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실. 신구의 얼굴은 허허실실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세월이 빚어놓았나보다. 소주를 한잔 들이켜면서도 눈매는 쓰게 웃고 있다. 40년의 세월 동안 연극과 TV와 영화에 출연하며 천천히 빚어진 노배우의 은근함이라고 해야 할까. 장황한 말보다는 가볍고 인자한 농담이 더 짙은 뜻을 품고 있는 것만 같다. 요즘 신구는 바쁘다. 그는 영화 <간큰가족>의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고(아직 영화를 보지도 못했다 한다), 장진이 감독하는 <박수칠 때 떠나라>의 막바지 촬영에 임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엿새를 현장에서 지새웠다는 그를 만난 곳은 강남의 어느 냉면집. 시원하게 목으로 넘어가는 평양냉면처럼, 신구는 허허실실 농담처럼 지난 이야기들을 흘려냈다.
-냉면을 좋아하나보다.
=냉면의 담백함이 좋더라고. 원래 나는 담백한 음식이 좋아. 냉면은 육수맛하고 면맛뿐이잖아. 다른 쓸데없는 건 없어.
-<간큰가족>에서 맡은 김 노인 캐릭터가 실향민 아닌가.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걸로 봐서는….
=고향이 이북은 아니야. 젊었을 때 처음 맡았던 역할이 이북사람이어서 북한 사투리는 자연스레 남아 있는거지.
-<간큰가족> 금강산 촬영 때가 기억난다. 그 기억을 가지고 영화를 보니 김 노인이라는 캐릭터에서 절절함이 느껴지더라.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통일이라는 주제가 절실하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김 노인 입장에서 보면 가슴이 아프고 죽고 싶은 문제지. 그런데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거 아니겠나. 지금도 실향민 1세대들이 임진각에서 절하고 하는 걸 보면 그런 절절함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실제로 연기를 위해 실향민들을 만나봤나.
=살아오면서 많이 봤지. 그러고보면 이북이나 여기나 이질감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말을 쓰는데다가 기본적인 정서도 같지 않나. 이게 다 한핏줄이니까 그런 거 아니겠나.
-<간큰가족>에 출연한 계기도 그런 것 때문인가.
=그거야 PD하고 연락이 닿아서 된 거지 뭐, 난 뭐 배우니까 여건만 맞으면 해. 그땐 조명남 감독도 모르고 아무도 몰랐는데 두사부필름이라는 이름은 <두사부일체>라는 영화 때문에 알고 있었고. 그런데 말이지. 실제로 계약하고 오케이를 해도 시쳇말로 ‘나가리’되는 것들이 많더라고. <파고다 멤버>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영화가 엎어지는 바람에….
-<파고다 멤버>?
=음. 뭔지 좌우간에 파고단데. 그 영화에 출연하려고 하던 때에 <고독이 몸부림칠 때>가 들어왔지. 양쪽을 다 할 수는 없는 입장이고, <파고다 멤버>쪽은 계속 촬영한다 촬영한다 확답을 하고 있었고. 그런데 결국은 파고단지 뭔지 안 하더라고. 펑크가 난 거지.
-<고독이 몸부림칠 때>에서는 어떤 역할을 제의받았나.
=형 역할 있지 않나.
-주현이 맡았던 역할?
=그래. 그 역할. 거기 늙은이란 늙은이는 다 나왔잖아. 그런데 영화는 별로 재미를 못 봤다 그러더라고.
-지난해에 중견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많았다. <까불지마>도 있었고.
=<까불지마>? 그거야 오지명이가 까부는 거고. (웃음)
-<간큰가족>에서도 그렇고, 당대의 젊은 배우들과 연기를 많이 해왔다. 감우성도 그렇고, <반칙왕>의 송강호도 그렇고, <네멋대로 해라>의 양동근도 신구 선생님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꼭 하더라.
=들어봐야 좋을 것도 없지 뭐. 자기는 자기 일 하고 나는 내 일 하는 거지. 그거 다 헛소리야. (웃음) 걔네들은 나이 먹은 늙은이랑 일하니까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그러는 거겠지. 나는 원래 간섭하는 게 싫어. 애들이 연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답변하고 상의는 같이 해도, 나서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건 딱 질색이거든.
-같이 연기한 젊은 배우들은, 음. 한석규는 어땠나.
=<8월의 크리스마스>는 촬영현장이 군산이라 거기 초원사진관 세트에서 며칠 지내면서 촬영을 했어. 그런데 한석규 걔가 완전히 사진사처럼 생활을 하더구먼. 연기할 인물에 거의 빠져들어서 실생활도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
-지금도 <네멋대로 해라>의 부자지간은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다.
=양동근이 그 녀석도 아주 나름대로 열심이지. 인정받는 친구들은 다 자기 캐릭터들이 있어. 피나게 노력하고 그런 것들이 다 있더라고. 그런 거 없이는 그렇게 돋보일 수가 없어요.
-선생님 젊었을 때가 떠오르는 건가.
=나도 열심히 했지 그땐. 국립극단 소극장 무대 바닥의 결마다 내 땀이 안 묻은 데가 없지. 미쳤다고 보일 정도로 미친 듯이 해야 해. 그래야 뭔가 얻어질 것 같아. 그러고 늘 이야기하는 건데, 지금 정상에 오른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 TV에 신인으로 기용되는 친구들도 다 잘들하더라. 재능들이 만만치가 않아.
-그럼 선생님 젊은 시절과 비교해보면.
=그래도 나름대로 먹고살 수 있었던 곳이 영화계였는데, 그래도 그때는 미남미녀 위주의 작품들만 있어서 한계가 있었고, 지금은 꼭 예쁘고 잘생겨야만 배우하는 건 아니니까 더 나아진 거지.
-영화 출연작이 은근히 많다. 대표작만 몇개 꼽아봐도, 이두용 감독의 <홍의장군>도 있고.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나.
-김기영 감독 <파계>도 있고….
=임예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찍은 거였지. 내가 알기론 걔가 그 영화가 처음이었어. 전라도 마이산에서 찍었는데, 지금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김기영 감독은 <하녀>로 최고 인기 감독이었거든. 근데 그 양반이 많이 괴짜스럽지 않나. 그런 성격 때문에 나를 골랐는지 어쨌는지. (웃음) <파계> 하면 삭발했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 그때가 아마도 74년이었을 텐데. 내가 그때는 국립극단 단원이어서 지방공연도 해야 했어. 부산으로 광주로 지방공연을 할 때였는데 광주 공연 끝내자마자 영화 찍으러 마이산으로 갔어. 다짜고짜 삭발을 하라더군. 결혼도 얼마 앞두지 않은 때였거든. 그래서 결혼할 때는 가발을 쓰고 했어. (일동 웃음) 그것 때문에 그 양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이런 건 정말로 송구스런 질문이지만, 어떻게 배우가 되었….
=아우. 그런 이야기는 그만해. 그냥 ‘배우가 되고 싶어서’ 정도로만 써줘.
-그래도 궁금하다. 성균관대 국문학과를 그만두고 연극무대에 올랐는데. 공부 그만두고 연극을 하려면 그런 각오는 글로 표현이 안 될….
=사실은 내가 서울대 상대를 시험 봤는데 떨어지고 말았어. 2차로 붙은데가 성균관대 국문학과였고, 학교를 다니면서 재수를 하려고 결심을 했지. 말이 그렇지 학교 다니면서 재수가 되냐고. 2학년 가을에 군대를 가버렸고, 제대해서는 내가 국문과를 졸업해서 국어선생이 되겠나 어쩌겠나 싶었어. 처음에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가졌었는데,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직업을 가지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 시절의 아나운서는 지금이랑 달리 그냥 앵무새지 뭐. 그런 것보다는 연기가 더 좋겠다 싶었어. 만약 아나운서가 되었더라면 지금쯤은 아나운서 실장까지 되었을 수도 있지. 그래도 그때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
-연극이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보다 더 좋은가.
=사실 할 수 있다면 연극만 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려면 경제적인 여건이 마련된다는 전제가 필요한 거야. 꼭 지금처럼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여건만 마련해준다면야 당장이라도 연극만 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것도 마련이 안 되니까. 그렇다고 그걸 누구 탓만 할 수도 없고. 좌우간 그만큼 연극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주는 매력이 없어진 거지. 상당한 돈을 내고 볼 만한 감동이나 카타르시스, 흥분이 부족하니까 사람들이 연극으로부터 멀어지는 거 아닐까.
-그래도 연극이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존재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거야 모태니까. 연극무대는 영화나 드라마의 모태거든. 토양 같은 거야, 토양. 미인대회 출신으로 갑자기 스타가 된 젊은 배우들은 피식 웃을 이야긴지도 모르지만, 연극은 모태 같은 거니까 없어질 순 없지.
-요즘은 일년에 두번 정도 연극 무대에 오른다고 들었다. 앞으로 계획되어 있는 작품이 있나.
=연기자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자기가 직접 제작하는 경우 외에는. 연출자가 출연을 요청했을 때라야 하는 거다.
-혹시 극단을 하나 만들거나 연극 기획자로 나설 생각은 없나.
=늦었어. 내 나이로는 말이다. 좀더 젊었을 때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아. 그런데 극단을 운영하고 이런 사람들을 보면 참 존경스러워. 너무 고생스러울 것 같거든, 정말 대단한 분들이야.
-배우 신구에게 드라마는 큰 전환이 되었을 것도 같다. 그저 인자한 아버지 역할로 알려져 있다가 김병욱 PD 시트콤에 출연하면서 상당히 친밀한 이미지가 된 거 아닐까.
=그렇게들 이야기하는데. 시트콤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야. 주어진 ‘시추에이숀’에 충실하려면 그렇게 연기할 수 밖에 없지. 그게 전환이든 뭐든, 그냥 나한테 이런 기회가 왔구나 싶어서 했던 거 아니겠나. 그런 건 연기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그래도 CF로 ‘니들이 게맛을 알어?’도 유행시켰고, 선생님은 변하지 않아도 주변 반응은 분명히 달랐을 텐데.
=그거는 엄청나게 달라졌지. 이상한 영감 같잖아 이젠. (웃음) 일단은 그런 걸 바로 느낄 수 있는 게 애들로부터야.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도 쉽게 접근을 해와. 그런 시트콤이나 광고 하기 전에는 뭔가 껄끄러웠던 모양인지 거리에서 나를 봐도 자기네들끼리 고개 돌리고 소곤소곤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대놓고 다가와서 ‘와아!’ 이런다고. (웃음) 나도 그러면 기분 좋아져. 애들이 그래도 아무 상관없어.
-그런 캐릭터를 보면 아버지 세대라는 것도 많이 달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권위로부터도 좀 자유로운 것 같고.
=그런 게 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무관하지가 않아. 아버지 역할이 줄어들면서 여자들 권리가 많이 신장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참 좋은 거다. 아버지가 예전처럼 집안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하는 것보다는 말이지.
-좋은 기억으로든 나쁜 기억으로든 항상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이 있나.
=저거는 기억난다. 내가 처음 TV에 나왔을 때 맡았던 역이 이북사투리 쓰는 간첩이었거든. 음, 제목이 뭐더라. 74년 작품인데 기억이 나질 않네. 하여튼 세월이 지나도 그 역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젊었을 때는 그런 역할들만 주로 했었나보다.
=그랬지. 부정적인 인물들을 많이 연기했지, 악역, 간첩, 파계승. 기억도 다 못하겠다. (웃음) 그때도 아버지 역을 많이 했었고.
-아주 젊었을 때부터 아버지 역할을 한 건 아니지 않나.
=아니. 거의 그렇다고 봐야 해. 30살 지나면서부터 아버지 역할을 했는데, 한번도 멜로를 해본 적이 없어.
-하고 싶진 않았나.
=자기 생긴 꼴을 알아야지. (웃음) 일단은 주인공이라는 직업이 있지 않나.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 주인공에 배정이 되는 거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멜로도 한번 꼭 해야겠다.
=(웃음) 이 나이에 무슨 멜로….
-멜로에 무슨 나이가 있나.
=망령난 노인네 멜로? (일동 웃음)
-<간큰가족>에 부부로 출연한 김수미도 20대에 일용 엄니 역할을 하지 않았나. 그러고보면 젊었을 때부터 나이 든 역할을 맡으신 분들이 오래오래 배우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래 남으려면 노인 역부터 맡으라는 말인가? (웃음)
-그러고보니 출연이 불발된 <고독이 몸부림칠 때>도 멜로라면 멜로인데.
=아, 그런 늙은이 멜로는 싫어. (웃음)
-이제 <박수칠 때 떠나라> 촬영도 거의 끝났는데, 앞으로 계획은 뭔가.
=계획은 무슨. 전혀 없어. 계속 쉬면 심심하겠지만 일단은 숨을 돌리고 싶거든.
-<간큰가족> 마치자마자 연극 <떼도적>에,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 출연까지. 건강은 어떻게 지키나.
=건강은 좋아. 나름대로 건강에 투자를 하기 때문이지. 집 근처 양재천에서 항상 걷는데 나이 들면 뛰지는 말라고 하기에 이젠 빨리 걷지. 일주일에 서너번 왕복 8km를 걷는 게 보통이야. 그런데 지난주처럼 엿새를 집 밖에서 지내게 되면 그럴 수가 없더라고.
-마지막으로, 40년 넘게 연기를 하면서 지켜온 철칙 같은 게 있는지.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우리 같은 배우들은 늘 현장에 있어야 하니까 건강은 기본. 그건 너무 기본인가? 또 다른 철칙은 작업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 이것도 뭐 누구든지 그렇게 다 이야기하겠지. 그래도 언제든지 게을러질 수도 있다고. 기분이나 여건을 따지다보면 그렇게 최선을 다하자는 사명감이 소홀해질 수 있어. 어떤 상황에서든 한 사람 몫은 꼭 해야 하는 거거든.
-그러고보니 출연했던 선거 공익광고가 기억난다. ‘신구가 함께하는 투표’ 어쩌고 하는….
=내 인터뷰로 책 한권 다 쓰려고 그러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