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맥디아미드씨가 나와 계십니다. “이안 맥디아… 그게 누구야?”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은하계를 암흑으로 몰아넣은 시스 군주 팰퍼타인이라면 다들 아시겠지요. <시스의 복수>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조지 루카스 영감이 쓴 유치한 대사들은 여전히 참을 수가 없나 봅니다. 하지만 이안 맥디아미드의 연기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지요. <뉴욕타임스> 꼰대들은 ‘이안 맥디아미드는 음험한 정치적 당략주의자에서 흉포한 전체주의자로 변모하는 팰퍼타인을 파워풀하게 연기한다’고 했고, <버라이어티> 영감들은 ‘악의 주모자로의 압도적인 변신을 보여주는 맥디아미드는 꼭 되짚어볼 가치가 있다’며 찬사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날아갈 것 같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저를 알아보더군요. 사람들이 ‘설마 당신일 리가 없어! 혹시 당신이 팰퍼타인은 아니겠죠’라고 물어보면, 저는 일단 시침 뚝 떼고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뒤에 ‘나는 팰퍼타인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사악한 인간이죠’라고 덧붙여주기는 하지만.” (웃음)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이안 맥디아미드 양반이 완전히 쇼를 강탈했다’(Steal the show)고 하더군요. 왜 아니겠습니까. 갈피를 못 잡는 불쌍한 청춘을 꼬드겨서 암흑 속으로 집어던져버린 팰퍼타인은 정말 카리스마가 넘치는 악당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스타워즈> 팬 사이트들에서 ‘이안 맥디아미드에게 오스카를!’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겠습니까. 팰퍼타인 같은 악당을 그리도 멋들어지게 연기하는 건 보통 내공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팰퍼타인은 심리학적인 복잡성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은 인물이에요. 옳거나 그르거나를 구분하는 잣대 자체가 없는 악마지요. 불행한 것은, 이 세상에는 진짜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차라리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요다와 라이트 세이버로 결투를 벌이는 장면을 들 수 있겠네요.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 배우와 싸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맥디아미드씨가 처음으로 시스 군주 팰퍼타인을 연기했던 것은 83년작 <제다이의 귀환>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참 재미있습니다. 당시 맥디아미드씨의 나이가 38살이었죠. 그런데 <시스의 복수>에서는 예순에 가까운 나이로 거의 스무살이나 젊은 팰퍼타인을 연기했단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가 기억나네요. 1983년 당시, 저는 샘 셰퍼드가 연출한 연극 <유혹당한>에 출연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극을 본 조지 루카스가 점심을 산다고 하지 뭡니까.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그냥 점심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거 분명히 <스타워즈>와 관련이 있는 일이다 싶더라고요. 나중에 에이전트가 제게 <스타워즈> 출연제의가 들어왔노라고 했을 때, 저는 그냥 심드렁하게 되물었죠. ‘무슨 역할인데?’, ‘은하계의 제왕 역할이라는데요’, ‘좋아. 그거라면 할래’. (웃음) 그렇게 해서 <제다이의 귀환>에 참여하게 된 겁니다.”
이안 맥디아미드씨는 원래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영화평론가는 많아도, 연기자는 참 드물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걸까요. “배우를 하겠다고 선언했더니 부모와 친구들이 뜯어말리더군요. 배우란 여러모로 현명치 못한 직업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는데 도저히 적성에 맞질 않더라고요. 평생을 후회하고 살 수는 없겠다 싶어서 글래스고의 연기학교로 갔습니다.” 맥디아미드씨는 운이 좋았는지 배우로서도 탄탄대로였습니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서도 공연을 했고, 런던 알미디어 극단에서는 2002년까지 10년간 예술감독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맥디아미드씨는 팀 버튼의 <슬리피 할로우>나 멕 라이언 주연의 사극 <레스토레이션>에서도 작은 역을 맡았던 적이 있다네요. 그래도 역시 <시스의 복수>가 새로운 장을 연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저는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런 뒤에는 항상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니까요. 물론 <시스의 복수> 같은 영화는 언제나 영원히 남아 있을 테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또 보게 되겠지요. 하지만 제 나이 예순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새로운 일들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시스의 복수>가 이안 맥디아미드라는 이름을 세상 위로 올려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노팅힐에서 20년간 독신으로 살아온 장년의 영국 남자에게 그만한 행운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연극 무대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팰퍼타인 사진 위에다 사인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럼 저는 이 연극을 보지 않으면 사인을 해주지 않겠다고 말하죠. 나중에 연극 티켓이나 브로셔를 들고오면 그제야 사인을 해줍니다.” 아니 팰퍼타인보다 더 음험하시군요. “예. 맞습니다. 저는 <스타워즈>로 얻은 명성을 극단을 위한 티켓을 파는 데 거리낌없이 이용합니다. 앞으로도 계~ 속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