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와이 순지 감독 서면 인터뷰
2005-06-22
정리 : 김도훈
정리 : 문석
“일본은 좋은 나라지만, 숨막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와이 순지와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일본에서 신작을 구상 중인 탓인지, 서면 인터뷰를 응대하는 스타일이 원래 그래서인지, 답변은 놀랄 만큼 단출했다. 약간의 고민은 있었지만, 이 짧은 글에서 대표작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간간이 엿볼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이와이 순지의 답글을 그대로 싣는다.

-한국에서 당신의 영화가 뒤늦게 개봉하게 됐습니다. 늦었지만 당신의 영화가 개봉되는 것을 축하합니다. 이 ‘지나간’ 영화들을 볼 한국 관객에게 들려줄 말이 있습니까.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도 많이 기다렸습니다.

-<피크닉>과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다소 염세적인 세계관은 세기말의 전조를 느끼게 합니다. 세기말과 관련해 이 영화들을 만들 때의 감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 그걸 의식한 적은 없었습니다만, 당시에는 21세기를 맞아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왈로우테일…>은 당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영화의 발상은 어디에서 출발했습니까.

=예전에 <프라이드 드래곤피시>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작품의 세계관이 확장되어서 영화 <스왈로우테일…>이 되었습니다.

-<스왈로테일…>의 역설은 엔타운(円都)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 엔타운(円盜)들을 혐오한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와이 감독 자신의 일본사회에 대한 혐오 또는 비판 또는 아나키즘적인 반발심이 깃들어 있는 듯합니다.

=일본은 좋은 나라이지만 동시에 숨막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하나의 패턴으로만 되어 있는 듯합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해서, 전쟁으로 인해 받은 주변국가들의 아픔을 교과서 안에 있는 세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일찍이 ‘섬나라 근성’이라고 불러서 일부에선 경계해왔습니다만, 최근에는 이런 말도 사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스왈로테일…>에서 대사의 절반 이상을 영어로 사용한 것이나 외국인이 일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일본이란 무엇인가? 아시아는 무엇인가? 돈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러한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나 스스로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 이래 나비는 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꿈에 비유됩니다. <스왈로우테일…>의 나비도 이와 관련이 있나요.

=역시 꿈입니다. 엔타운이라고 하는 하나의 도시가 하나의 꿈…. 그런 느낌입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은 “내 유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뜻이었습니까.

=신작을 만들 때는 항상 ‘이것을 유작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릴리 슈슈…>에는 현재의 일본 청소년을 바라보는 감독의 일정한 시각이 보이는 듯합니다. 이지메 등 폭력 속에 살아가는 현재의 청소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본적으로 젊은이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와 같은 남자아이는 200년 뒤에도 존재하겠죠.

-<릴리 슈슈…>의 시나리오를 쓰는 게 쉽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릴리 슈슈>는 사실 영화화를 단념했었던 기획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발표했던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연재해가는 사이에 다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결과적으로 영화제작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인터넷에서 발표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제 컴퓨터 속에 있었죠.

-사이버 공간이라는 데 일종의 희망을 부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인해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항상 커뮤니케이션의 복원이 가능할지도 미지수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결코 낙관적이지는 않습니다만 어느 시대에도 애정을 갖고 바라보고 싶습니다.

-<릴리 슈슈…>에서 음악은 결정적입니다. 음악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영화화를 단념했을 때, 이미 고바야시 다케시와 <릴리 슈슈…>의 곡을 만들어놓은 상태였습니다. 고바야시 다케시의 설득이 없었더라면 인터넷 소설도 없었기 때문에 영화화되는 데 최대의 공헌자는 ‘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릴리 슈슈라는 존재와 에테르의 세계에 대해 약간이나마 설명을 부탁합니다.

=(<릴리 슈슈…>는) 그러한 ‘아티스트’와 그를 따르는 코어 팬의 모습을 제 나름대로 구현해본 것입니다. 인터넷 소설을 발표했을 때 에테르라는 말의 정의는 특별해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독자들이 확대시켜준 것입니다. 마치 그 말이 처음부터 그런 의미였던 것같이…. 신비로운 현상이었습니다.

-<릴리 슈슈…>의 경우 소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매우 고통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듯 보입니다. 당신의 소년기는 어떤 식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까.

=괴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천에서 태어났다면 그것이 그들의 세계이고, 유빙(流氷) 위에서 태어났다면 그것이 그들의 세계입니다. 그것을 참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괴롭다고 하는 것은 성인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란 기본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에….

-당신만큼 일본의 동시대 영화들로부터 떨어져서 일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영화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시나리오에서 영화 편집까지 직접 해내는 1인 체제는 앞으로도 계속 고집할 생각인지요.

=대학 시절, 독립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제 주변에는 저 이외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환경은 프로가 되어서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참고 가능한 정보가 없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먼길을 돌아가게 만드는데, 저에게는 그것이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었습니다. 현재의 작업방식은 앞으로 그다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편집은 물론이고, 영화감독은 각본을 쓸 줄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다른 이의 원작을 연출한다고 해도, 그 책을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은 이야기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영화는 아주 세밀한 ‘순간’들을 담아내면서 인물의 감정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이 있습니다. 스피드를 순간적으로 조절한다거나 카메라 노출과 필터의 사용을 넘나든다거나 하면서. 촬영시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주 철저하게 준비된 콘티에서 나오는 힘입니까.

=개인적으로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장면이 성공이었고 실패였는지는 비밀입니다만, 어느 날 갑자기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역시 매일같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은 스포츠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축구경기를 매일 보더라도 월드컵에 나가서 활약할 수는 없겠죠.

-특히 <릴리 슈슈…>와 <하나와 앨리스>에서 그러하지만, 당신의 영화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빛’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인공적인 조명을 많이 쓰나요, 아니면 당신이 원하는 빛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나요.

=인공적으로 조명을 만들 때는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보여주자고 하다가 결국 평범한 조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외로 자연광을 이용하는 쪽이 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습니다. 눈에 띄는 장면들은 대부분 진짜 태양광선에 의한 경우입니다.

-당신의 페르소나는 여자아이들입니다. 당신 작품들 속의 여자아이들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마술 같은 매력을 발산합니다. 여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하며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건 무엇입니까.

=본질적으로 그러한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을 고른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감독의 작품을 보고, 내가 왜 이런 여배우를 선택한 걸까라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필름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차별적이고 잔혹합니다.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 작업의 차이점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제가 알고 있는 한, 아직 디지털 시스템이 필름을 넘어서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이용방법에 따라 꽤 근접해 있습니다. 앞으로는, 결국 지금의 필름 시스템을 넘어서는 시대가 오겠죠. 그러나, 영화 필름을 넘어선다고 해도 필름보다 더 상위에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진의 세계입니다. 디지털은 다음으로 이 (사진)방면에 도전하여, 그것을 영화에 흡수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영화계는 70mm라고 하는 고화질 필름을 개발했음에도 그것을 범용화시키지 못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필름 시스템에서 이것을 실현시키는 건 무리겠죠. 디지털이라면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인 우리가 디지털 장비를 만드는 회사들에 계속 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 같이, 만들어주세요, 라고 요구합시다

-<러브레터> <스왈로우테일…> <4월 이야기> <릴리 슈슈…> <하나와 앨리스>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강약을 반복해온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은 강하고 다소 어둡고 무거운 영화가 나올 차례인 셈인데,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그것은 비밀입니다.

사진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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