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사랑할 준비는 되어 있다, <외출>의 손예진
2005-06-16
글 : 이혜정
글 : 김수경

멜로영화의 흥행보증수표. 관객동원에 관한 한 손예진은 코미디의 제왕 차승원과 수위를 다투는 호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취화선>의 소운 역으로 데뷔한 이후 주연작 4편만 놓고보면 4타수 4안타. 첫 주연작 <연애소설>을 시작으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개별 작품마다 평단의 평가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엇갈렸지만, 관객의 호응은 뜨거웠다. 손예진은 “같은 장르를 계속하다보니 작품마다 있는 미세한 차이들을 구체적인 변주로 끌어내는 것이 가장 힘들다”라고 이야기한다. 멜로드라마가 친숙한 만큼 한번 식상하면 급속도로 애정이 식는 장르임을 감안하면 그녀의 ‘한우물 파기’는 일정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외적 조건으로만 보면 다음 타석 <외출>도 출루는 예정된 분위기. 1루타에서 홈런까지 어디로 낙착될지가 관건이지만.

삼척에서 <외출>의 야간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상경한 손예진은 피곤해 보였다. 적어도 촬영을 위해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입기 전까지는. 무릎 위까지 비치는 푸른빛의 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동행한 스탭들에게 농담을 건네다가 카메라를 응시한다. 도로변이라 간혹 들리는 차소리를 제외하면 정적만 남겨진 촬영장소에 셔터소리가 울려퍼진다. “사랑은 어차피 약간의 판타지가 필요하다”는 평소의 지론처럼 꿈꾸는 듯한 얼굴로 예민하게 손동작과 얼굴의 각도를 바꾸는 그녀. <클래식>의 “7시간 비를 맞았던 에피소드”로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소나기 장면을 상기시키자, “강단이나 승부욕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다 고생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답한다.

촬영 초기 <외출>은 손예진에게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발걸음” 같았다. “배우자의 교통사고, 배신, 불륜 같은 설정들이 영화 초반에 제시되니까 그 테두리 안에서 연기를 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상처에 대한 느낌이 깔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그런 게 없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이해가 안 돼 영화 초반에는 많이 헤맸다”라고 술회했다. 삼척 촬영현장에서는 허진호 감독이 두 배우에게 연기지도를 하기보다는 두 배우에게 설정 자체를 만들어내고 논의하라고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다고 한다. 배우에게 그만큼 자유를 줬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막상 이런 작업이 수동적으로 임하는 것보다 쉬웠을 리 없다. “전후 장면에 대한 예상없이 촬영에 임해야 하는” 이중고가 배우들을 고민스럽게 했다. “첫 촬영에서 7∼8차례 테이크가 강행”되면서 손예진은 허 감독의 연출스타일을 조금씩 짐작하기 시작했다고. 자신은 “감정이 안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 봉착했는데 허 감독은 그때 나온 연기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인수(배용준)와 서영의 감정을 중심으로 한 장면이 많아서” 두 배우가 감정의 리듬을 맞추는 것도 연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반대로 “세트 촬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취향과 전적으로 로케이션에 의존하는 허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잘 부합되었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 말로 옮기는 성격도 비슷하다는 것”이 그녀의 전언.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외출>의 공통점, 그리고 그 두 작품이 손예진의 전작들과의 차이는 그녀가 유부녀 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배역 때문일까. “예전에는 현장에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만 해도 버거웠는데 요즘은 조금 여유로워졌다. 조금씩 다른 사람들 얼굴이 보인다.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면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현장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전한다. “코미디나 액션 같은 장르면 몰라도 멜로라면 내 관점에서 소화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개인이나 내 자신을 연기에 결부시키는 것은 부끄럽고 어색하다”라던 예전의 인터뷰와 달라진 견해를 내보였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수진은 순애보, 눈물이라는 키워드에서 <연애소설>이나 <클래식>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마저도 <외출>에서는 변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상처입은 사람들이 “상처입지 않은 듯” 벌이는 다른 상황의 연애담이므로. 멜로물을 여러 편 하면서 느꼈다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일정 수준 이상의 멜로 연기를 완성하고 싶다”는 목표가 이어질지도 궁금하다.

“생각하는 만큼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성격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배우를 꿈꾼 대구 출신의 손예진은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표현하는 건 늘어난 것 같다”는 말로 스스로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시절 주위 사람의 권유로 매니지먼트사를 소개받고도, 1년이 지난 뒤 데뷔했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신중한 편이다. 여전히 일상에서는 싸이월드, 컴퓨터게임도 하지 않고, TV 개그 프로그램도 드물게 보는 1982년생 ‘애늙은이’다. 한편 손예진은 “어릴 때 시작해서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이 일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고, 왜 계속 일하는가에 대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많은 인물들을 연기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어느 순간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많이 괴롭다.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나는 ‘배우니까 이렇게 해야지’ 하고 규정한 부분이 많았다. 이를테면 스스로를 좀 괴롭히는 편이기도 하고. 가끔 인터뷰 기사나 화면을 보며 나조차도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라는 사람은 소멸되어가고 여러 캐릭터를 계속 연기만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시간이 나면 사람들을 만나 보내기보다는 강아지 찌루와 놀아주거나 책을 읽는 편이다. 최근에 파울로 코엘료의 <11분>과 <연금술사>를 읽었다고.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에 대해서도 즐겁게 이야기한다. “우유부단한 A형이라 확실한 게 없다”는 전제를 달고 “공감을 하는 것과 그것에 동의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라고 <반짝반짝 빛나는>의 두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한 사견을 밝힌다. 같은 작가의 단편집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서 묘사되는 이별 뒤에 그려지는 사랑의 비참함에 대해서도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나라면 그럴 수는 없다”거나 “가끔은 꿈속의 왕자님이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는 것이 멜로배우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거듭나려는 <외출>의 히로인은 9월9일이면 아시아 10개국의 관객과 극장에서 만나는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다. 국내 관객을 휘어잡은 순정의 ‘눈물’이 아시아의 가슴을 적실 수 있을지 기다려보자.

의상협찬 김연주·CHLOE·OBZEE·MAY’S MAY·JIMMY CHOO·SEOMI&TUUS·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신지혜·헤어&메이크업 제니하우스·장소협찬 라사디자인, 커피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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