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녀를 만난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그는 기억한다). 그런데 그는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남의 첫 순간만 자꾸 반복된다. <리컨스트럭션>은 기억장치를 제거당한 허수아비에 관한 영화 같다. 애당초 사랑에 대한 기억은 있을 수 없으며, 당연히 사랑이란 존재에 대한 믿음도 없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부는 허구로 이루어진 영화 속이지만 슬프다고 말한다.
아주 오래된 구식 이야기를 새로운 형식에 담아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한 <리컨스트럭션>의 매력 중 하나는 모호함에 있다. 꿈과 현실과 소설이 뒤섞여 어지러운 상태에서, 남자는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이 결국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 알고 절망한다. 1인2역이라 경계가 비교적 뚜렷했던 <욕망의 모호한 대상>과 반대로, 한 여배우가 두 역할을 맡은 <리컨스트럭션>의 모호함은 가중된다.
그러나 <리컨스트럭션>은 모호한 인간성에 대한 진득한 탐구가 아닌 가벼운 퍼즐 맞추기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주인공의 마음에 진실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죽은 도시와 죽은 이야기와 죽은 관계를 재구성하는 <리컨스트럭션>의 게임을 깊이 신뢰하기는 힘들다. 담배 한 개비로 최면을 걸면서 시작하는 <리컨스트럭션>은 이후 90분 동안 그 상태에서 꾸는 우울하고 나른한 꿈일 뿐이다.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린 메뉴가 인상적인 DVD다. 필름에서 보이던 거친 입자는 DVD로 넘어오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콜 포터와 프레드 아스테어부터 새뮤얼 바버에 이르는 음악은 잘 살아있다. 부록으로 심영섭 영화평론가의 강의와 예고편 등이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