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덕진 놈이 (적어도) 재미는 본다.’
<극장전> <연애의 목적>의 교훈이다. <극장전>의 김동수(김상경), <연애의 목적>의 이유림(박해일)은 철이 없다. 철이 없으니까 부끄러운 줄 모른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끈덕지게 치근덕댄다. 그런데 뺨이라도 맞아야 할 철부지가 뺨을 맞기는커녕 ‘재미’를 본다. 보채는 놈한테는 못 당하기 때문일까? 어쨋든 동수와 유림은 얻고 싶은 걸 얻는다. 두 남자의 목적은 하룻밤 자는 것이었다.
자꾸 동수, 유림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둘의 행동은 묘한 감염력이 있다. 자꾸 생각나고 피식 웃게 된다. 그놈들은 처음부터 가관이었다. 여배우 최영실(엄지원)을 보자마자 “이상형입니다”라고 달려드는 동수나, 처음 만난 교생 최홍(강혜정)에게 “젖었어요?”라고 묻는 유림이나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든 놈이다. 이해하기 힘든 놈들은 이해하기 힘든 짓을 반복한다. 싫다는데도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사랑한다”고 애걸하지 않나(동수), 담임교사라는 쥐꼬리만한 권력을 이용해서 교생에게 “같이 자자, 여관 가자”고 들볶지 않나(유림), 보면 볼수록 가관이다. 심지어 그들은 단죄되지 ‘못하는’ 성추행을 계속한다. 성추행이 별건가? 싫다는데 괴롭히고, 가라는데 덤비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그냥’ 끈덕지게 따라붙어서 ‘뭐라’ 고발하기 힘든 작태를 반복한다. 하지만 평균적인 감수성에서 벗어난 그들을, 얼굴에 철판을 깔고 덤비는 놈들을 아무도 막을 수는 없다.
그런데 말이다. 그 남자들, 귀여우면 안 되는데 귀엽다. 아니 귀엽다기보다 ‘구엽다’. 느끼한 성인 남성가 귀여운 척을 할 때 쓰는 구어체 표현인 ‘구엽다’, 그 말이 딱 맞다. 배도 슬쩍 나오고, 하는 짓도 매우 느끼하고,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데 볼수록 구여워진다. 슬쩍 연민까지 느껴진다. 어? 이상하다. 일찍이 나는 나에게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속담이야말로 전근대적인 남성폭력의 상징이라고 되뇌어오지 않았던가? ‘그랬던 내가’ 어느새 넘어올 때까지 지치지 않고 찍어대는 그들을 귀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게 된다. 그리고 자문한다. 너의 정치적 올바름은 어디로 갔나? 집요하면 짜증나고 역겨워야 법 아닌가? 그런데 그들의 집요함은 왜 귀여움이 되는가? 심사가 약간 복잡해진다.
철없는 뻔뻔함이 쌓이면 귀여움으로 변한다?
그리고 ‘알리바이’를 찾아낸다. 그들은 위협적이지 않잖아? 그렇잖아! 그렇지, 물리적인 폭력을 동반하지 않는 집요함은 때때로 귀여움이 되는 법이지. 게다가 너무 ‘나이브’하잖아. 그래 철부지의 힘! 정말 동수와 유림은 ‘본 투 비’ 철부지 같다. 그들의 출신성분은 틀림없이 철없는 외아들이다(실제 영화에서 <연애의 목적>에서 엄마는 외아들 유림을 ‘오냐 오냐’ 하면서 키웠다고 증언한다). 오호라, 그들은 미성숙의 소년들이던 게다. 그러니 자제할 줄을 모르지. 어쩌나, ‘철없는’ 뻔뻔함은 쌓이고 쌓이면 양질전화의 법칙에 따라 귀여움으로 변하는 법. 뻔한 우연을 가장해서 우연한 만남을 도모하는 동수의 모습을 보렴. 저건 ‘생각있는’ 어른은 도저히 하기 힘든 행위란다. 체면의 속박을 받는 어른이면 도저히 못할 짓이란다. 하지만 애들이 무섭지는 않다. 그저 저런 ‘애’들이 사랑한다고 매달리면 “당신이 사랑하기는 뭘 사랑합니까?”라고 한마디 타일러주면 그만이란다. 그렇다고 힘으로 어쩌지는 못할 위인이니까. 심지어 역지사지까지 해본다. 어쩌면 동수는 영실에게 ‘당한’ 것일지도 몰라. 유혹의 기술이 부족해서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 같은 동수는 ‘원 나이트 스탠드’용으로 딱이잖아?
유림은 동수보다는 좀 세지. 힘으로라도 어쩌려고 덤빌 것 같잖아. 영화에서도 정말 아랫도리를 들이밀면서 “5초만 넣고 있을게”라고 하는 위인이잖아? 하지만 그의 찝쩍거림이 도를 넘어서려 할 때, 그는 ‘다행히’ 찝쩍남에서 연애남으로 돌변한다. 시험보는 아이들 뒤에서 최홍의 손을 슬쩍 잡아채는 귀여운 연인으로 환생한다. 잠깐, 근데 왜 제멋대로인 남자들이 매력적이지? 이런, 아직도 ‘철없음’이 남성다운 매력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자각한다. 아니 ‘아직도’가 아니지. 어쩌면 ‘점점 더’이지. 동수와 유림이야말로 외아들로 자라서 철없지만, 철없어서 귀여운 세대의 대표선수 같잖아. 70년대생 남자들 말이야. 물론 사귀어보면, 살아보면 귀엽지만은 않겠지. 그런데 왜 여자들은 알면서 저런 놈들의 매력에 ‘빠져 빠져’ 드는 거지? 왜 사회는 저런 놈들을 여자들이 받아주게 만들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자, ‘극장전’에서 서서, ‘연애의 목적’을 복습한다. ‘끈덕진 놈이 재미를 본다.’ 재미만 보나? 애인도 얻는다. 앞으로 자포자기를 떨치고,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무장한다. 그래, 다만 지구력이 부족했던 게야. 앞으로는 넘어올 때까지 찍어봐야지. 열번이고, 백번이고. “이제 그만 뚝!”이라고? “이제 그만 뚝!” 하고 돌아서 걸어가면서도, 은근히 놈이 쫓아왔으면, 바라게 되는 거지? 그렇지? (돌 날아온다)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