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태풍태양>의 촬영감독 김병서
2005-06-09
글 : 이영진
사진 : 정진환
입봉 3년차의 단단한 결기

“촬영감독이 도대체 누구야?” 김병서(27)씨를 본 적 없는 취재진들은 현장에서 그를 대할 때마다 놀라곤 한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데다 뿔테 안경까지 써서 대학생으로 오해할 외모, 그런데 벌써 카메라를 들었다 하니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고보니 5년 전에도 한번 놀랐었다. 제1회 전주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한 극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박광수 감독은 3인3색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빤스 벗고 덤벼라>의 촬영감독이라며 그를 영화인들에게 처음 소개했다. 천재라고까지 추어올리진 않았어도, 박광수 감독이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던 것 같다. “선생님이 동료로 인정해주신 건데, 그때 저야 어리둥절했죠.”

촬영 또한 도제 시스템이 허물어졌다고 하나 스물다섯에 입봉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영상원 1기 선배였던 이언희 감독이 데뷔하면서 김병서씨도 현장 조수 경험을 건너뛰고 <…ing>에서 촬영감독 호칭을 얻었다. 본인은 “촬영부 경험이 없다보니 현장에서 감독님들한테 여유도 못 드리고 그래요”라고 겸손해하지만 그가 학연으로 뷰파인더 들여다볼 기회를 잡은 건 아니다.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에서 그의 카메라는 인라인 스케이팅의 속도감을 뒤쫓는 데 헉헉거리지 않고, 살아 번뜩이는 거리의 느낌을 적확하게 잡아낸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모기라는 캐릭터에 끌렸어요. <…ing> 때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정작 풀어내지 못하는 민아를 보면서 연민을 느꼈다면 이번엔 자신한테 충실하고 솔직한 모기에게 빠져들던데요. 두 캐릭터 모두 입체적이라는 점에서 한번 해보고 싶었죠.”

김병서 촬영감독의 별명은 ‘애늙은이’다. 그보다 선배인 30대 초반 촬영감독들도 왕성한 실험을 벌이는데, 그는 드라마와 감정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일찍 데뷔해서 그런지 제 카메라는 안정감을 찾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전에도 재기발랄하다는 말은 못 들었고.” 그래서일까. 젊음의 박동을 담아야 하는 이번 영화는 그에게 적지 않은 숙제를 남겨주기도 했다. “제가 좀 헤매면서 깨지다가 제 걸 찾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너무 일찍 움츠러들었어요. 그게 저한테 함정이 된 것 같아요. 처음에 정적인 느낌으로 계속 찍으니까 곁에서 정재은 감독님이 ‘좀더 가볍게, 좀더 가볍게’ 주문하고 격려해줬죠.” 현장의 느낌을 포착하기 위해 제한된 콘티없이 그때그때 정재은 감독과 상의해서 비주얼을 결정했다는 그는 자연광이 비추는데도 디테일한 조명을 일일이 설계해준 신경만 조명감독에게도 감사를 더한다.

그가 카메라를 들기까지는 아버지의 힘이 컸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계셨던 아버지는 회사가 충무로 대한극장 옆이었던 터라 아들을 데리고 수시로 극장 나들이를 갔고, 그렇게 본 영화들은 “피아노를 배워도 질리고, 붓을 잡아도 그렇던” 소년에게 처음으로 설렘의 대상을 보여줬다. “영상원에 합격하고 나서야 감독 혼자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김병서씨는 “스탭들을 다독일 리더십도 자신없는데다 낯가리는 성격이라” 일찌감치 감독의 길을 포기하고 사진 수업을 들으며 풍경 찍는 데 몰두했다고. “처음에는 점으로 보이던 사람들이 가깝게 보일 무렵” 그는 촬영 전공을 택했고, 거기서 또 한명의 아버지를 만났다. 바로 고 유영길 촬영감독. “3학년 때 마지막 수업을 들으면서 영화를 대하는 마음을 배웠다”는 그는 현재 세 번째 장편영화 <새드 무비>를 찍는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상업적인 영화라고 하더라도 캐릭터나 사건이 덜 노골적인 영화가 좋은 것 같아요.” 장르를 가리진 않지만 독특한 캐릭터들을 자연광 아래서 자유롭게 춤추게 하고 싶은 욕망은 좀처럼 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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