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마침내 다스 베이더가 되다, <스타워즈3>의 헤이든 크리스텐슨
2005-06-09
글 : 박혜명

헤이든 크리스텐슨(24)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다스 베이더로 캐스팅될 당시(그때가 2000년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에 비할 바도 못 되는 무명배우였다. <스파이더 맨>이 스타성 전혀 없던 배우 토비 맥과이어를 주인공으로 기용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신화를 갖지 못한 미국인들이 그것의 대체물로 여기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핵심, 위협적인 악당이자 비극적인 영웅 다스 베이더를 존재감도 없는 열아홉살짜리 애에게 맡기다니. 모든 이들이 의구심을 표했다. 장성한 아나킨이 등장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이 개봉하자 광팬들은 화마저 냈다. 저것이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다스 베이더의 젊은 날이란 말이냐. 눈매는 흐릿하고 힘도 못 쓰게 생긴, 투정 많은 어린애구나. 평론가들은 <스타워즈 에피소드2>의 리뷰를 쓰면서 “크리스텐슨의 나무토막 같은 연기”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조지 루카스는 연약함이 깃든 크리스텐슨의 얼굴을 보고 캐스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루카스는 정치적 야망 때문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악의 포스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남자에게 그것이 걸맞은 내면이라고 판단했다. 시리즈를 비장하고 위대하게 마무리짓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를 보면 루카스의 판단에 동의하기 어렵지 않다. 크리스텐슨도 2편 때보다 더 많은 칭찬과 관심을 얻게 됐지만, 그는 배우로서 고민해야 할 더 많은 것들을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2001) 때 겪었다고 말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되기 이전, 크리스텐슨은 어윈 윙클러의 가족멜로드라마에서 환경 부적응에 가까운 불안정한 내면의 소년을 연기해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실제로 크리스텐든은 순하고 내성적인 기질을 가졌다. 칸영화제 월드 프리미어를 계기로 기자회견을 가진 그는 과장하지 않은 적당한 미소에 크지 않은 목소리로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만 대답을 하고는 했다. 학창 시절 테니스 볼보이로, 하키 점수판지기로 운동클럽에 속해 있었던 크리스텐슨은 13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는데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역할들만 골라 TV드라마를 해왔다. 이젠 LA에 저택이 있고 자기 이름의 프로덕션까지 차렸지만 그는 지금도 틈만 나면 고향인 캐나다 토론토의 집을 찾아가는 조용한 패밀리맨이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프로듀서로 일하는 친형이고,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어릴 때부터 몸을 묻어온 자기 방 침대에 누웠을 때다. 그 순간에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 “지난 10년이 믿기지가 않는구나.”

-<스타워즈 에피소드2> 개봉 때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본인의 연기를 두고 “나무토막 같다”고 했다. 기분 나쁘진 않았는지.

=이렇게 유명한 시리즈에 캐스팅되면 그런 호된 평가쯤은 각오해야 할 것 같다. 괜찮았다. 난 그저 조지(루카스)가 내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조지 루카스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가.

=캐스팅이 발표되기 전, 호출을 받고 그의 사무실에 찾아간 적이 있다. 루카스는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한마디 말도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얘기가 시작됐다. <스타워즈>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들. 나의 가족, 생활, 취미 따위를 물어봤다. 20분 정도 얘기하고 나서 루카스는 <스타워즈> 머그컵과 모자를 주곤 문 앞까지 바래다줬다. 난 그게 끝인 줄 알았다.

-그럼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분이 어땠는가.

=당연히 믿기지 않았다. 마침 집에 친구가 놀러와 있었는데 전화 끊자마자 <스타워즈> 사운드트랙 틀어놓고 둘이 장난감 광선검을 가지고 한참 놀았다.

-다스 베이더 복장을 처음 입었을 때의 소감은.

=솔직히 그 복장은 진짜 불편하다.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넘어질 것 같다. 하지만 그 가면을 쓰고 있을 땐 거의 그 가면에 깃든 잔인한 면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멋졌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태도였다. 눈빛에 공포를 담고, 어떤 사람들은 당연한 듯 존경심까지 품고 나를 봤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 금세라도 고개를 숙일 듯한 분위기였다. 그 첫날은 정말 못 잊을 것 같다.

-<스타워즈>의 출연으로 일상에서도 달라진 것이 있나.

=이런 프랜차이즈의 광팬들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길을 지나가면 다스 베이더 가면에 망토 쓴 친구들이 꼭 두세명씩 나타나서 ‘악수를 청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말을 건네곤 한다. (웃음)

-다스 베이더의 유명세가 부담스럽지 않은가.

=<스타워즈>를 하기 전까지 난 그렇게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고, 이 영화로 또래 동료들과도 전혀 다른 커리어를 갖게 됐다. 그렇지만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난 남들이 잘 봐주지 않은 영화를 찍었을 때가 더 맘이 편했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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