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달의 게임 <기동전사 건담 vs. Z 건담>
2005-06-21
글 : 한청남
건담 팬이라면 필수 구입,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애니메이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는 어떤 애니메이션인지 설명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그것은 1979년 첫 시리즈가 공개된 이후 지금껏 꾸준히 신작이 나오고 있는 인기 시리즈인 동시에, 단순히 애니메이션으로 그치지 않고 그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거대한 문화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로봇(‘모빌슈츠’라고 한다)이 등장하는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은 흑백이 불분명한 인간들의 갈등과 신구세대의 충돌로써, 강한 주제의식과 심도 깊은 스토리, 그리고 치밀한 설정을 통해 당대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한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특히 첫 번째 시리즈인 <기동전사 건담>과 그 후속작인 <기동전사 Z 건담>(‘제타 건담’이라고 읽는다) 그리고 1988년 개봉된 극장판 <역습의 샤아>까지를 일컬어 ‘우주세기 건담’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건담의 창조자인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직접 손을 댄 작품이자 두 주인공 ‘아무로 레이’와 ‘샤아 아즈나블’의 기나긴 숙명이 그려진 오리지널 시리즈로서 이후 등장한 다른 건담 시리즈와 구분을 짓는 명칭이다(물론 수많은 외전 작품들로 인해 간단히 정의내릴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이정도만 언급하겠다).

최근 국내에서는 근작 시리즈인 <신기동전기 건담 W>와 <기동전사 건담 SEED>가 케이블TV와 위성채널을 통해 정식으로 소개되어, 수십 년 전부터 ‘우주세기 건담’에 애착을 느껴온 팬들보다는 비교적 젊은층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발달된 애니메이션 기법과 최신 트랜드에 맞춰 제작된 만큼 보는 즐거움은 더하겠지만 아무래도 20년 가까이 쌓아온 명성과 프라모델, 비디오 게임 등 수많은 파생상품들을 통해 구축한 ‘우주세기 건담’의 인지도에는 못 미친다. 오늘 소개할 <기동전사 건담 vs. Z 건담> 역시 그러한 상품들 중 하나이며 원작의 명성에 걸맞는 완성도로 각광받은 게임이다.

게임을 소개함에 앞서 이렇게 장황하게 원작을 소개한 이유는 그만큼 게임이 원작에 많이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은 <기동전사 건담>의 시대가 되는 ‘일년전쟁’에서부터 <Z 건담>의 시대인 ‘그리프스 전쟁’까지를 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원작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조차 헷갈릴 만큼 방대한 설정과 배경 그리고 수없이 등장하는 캐릭터들로 인해, 원작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다가서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물론 게임의 조작이나 진행 방식은 쉬운 편이다. 하지만 게임의 스토리와 캐릭터들이 나누는 대사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재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임 속에서 펼쳐지는 상황들은 철저히 원작 팬들이 감정이입을 하게끔 펼쳐지기 때문에 원작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한글화가 되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극장판 포스터

그렇다면 TV 애니메이션으로 국내에 방영되지 않은 원작을 어떻게 봐야할까? 우선 <기동전사 건담>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담당했던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만화 <기동전사 건담 디 오리진>을 추천한다. 최근에 그려진 작품이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1979년도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보다 더 풍부하다. 그리고 '반다이 채널'(www.bandai.co.kr) 등을 통해 제공되는 <기동전사 건담>과 <Z 건담> VOD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특히 <Z 건담>은 최근 일본에서 50부작의 오리지널 TV 시리즈를 극장판으로 재구성해 개봉하여 화제가 된 시리즈로, 인간군상이 엮어내는 비극적인 스토리와 멋진 메카닉 디자인 때문에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작품이다. 불법 동영상으로 손쉽게 구할 수도 있고 또 많은 이들이 그렇게 접하고 있지만 PS2 게임을 돈을 주고 구입하듯이 문화상품에는 적절한 대가를 지불해야 소비자 역시 나중에 그 이득을 누릴 수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게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원래 이 <기동전사 건담 vs. Z 건담>은 일본에서 게임센터용으로 개발된 아케이드 게임이다. 단순히 원작의 인기에만 기댄 캐릭터 상품 이상으로 게임으로서의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면, 게임센터에 온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을 것이다. 사실 이번 게임은 ‘우주세기 건담’을 소재로 한 일련의 게임 시리즈 중 최신작으로서 전작들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한다고 하겠다.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축소로 국내에선 보기 힘든 게임이 되어버렸지만, PS2 버전으로 출시되면서 게임센터처럼 즐길 수 있는 기능인 ‘아케이드 모드’도 함께 삽입되어 있다.

이러한 ‘아케이드’ 모드를 통해 게임을 시작하면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이름을 정하고 그다음 탑승할 모빌슈츠를 고르게 된다. 지상전에 사용할 것과 우주전에 사용할 것으로 각각 선택하면 된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아머드 코어>나 <맥 워리어> 같은 로봇 액션 형식으로 진행된다. 브리핑을 듣고 미션에 맞게끔 탑승 기체를 설정하고 필드에 나가 전투를 수행하면 된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간편한 조작과 빠른 진행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모빌슈츠를 이동시키면서 자동으로 조준되는 적들을 섬멸하면 된다. 끊임없이 적의 주위를 선회하면서 다른 적이 없나 레이더를 살피고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야하는 것이 관건. 중력과 장해물의 제한이 없는 우주전일 경우에는 지상전과 비교해 조작이 무척 달라지기 때문에 적과의 거리를 두는 것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브리핑 화면
게임 화면

사실적이고 정교한 조작을 요하는 다른 로봇 액션 게임들과 달리 깊이 있게 파고들만한 구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쉽게 질릴 여지도 없지 않다. 다행히도 다양한 특성을 가진 수십 종의 모빌슈츠가 그러한 약점을 보완해준다. 두어 종류의 무기만을 소지한 경량급 기체에서부터 일반 기종의 수배 크기에 해당하는 전함급 모빌아머까지 원작에 등장한 다양한 모빌슈츠들이 등장하며 그 쓰임새 또한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원거리 빔라이플 포격이 유리한가 하면 어떤 것은 빔샤벨을 이용한 단거리 격투전에 강하다. 무기들을 조합해 연속기를 쓸 수 있다는 점도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특히 원작 <Z 건담>에 등장하는 가변 모빌슈츠들은 이동시 변형을 통해 빠른 회피와 접근이 가능하며 변신하는 모습 역시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다. 탑승 캐릭터들이 전투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모습들도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는 새로이 ‘각성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원작에서 ‘뉴타입’이라 불리는 주인공들이 초인적인 전투 능력을 보인 것처럼 게임 속에서 일정시간 동안 평소 이상의 파워를 낼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이다. 그 외 TV 화면을 둘로 나눠 두 사람 이상이 즐길 수 있는 ‘대전 모드’, 다수의 적을 상대하며 기록을 세우는 ‘서바이벌’, 연습을 통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리플레이’ 등의 부가기능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게임에 빠져들게 하는 가장 큰 기능은 단연 ‘우주세기 모드’다.

Z 건담과 숙적 디오의 대결
화면분할로 2인용도 가능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게임은 우주세기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작과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설정 자료에는 전쟁의 시작에서 끝까지 상세한 연표와 기록들이 존재하는데, 이 게임에는 그것을 이용해 우주세기의 역사 속에서 주요 캐릭터들이 겪는 전투들을 시간대로 표시하여 진행하도록 해놓았다. 각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시기와 장소 그리고 그들이 마주치는 상황을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재현해 놓은 것이다. 탑승할 수 있는 모빌슈츠 또한 정해진 시간대에 제공되며 캐릭터의 죽음 역시 예정대로 이루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그 역사를 게이머가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사랑하던 연인이 전투 중 전사했던 것이 원작의 스토리라면 게이머의 실력으로 특정 조건을 완수해 그 연인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살아난 캐릭터가 역사의 흐름까지 바꿀 정도로 주요 인물이라면 다른 캐릭터에까지 영향을 미쳐, 원작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었던 상황까지 전개시킬 수 있다. 덕분에 ‘이 캐릭터가 이 모빌슈츠에 타면 어떨까?’, ‘이 캐릭터가 살아있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같은 흥미로운 가정을 실현시켜 원작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주세기 역사의 흐름
노력만 하면 ZZ 건담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분기로 이루어진 이러한 진행방식은 거듭된 반복 플레이와 집중을 요구한다. 게다가 달성도가 퍼센티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덧 의무감에 사로잡혀 지루하게 게임패드만 붙드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게임 제작자들은 그런 단점을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해두었는데, 그것은 바로 게임에 등장하는 각종 비주얼 아이템들을 따로 감상할 수 있는 기능인 ‘컬렉션’이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점수로 일러스트, 데모, BGM, 캐릭터, 모빌슈츠 등의 항목을 오픈시켜 언제든 보거나 들을 수 있도록 한 기능으로, 방대한 설정의 원작에 대한 사전적 구실도 하고 있다. 물론 이 또한 달성도가 있기 때문에 100%에 집착하는 게임 팬들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여타 게임과 비교할 때 그래픽은 대체로 우수한 편이다. 배경이 다소 빈약하게 묘사되어있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모빌슈츠들의 3D 모델링이 원작에 충실하여 만족감을 준다. PS2 게임으로서는 흔치않게 ‘프로그래시브 스캔’을 지원하여 HD급 TV에서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는 장점도 있다. 스테레오 사운드 역시 원작의 BGM과 효과음들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특정 미션에서 원작의 주제곡이 들릴 때는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게임 구성이나 그래픽, 사운드 모두 원작 팬들에게는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원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과 동시에 비 한글화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 모든 이에게 추천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즐겨봤던 게임 중에는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게임으로 자신 있게 추천한다. <기동전사 건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게임에 포함된 두터운 공략해설집과 함께 공부하는(?) 자세로 도전해본다면 잘 만든 캐릭터 상품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원제: Mobile Suit Gundam - Gundam vs. Z Gundam
장르: 팀 배틀 액션
플레이 인원수: 1~2인
기종: 플레이스테이션 2
배급사: 반다이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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