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스튜디오 지브리 사업본부장 스즈키 도시오
2001-02-06
글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지브리’는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다. 일종의 ‘신화’다. ‘아니메 왕국’의 신화를 일궈낸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도시오(52) 본부장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지난 12월23일 센트럴시네마에서 열린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제를 찾았다. 1985년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등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세웠고 첫 작품 <천공의 섬 라퓨타> 이후 <반딧불의 묘> <붉은 돼지> 등 대부분의 ‘지브리표’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서를 맡은 그는 <귀를 기울이면> <원령공주> 등의 상영이 끝나자 ‘열혈’ 관객 150명과 마주했다. <원령공주>를 디즈니에서 배급한 것을 놓고 한 관객이 “디즈니와의 합작계획 같은 것은 없냐”고 질문하자 그는 “한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전담하는 디즈니 시스템과 장면별로 여러 캐릭터를 여러 애니메이터가 분담하는 지브리 시스템은 엄연히 다르고, 무엇보다 생활양식이 달라 공동 작업은 불가능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관객의 쏟아지는 질문을 일일이 되새김질하는 차분함과 꼼꼼함을 보인 그였지만 이내 달아오른 극장안 열기에 적잖은 흥분을 맛본 듯한 눈치였다.

미야자키와 다카하다, 지브리의 ‘투톱’을 만나기 전까지 사실 스즈키 본부장은 “꿈도, 욕심도 없었다.” 게이오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글쓰기 빼곤 잘하는 게 없어” 도쿠마 서점에 입사한 그는 78년 “순전히 등 떠밀려” 애니메이션 월간잡지 <아니메쥬>의 편집장이 됐고, 창간호 특집기사로 미야자키와 다카하다를 다뤘다. “그때 미야자키는 <루팡3세 카리오스트로의 성>을 감독하고 있었고, 명작극장 시리즈를 끝낸 다카하다는 <꼬마 치에>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 봤는데 둘 다 별종이더라.” 스즈키 본부장은 사진촬영을 거부하는 미야자키 때문에 애먹었다며, 결국 그의 뒷모습 촬영으로 만족해야 했던 그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취재를 계기로 두 감독의 전작들을 훑어보면서 그들의 독특한 세계에 빠져든” 그는 이후 이들의 ‘든든한 응원자’를 자임했다. 그가 도쿠마 서점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하자고 제안한 건 82년. “남이 만든 작품 갖고서 이래저래 글쓴다는 것이 차츰 지겨워지던” 그때, 애니메이션 제작에 새로운 인생 궤도를 얹었다. 당시 “원작없는 작품을 만드는 건 모험”이라며 반대했던 도쿠마 사장도 82년부터 <아니메쥬>에 연재하기 시작한 만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자 1년 뒤 투자를 결정했다. 일본에서 90만명이라는 관객 동원을 기록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아니었다면 재패니메이션의 ‘진지’ 구축은 불가능했다.

“좋은 작품을 ‘제대로’ 팔지 못하면 헛일.” 15년 전 저가의 TV 시리즈가 판을 치던 때.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배포는 무모한 것처럼 보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홍보나 마케팅 부분만 해결하면 흥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지요.” 두 감독의 실력을 전적으로 신뢰한 그는 당시 광고회사를 동원하고, 민간 방송을 끌어들이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내세운 끝에 연달아 디즈니 애니메이션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지금도 직접 돌아다니며 1차 관객인 극장주들의 반응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는 그는 현재 2001년 7월 개봉 예정인 <센토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중이다. 10살 먹은 소녀가 돼지가 돼버린 부모들을 온전하게 되돌리기 위해 모험을 벌인다는 이야기. 또 내년 10월이면 도쿄의 미타카시라는 곳에 미야자키가 직접 설계한 미술관이 들어서는 것도 그를 기대에 부풀게 만드는 일 중 하나다. “지브리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그곳에는 그의 귀띔대로라면 곳곳에서 토토로가 얼굴을 내민단다. 그러면서도 그는,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가기보다 현실에 안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지브리의 신화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잊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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