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제이 보고서>는 섹스가 아닌 앨프리드 킨지에 관한 보고서다. 그러니까 <킨제이 보고서> 포스터에 적힌 ‘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라는 카피는 뭔가 이상하다. 영화의 내용에 어울리던 원제목 <킨지>도 한국에 와서 <킨제이 보고서>란 제목으로 바뀌었다.
하긴 이런 걸 따지는 것도 우습다. 우리에게 성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대상이며, 말 못할 사연이 도처에 파묻혀 있는 상황이어서 영화 덕에 새로 나온 <킨제이 보고서>를 한권 구입해봐야 할 판이다. 과학으로 성 모럴을 바꾸고 새로운 성 담론을 이끌어내려던 킨지의 성 혁명은 50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해도 이 땅에선 여전히 유효한 작업이다.
빌 콘돈의 전작 <갓 앤 몬스터>과 6년 만의 신작 <킨제이 보고서>의 두 주인공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1950년대 말에 나란히 죽었으며 살아 있는 동안 사회적 편견에 꽤 부딪혔을 괴물 같은 두 실존인물- 제임스 웨일과 킨지- 의 이야기는, 그래서 연작처럼 보인다(게다가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남자에 대한 성적 관심을 거부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다).
20세기 중반의 미국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작업을 펼치고 있는 빌 콘돈은 차기작 <드림걸스>에서도 같은 지점을 방문할 예정이다. 외국에서 비중있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 해도 국내 개봉이나 DVD 출시가 마냥 쉽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니 부록으로 예고편만 달랑 들어 있는 <킨제이 보고서> DVD를 보면서, 그나마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현실이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