자. 연애지상주의자인 대학강사 준영(감우성)은 연희(엄정화)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택시 타는 것보다 여관비가 더 쌀 것 같은데요.” 서브가 제대로 들어오니, 공격 또한 과감할 수밖에. “평생 달콤한 말 들으면서 데이트나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연희와 “결혼해서 거짓말하며 살 자신없다”는 준영은 그야말로 찰떡궁합. 연희는 절대로 바람 피우는 거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며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첫 만남의 설렘, 교제하는 동안의 익숙함, 그리고 이별의 과정 자체와 섹스의 황홀함이다. 알콩달콩 티격태격 연애하기 바쁜 그들에게 연애의 목적을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듯. “연애의 목적 생각할 시간 있으면, 소개팅 약속이나 잡으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