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상쾌지수가 증가한다. 외모를 우선시하는 세상이 문제라지만 아름다운 것에 열광하게 되는 이 자연스러움을 그 누가 욕하랴!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아름다운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가 더 끌리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렇게 아름다운 배우들에게 이끌려 극장으로 향하던 학창 시절, 나의 발길을 딱 붙잡아버린 배우가 있다.
알랭 들롱. 가장 아름다운 배우를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그 이름. 알랭 들롱은 나에게 있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세상에 아름다운 배우들은 많지만 알랭 들롱의 아름다움은 남다르다.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그 눈빛. 식상하다 하더라도 우수에 젖은 듯한 그의 눈빛, 사람을 잡아 끄는 그 눈빛은 극장 문을 나선 후에도 며칠씩이나 가슴앓이를 하게 만들었다.
스크린 속 알랭 들롱은 언제나 태생부터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존재처럼 냉소적이고 찌푸린 인상의 멜랑꼴리한 인물로 등장했다. 잘 생겼지만 도덕적으로는 모호한 이 아름다운 청년은 그 아름다움이 무색할 정도로 살인범, 사기꾼, 난봉꾼, 범죄자로 나왔다. 그는 형사를 맡았을 때 조차도 범죄자와 구분하기 힘들었다.
알랑 들롱에게는 묘한 매력이 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의 모습은 온전히 사랑할 수도 온전히 증오할 수도 없는 혼란감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그는 우울하고 폭력적이었다. 그래도 그는 용서를 받았고 게다가 연민까지 느끼게 했다.
알랭 들롱의 아름다움에 대한 극찬이 지나친 걸까? 하지만,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같은 청년 리플리로 출연한 <태양은 가득히>, 냉철하고 고독한 살인 청부업자로 나온 <사무라이>, 푹 눌러 쓴 중절모와 깃 세운 레인코트에 우울함이 번지던 <형사>, 그리고 <암흑가의 두사람>, <지하실의 멜로디>… 빚어낸 듯 아름다운 외모와 퇴폐적인 분위기는 딱 ‘차가운 천사’가 무색한 것을 어찌 부정하랴.
지금 아름다운 배우로 손꼽히는 주드 로가 <알피>로 알랭 들롱에게 도전했지만, 그래도 그가 아니면 역시 뭔가 부족하다. 영화 속 여자들에게 부러운 감정이 생기는 것도 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곁에 두고 싶고, 함께 있고 싶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가질 수 없어서, 만질 수 없어서 안타까운 그 감정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당시에 알랭 들롱 한 번 좋아하지 않은 여자들이 있었을까? 없을 거다. 지금도 그가 출연했던 옛날 영화들을 보면 스크린 속 알랭 들롱은 여전히 아름답고 그 눈빛은 가슴을 설레이게 만든다.
어느 한 배우에 대해 무한한 애정공세를 펼친다는 거, 지금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래서 알랭 들롱에게 느꼈던 순수에의 열병 같은 감정이 지금 생각하면 풋풋하다. 하지만 시간이 무정한 걸까, 세월에 휩쓸려 나의 감성이 변한 걸까. 그의 얼굴에서 찰나의 순간이 지나감을 느낀다. 나이가 먹었지만 알랭 들롱은 여전히 잘생겼다. 하지만 아름답진 않다. 아쉽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나의 머리와 온몸의 세포들이 기억하는 알랭 들롱은 여전히 아름답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