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큰가족>은 아버지의 50억원의 유산을 노리고 가족들이 벌이는 통일 자작극에서 출발한다. 통일이 되면 아버지 김 노인(신구)의 유산 50억원은 가족에게 분배될 것이고, 통일이 되지 않으면 거액의 유산은 통일부로 넘어간다. 빚에 쪼들리는 큰아들 명석(감우성)에게 이 ‘시츄에이션’은 일확천금의 기회이자 절체절명의 위기다. <간큰가족>이 웃기기 위해 만든 가상의 ‘시츄에이션’을 보면서 현실의 ‘시츄에이션’이 겹쳐졌다. 정말 이 시대의 통일이란 (최소한 남한 사람들에게) ‘연극’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히도, 아버지의 유산으로 상징되듯이 ‘돈’이 통일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어버렸다. 통일 자작극에 제작비를 대고 투자비의 두배를 받아내려는 사채업자 상무(성지루)는 통일 자작극의 돈 떨어진 제작자, 명석에게 위협하듯 말한다. “돈 없으면 통일이고 나발이고 못해!” 이 사실은 가짜 통일뿐 아니라 진짜 통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간큰가족>은 돈만이 유일한 통일의 동기가 되는 시대에 대한 (의도치 않은) 풍자다.
그대, 진정 통일을 원하는가
통일 자작극에는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만이 몰입한다. 아버지의 유산을 직접 분배받을 자식들은 목숨 걸고 뛰어든다. 돈을 노리는 그들의 행동은 매우 가식적이다. 남편의 유산을 직접 상속받지는 않는 김 노인(신구)의 부인(김수미)은 덜 가식적이다. 그는 이따금 “통일을 하든, 통닭을 마음대로 해”라며 자작극을 귀찮아한다. 오직 ‘사심’없는 사람들만이 ‘진실’을 말한다. 김 노인이 사는 마을이 평화통일 시범지구로 지정됐으니 통일된 것처럼 행동해 달라는 마을 동장의 제안에 주민들은 “우리에게도 뭔가 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연극을 할 것 아니냐”고 말한다. 가장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사람에게는 1천만원의 포상금이 주어진다는 동기가 부여되고서야 통일 연극은 지속된다. 동네 주민들은 포상금을 위해서 자작극에 동참한다. 아니 경쟁한다. 유일하게 ‘분위기’를 깨는 사람은 ‘사심’없는 어린아이다. 동네 아이는 김 노인 앞에서 “저는 통일에 관심이 없어요. 통일이 싫어요”라고 폭로해버린다. 반통일적 발언이 현실감을 얻는 현실이다.
“너희들한테 통일이 뭐 대수겠느냐마는…,”
영화의 마지막에 김 노인이 한숨처럼 내뱉는 대사다.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 아니라, 자신의 소원이었던 것을. 아버지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우리의 소원도 통일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시대다. 그래서 통일을 가지고 놀면 재미가 있지만, 통일로 눈물을 짜내려면 재미가 반감된다. <간큰가족>이 웃기기를 중단하고, 감동을 짜내려는 순간, 영화는 지루해진다. 50억원을 노리는 통일 자작극에서 갑자기 가족애를 내세우는 가족드라마로 가는 순간, 혼돈이 시작된다. 도통 캐릭터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돈을 노리던 사채업자가, 아무 생각없던 여배우(신이)가 왜 감동에 겨워 통일 자작극에 적극 동참하게 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통일의 당위와 감동만으로 그들의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힘이 달린다. 가족들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통일 자작극이 수포로 돌아가고 이산가족 상봉마저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둘째아들 명규(김수로)는 “우리 누나 얼굴이나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라며 갑작스레 가족사랑의 멘트를 내뱉는다. 이 말도 ‘뜬금없는 진심’처럼 들린다. 통일에 대한 시대의 심사는 복잡하다. 현실은 냉정하지만, 감동도 식지 않았다. <간큰가족>은 통일에 대한 우리의 복잡한 심사를 반영하듯, 냉정한 현실과 통일의 당위 사이에서 헤맨다. <간큰가족>은 재미 반, 감동 반의 행복한 결합에 이르지 못한다. 영화의 만듦새도 문제겠지만, 통일을 감동 코드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시대 탓이기도 하다.
통일의 가장 큰 적은 누구?
<간큰가족>은 통일을 둘러싼 다른 시추에이션도 들어 있다. 아버지의 통일은 감상적 통일이다. 남북화해를 도모하는 국가권력에 감상적 통일은 여전히 달갑지 않은 것이다. 국가권력은 감상적 통일을 경계하는, 통일 자작극의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다. <간큰가족>에서 경찰은 어설프게 통일 자작극을 방해하고, 국정원은 단호하게 통일 자작극을 중단시킨다. 어쩌면 우리시대 통일은 <간큰가족>에서처럼 스무살 차이가 나는 남북한의 이복남매가 만나는 것처럼, 어색하고 서먹한 시추에이션이다. 이 당황스러운 ‘시츄에이션’은 코미디가 아니면, 즐기기가 좀처럼 어렵다.
추신. <간큰가족>은 북한 풍물의 종합 전시장이다. 영화에는 남북교류 과정에서 익숙해진 북한의 풍물들이 죄다 들어 있다.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은 기본이다. 남한에 들아와 있는 북한의 풍물들도 모두 모았다. 음식은 옥류관 ‘주점’, 문화는 평양교예단, 스포츠는 남북탁구단일팀, 우리시대 통일 풍물의 ‘대명사’들이다. 영화는 세심하게도, <반갑습니다>로 시작해서 <다시 만나요>로 끝나는 북한의 대남 공식가요도 빼놓지 않고 틀어준다. 한상 가득 풍물들을 올려놓고, 프란체스카식으로 말한다. 즐겨! 맘껏. 즐기기엔 약간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