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J(하리수)는 택배사 직원. 밤무대 가수로 일하던 괌에서 야구선수와 사랑에 빠져 한국에 왔으나, 트랜스젠더인 그의 정체를 안 남자의 부모로부터 모욕당한다. Y(신이)는 편의점 점원. 배우가 꿈이지만 3류 매니저한테 이용만 당한다. R은 다큐멘터리 찍기가 취미이자 전공인 대학 4학년. 세 사람은 Y의 편의점에서 편의점 주인의 사고사에 연루된다. 살인범으로 몰릴 것을 우려한 세 사람의 도피여정이 시작된다.
■ Review *몰래카메라에 담은 자신과 여자와의 정사 비디오를 내다팔겠다고 위협하던 남자는 기죽은 말투로 여자에게 말한다. “너, 그 책 본 적 있냐?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나무꾼이 선녀 옷 훔치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널 놓치기 싫어서 그런 거야. 널 붙들어두려고.” 흘기던 여자의 눈이 풀리며 이어지는 또 한판의 질펀한 정사.
속편이 대개 전편 우려먹기고, 더구나 전편이 소수의 지지만 있었던 저예산 에로영화라면 <노랑머리2>는 탄생부터 세인의 축복을 기대하긴 그른 영화다. 자신의 천출(賤出)을 <노랑머리2>는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 난 싸구려야,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라며 눈을 치켜뜨고 대드는 쪽이다. 살인(으로 오해된 사건)을 저지르고 나서 겁에 질려 신문을 뒤지던 여자는 뜬금없이 말한다. “야, 이것들 결혼하네. 이년, 개날라린데.”
이 영화는 충분히 저속하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에로비디오를 뽑아든 고객이 가질 법한 기대치를 <노랑머리2>는 주저없이 충족시킨다. 조명과 앵글의 트릭으로 성기를 살짝 감춘 세번의 긴 정사가 적절히 배치돼 있고, 유사 섹스장면도 사이사이에 등장한다. 대사는, <친구>의 폭력성에 분개한 분들이라면 또 한번 세태를 개탄할 만큼 비속어투성이다. 여자에게 형사가 말한다. “야, 구멍, 네 에미도 너처럼 가랭이 함부로 벌리냐?”
<노랑머리2>는 속편의 임무에도 충실하다. 무기력하고 유약한 한 남자와 버림받은 두 여자의 외설적 동행(혹은 동침), 그리고 남자의 퇴장과 두 여자의 동성애라는 구도를 이어받는 것이다. 물론 멍청하게 전편을 반복하진 않는다. 이젠 장안의 어린아이도 다 알게 된 트랜스젠더 하리수의 실제 이력을, 하리수가 분한 J의 개인사로 고스란히 이용하며 이야기의 두께를 부풀린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광고가 불러일으킨 가장 은밀한 욕망의 대상이었을 하리수의 나신을 마침내 전시함으로써, <노랑머리2>는 자신의 마케팅이 관객에게 내건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한다.
이 저속한 게임을 규탄하지 않는 관객에게라면, <노랑머리2>는 남다른 말을 건네는 영화다. 한국영화의 가장 유서깊은 장르인 에로를 토속에로, 유한부인에로, 양아치에로로 분류할 수 있다면, <노랑머리2>는 양아치에로의 범주에 넣을 만하다. 10대의 좌절, 아웃사이더의 도발이란 근사한 주제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양아치에로는 주류영화도 탐낼 만한 품이 넓은 장르다. <노랑머리2>는 여성뿐 아니라 성적소수자 전반에 가해진 세상의 폭력에까지 소재를 넓혔다는 점에서 양아치에로의 흥미로운 변주다.
이 영화가 폭언에 감춰진 진담으로 들린다면, 물론 그건 소재 자체가 아니라 연기와 대사의 싱싱한 육체성 덕이다. <노랑머리2>는 이야기가 참신한 편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살을 채우는 생기 넘치는 에피소드들로 인해 진부한 느낌이 없다. 3류 매니저와 Y가 여관에서 수작을 부리는 롱테이크나 R이 점쟁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 자연스러워 즉흥 연출이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명란젓을 남자 성기의 상징으로 내세운 건 너무 빤하다 해도, 무기도 위협도 되는 디지털카메라, 점쟁이가 불길하다고 경고한 렌즈박스 같은 소품의 모티브 활용도 재치있다. R이 중도에 갑자기 이탈하고, J를 기다리던 남자가 너무 왜소하게 묘사된 건, 그렇지 않았다면 훨씬 풍부해졌을 이야기의 밀도를 떨어뜨리긴 하지만.
표현방식과 제작규모에서 B급을 자임했지만, 이 영화엔 성애 표현에 매몰되지 않은 캐릭터와 이야기의 힘이 살아 있다. 감독의 의도와 관계없이 <노랑머리2>는 표현 과잉에 진심이 묻힌 전편과 함께 한국 에로영화 역사의 한 귀퉁이를 새길 만한 개척자적 시도다.
허문영 기자 moon8@hani.co.kr
김유민 감독 인터뷰
“나는 날 것, 야성을 좋아한다”
김유민 감독은 <채널69>와 <까>의 시나리오를 썼고, <뜨거운 바다> <커피 카피 코피>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노랑머리>와 <노랑머리2>는 자신이 각본, 감독, 제작을 겸했다.
-하리수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시나리오 준비하고 있다가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다. 그때는 민간인이었다. 그녀를 보고 <노랑머리2>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국영화엔 없던 캐릭터이고, 이 인물이 여성 버디영화의 한축을 맡는다면 새로운 느낌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주니까 어쩌면 그렇게 나를 잘 이해할 수 있었냐고 말해서 희열을 느꼈다.
-그뒤에 하리수는 스타가 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캐스팅한 열흘 뒤에 화장품 모델이 됐다. 그뒤로는 <노랑머리2>의 하리수가 아니라 그냥 하리수가 됐다. 한편으론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제 다른 세상에 속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하리수가 트랜스젠더라는 것 때문에 스타가 됐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후진성의 반영이라고 본다. 타이에서 산 적이 있는데, 타이만 해도 트랜스젠더라는 게 더이상 사회적 이슈가 아니다.
-<노랑머리2>는 전편보다 이야기가 복잡하고 표현이 섬세해졌다.
:전편이 불친절했다고 생각한다. 너무 날 것 그대로여서 보는 사람들이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좀 친절하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1편을 더 좋아한다. 나는 날 것, 야성을 좋아한다.
-에로를 택한 건 저예산의 한계 때문인가.
:에로라고? 난 에로영화를 의식한 적이 없다. <노랑머리2>의 정사는 끈적끈적한 에로영화와 전혀 다르지 않은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영화이기 때문에 한 것이다. 저예산영화는 점점 미친 짓이 돼간다. 5억원 영화가 50억원 영화보다 위험한 시대가 됐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예산영화를 좋아한다. 그럴 수만 있으면 평생 저예산만 하고 싶다. 스타를 쓸 생각도 없고,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내 자유를 제한하고 싶은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저예산 할 때는 이슈가 있어야 최소한의 안정성이 마련된다. 이번에 그 역할을 하리수가 해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