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의 친구들은 엉망진창이다. 로나는 천연덕스럽게 아스피린을 환각제로 속여팔아 엄청난 매상을 올리고, 사이몬 패거리는 고급 스포츠카를 훔치고 살인 미수를 저지르고 호텔에 불을 낸다. 순둥이로 보이는 클레어는 거칠고 막돼먹은 마약 딜러와 사랑에 빠진다. 그래도 이 아이들을 어찌 할 것인가, 하고 걱정할 건 없다. 벼랑 끝을 향해 무모하게 질주하는 것 같지만 이들 누구도 죽지 않고 누구의 영혼도 망가지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전야를 보낼 따름이다. 아직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이들에겐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 치명적이긴 하지만 그 가능성이야말로 젊음의 매력이다. 다시 아침이 돌아오면 이들은 멀쩡하게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진짜로 걱정스러운 건 오히려 안팎이 다른 ‘어른’ 버크다. 법과 제도를 상징하는 경찰 버크는 아담과 잭을 끄나풀 삼아 마약파는 아이들을 소탕하려 하지만, 정작 그는 불법인 피라미드 판매로 치부하려는 인물이다. 위선덩어리인 버크에 견주면 총질하고 마약하는 아이들은 차라리 순진하고 솔직하다.
덕 라이먼 감독은 이 아이들을 쿠엔틴 타란티노의 세계 안에 풀어놓고 마음껏 찧고 까불게 한다. <펄프 픽션>처럼 <GO>는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세 갈래로 쪼갠다. 각 에피소드가 던져놓은 상황들을 잘 짜맞추어야 이야기의 전말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아담과 잭은 잠깐 출연하지만, 세 번째에 가면 성정체성을 포함해 그들의 존재 전체가 드러난다. 또한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풀어놓는 바람에 세 가지 에피소드를 모조리 보아야 그 사건의 앞뒤좌우를 온전히 알 수 있다. 감독은 잉여분이 없어보일 만큼 정교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붙였다 한다. 또한 에피소드마다 두서넛의 주요 인물을 등장시키지만 누구 하나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GO>가 이 모양이 된 데는 27살의 시나리오 작가 존 어거스트 친구들의 잔소리 탓이 크다. 원래 존 어거스트는 LA 선셋대로에 있는 식료품점 점원에게 영감을 얻어 <X>라는 단편영화의 대본을 썼던 것인데, 대본을 본 친구들이 “사이몬은 누구고 왜 라스베이거스에 갔느냐” “경찰에 아담과 잭은 어떤 존재냐”하고 따지는 통에 이야기의 몸짓을 부풀려야 했다.
따라서 덕 라이먼 감독이 고전적인 이야기체 영화의 전통에 도전하기 위해 자의식적으로 내러티브를 해체한 것 같지는 않다. 그를 모자이크판으로 이끈 건 모더니스트의 야심이 아니라 유희 정신이었다. 6살 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94년 <게팅 인>으로 데뷔한 그는 이 세 번째 영화에서 아이들과 함께 젊음의 혈기를 만끽한다. 유희에 대한 숭배야말로 Y세대의 시대정신이다. 슬래커 무비인 <스윙거즈>(1996)에서도 그는 게으름뱅이들의 빈둥거림과 느림을 함께 누렸다. 라이먼은 “<GO>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무모한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동시에 긍정적이다. 그것이 바로 젊음이다. 난 영화 전체를 무모함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건 아주 쉬웠다. 왜냐하면 내 인생 자체의 에너지 자체가 바로 무모함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즐겁게 하기 위해 그는 막판에 갑자기 이야기를 비틀기도 한다. 형사 버크 부부가 아담과 잭에게 던지는 끈끈하고 음란한 눈길은 알고보면, 이들을 피라미드 판매조직에 끌어들이기 위한 유치한 술수였다는 식이다.
요즘 미국 10대들의 삶읽기이기도 한 <GO>에는 미국 청춘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영화에서 이들은 총질하고 마약하고 섹스하고 도박하고 도주하길 꿈꾸는, 보통 10대들의 ‘탈주의 욕망’을 판타지로 재현한다. 라이먼 감독이 “청춘 관객은 스크린에서 자기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그건 파티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는 것과 진배없다”라고 말한 대로다. 또한 테크노에서 힙합을 종횡무진하는 음악들이 이 아이들의 뜀박질에 행진곡을 울려주며 혼성 얼터너티브 록그룹 노 다웃이 주제곡을 불렀다.
<GO>의 청춘스타들
젊은 그들, 연기엔 국경도 없다
청춘 코미디 영화 <GO>에는 우리에게 낯선, 하지만 미국 10대들에게는 익숙한 얼굴들이 즐비하다. 우선 케이티 홈스와 스콧 울프는 TV드라마에서의 성공을 밑거름으로 영화로 진출한 배우들. 최근 미국에서 청춘스타들이 탄생하는 전형적인 경로를 거친 셈이다. 케이티 홈스는 국내 케이블TV에서 방영을 시작한 <도슨의 청춘일기>에서 감옥에 간 아버지, 혼전에 임신한 문제아 언니를 둔 불행한 가정의 소녀 조이로 출연했다. 스콧 울프는 네브 캠벨을 배출한, 에미상 수상의 험난한 가족드라마 <파티 오브 파이브>에서 불과 18살에 아버지의 레스토랑을 물려받아 경영하는 둘째아들로 나왔으며, 리들리 스콧의 <화이트 스콜>에서 남성의 가치를 배우기 위해 항해에 나선 소년들 중 하나로 출연했다.
사라 폴리와 데스먼드 애스큐는 <GO>를 위해 국경을 넘었다. 창백한 얼굴빛과 날카로운 눈빛, 움푹 팬 볼이 인상적인 사라 폴리는 아톰 에고이얀의 <엑조티카> <달콤한 내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엑시스텐즈>의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덕 라이먼 감독의 설득으로 끔찍하게만 여기던 할리우드에서 2개월을 살아냈다. 데스먼드 애스큐는 영국 런던의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익혔으며 <GO>로 미국영화 신고식을 치렀다.
<스몰 솔져> <수어싸이드 킹>에 출연한 제이 모어는 지난해 화제가 됐던 또다른 청춘영화 <200개비의 담배>에도 출연했다. 환각제에 취해 밤새도록 쓰레기더미에 처박혀 있던 로나의 친구 매니를 그려낸 네이선 벡스톤은 그렉 아라키의 <노웨어>에 나왔으며, 풀린 눈을 한 마약 딜러 토드 게인즈로는 <스크림2> 출신의 티모시 올러펀트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