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고전 속에 빛나는 새 세기의 시선, 뤽 베송의 <잔 다르크>
2000-03-07
글 : 이상용 (영화평론가)
네명의 감독, 네명의 잔 다르크

잔 다르크는 거대한 하나의 유혹이다. 15세기 이래로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수정되고, 문학이 되고, 영화가 되고, 심지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프랑스 밖의 이방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28년 덴마크의 칼 드레이어는 <잔 다르크의 열정>을 완성했다.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영웅을 가로챘다고 분개했지만 이 영화는 곧 드레이어의 대표작이 됐다. 당대의 이론가인 루돌프 아른하임은 이 영화를 가리켜 “재판정은 초상화의 전시장”이 아니라며 클로즈업의 남발을 비판했지만, 감독은 자신이 매혹된 세계를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기를 원했다. 스스로 명명한 ‘현실화된 신비주의’는 매혹의 이중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세속과 구원 사이에 놓여 있는 ‘잔’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하지만 도저히 현실의 카메라로 접근할 수 없다는 드레이어의 판단은 온통 클로즈업으로 가득 찬 화면을 만들어놓았다. 이러한 특성은 이후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흡혈귀> <오데트> <분노의 날>에서 드레이어가 즐겨 다룬 것은 정체성의 혼란이다. 그는 마치 흡혈귀처럼 현실적인 존재이면서도, 초월적인 존재의 모습을 일찍이 잔으로부터 발견하였다.

그리고 61년이 돼서야 우리는 드레이어에 비견할 만한 잔을 만난다. 브레송의 <잔 다르크의 재판>은 영화제목에 걸맞게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짧은 분량 동안 ‘재판’의 과정만을 충실하게 다룬다. 미니멀리즘적인 그의 영화적 특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재판과정은 법정과 감옥, 그리고 질문과 답변으로만 들어찰 정도다.

물론 이전에도 잔 다르크를 추앙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그 중에서도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성 잔 다르크>(1957)는 잔을 주인공으로 한 최악의 영화로 꼽힌다. 오토 프레밍거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토 프레밍거는 하나의 유혹에 빠졌는데, 그것은 재판정에서 잔의 행동을 분석하고 싶었던 것이다. 드레이어와 브레송은 ‘재판’과정 이외의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정체성에 관한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프레밍거는 잔의 어린 시절을 보고 싶어했다. 그 결과는 최악의 잔다르크 영화라는 냉혹한 대가였다.

역사에 도전하다, 자크 리베트

60년대 당시 영화감독이기보다는 평론가로 더 명성을 날리던 자크 리베트는 오토 프레밍거와 브레송 영화를 보고 <카이에 뒤 시네마>에 하나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은 리베트야말로 잔에게 매혹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감독으로서 그녀와 만난 것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93년 일이다. 리베트는 지금까지 잔을 다룬 영화들이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한 것, 특히 재판 이외의 과정을 다루고 싶었다. 유일하게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된 <잔 다르크>(원제는 <잔느, 성처녀>, 분도시청각 출시)는 160분의 전쟁편과 176분의 감옥편 2권에 담겨 있다. 이 장구한 시간 속에서 리베트가 집중한 것은 이전의 영화들이 발견해내지 못한 역사의 파편들이다. 그것은 이야기로서의 영화와 영화가 다루는 역사와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인데, 끊임없이 자막으로 제시되는 장소와 연대기, 서류를 정리하는 잔의 세심한 동작들은 리베트가 영화가 아니라 역사를 쓰고 싶었음을 암시한다. 나아가 리베트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엮을 수 있는 상황들도 잔의 눈과 입을 통해 간결하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마무리한다. 재판정에서, 화형장에서 대중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역사가 아니다.

잔을 다룬 걸작으로 꼽히는 두 영화를 만든 드레이어와 브레송이 스타일을 통해 잔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바로 역사화된 잔을 피해가기 위함이다. 잔 다르크에 관한 문헌은 홍수처럼 넘치지만,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에두아르 페루아의 진언처럼, 그녀를 역사로 되살린다는 것은 무모한 계획이다. 시선과 영화적 스타일만을 통해 그녀가 고민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전할 수 있다. 비록 클로즈업과 미디엄숏이라는 다른 정조의 화면구도를 선택했지만 그럼에도 드레이어와 브레송이 유사한 것은 스타일을 통해 잔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리베트 또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배들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90년대라는 새로운 영화의 시대를 어떤 식으로든 반영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일부러 전쟁과 감옥이라는 두 가지 시기와 두 가지 양식을 혼합했고, 우리는 잔을 바라보는 상이한 두 가지 시선을 한 영화를 통해 경험하게 된다. 그는 잔 다르크라는 정체성은 혼란인 동시에 매혹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잔의 더 많은 것을 다루고 싶다는 유혹 때문에 재판정에서 벗어났다. 결과적으로 스케일은 크지만 스펙터클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동시에 스타일에 치우치지도 않는 그야말로 리베트적인 영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조금 단순화해 정리하자면 드레이어의 클로즈업, 브레송의 미디엄숏 그리고 리베트의 독특한 서사양식이 잔을 역사로부터 구원해내어 영화라는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정을 벗어난 리베트조차 다루기를 두려워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일찍이 오토 프레밍거가 저지른 실수였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오묘해서, 잔의 유년 시절이라는 과제를,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무렵, 할리우드가 아닌 뤽 베송이라는 프랑스 감독을 통해 만나게 된다.

뤽 베송, 새로운 잔 다르크

한때는 그의 아내였던 밀라 요보비치를 내세운 이 영화는 가장 평범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것은 여지껏 프랑스 선배감독들이 두려워했던 모든 것, 즉 잔의 일생을 완전하게 담아보자는 것이다. 출발점에서부터 뤽 베송은 할리우드의 프레밍거와 닮아 있다. 뤽 베송은 잔에 관한 정본으로 여겨지는 쥘 키세라의 <잔 다르크의 유죄 판결과 복권과정>이라는 5권의 방대한 도서를 비교적 꼼꼼히 인용해낸다(여기에는 잔의 언니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역사와 전설 사이를 오가는 많은 에피소드를 과감하게 재현해낸다. 뤽 베송의 <잔 다르크>가 초반부에서 그렇게도 힘이 넘치는 것은 바로 과감한 선택에 있다. 재판이 일어나기 전까지 뤽 베송의 영화는 그 어떤 감독들도 보여주지 못한 잔의 초상을 그려낸다. 그것은 종교적 열정과 광기에 사로잡힌 한 여인의 초상이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면,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무기력과 혼란에 빠지고 만다. 거기에다 신인지 신의 사자인지 모를 더스틴 호프먼의 등장이 가세하면, 재판정은 정신분석을 위한 심판대로 뒤바뀐다. 뤽 베송의 잔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고, 분열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드레이어나 브레송 그리고 심지어는 리베트의 잔이 분열증을 초월하는 데 반해서 말이다.

배우의 분열증. 드레이어나 브레송이 굳이 스타일을 고집한 것은 바로 배우에게 분열증을 전가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드레이어의 작품에서 무언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프랑스 여배우 팔코네티는 분열증보다는 황홀경에 가까운 모습이다. 재판정을 주로 담은 브레송 역시 이 작품 속에서 흔히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서 차용하는 숏과 반응숏의 매치 컷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은 재판관들에게 시선을 부여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잔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 혹은 그 어떤 존재가 된다. 그러나 뤽 베송의 영화에서 잔은 끊임없이 신 혹은 신의 대리인으로부터 질문과 답변을 강요받는다. 뤽 베송은 답변 하나를 구상하는데, 그것은 미혹하게나마 기록으로 남아 있는 언니의 죽음이었다.

물론 그는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잔 다르크>는 그 누구보다도 여배우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드레이어의 팔코네티, 프레밍거의 진 세버그, 빅터 플레밍의 잉그리드 버그만, 리베트의 산드린 보네트 그리고 요보비치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같은 잔을 연기한 적은 없다. 영화를 통한 잔 다르크의 가장 큰 매력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데, 뤽 베송 역시 분열증에 시달리는 인간적인 잔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모한 듯 보이는 그의 기획은 좀더 다른 맥락에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바그너적 비전, 혹은 철 지난 후기 낭만주의

코츠는 영화를 낭만주의적인 꿈과 산업의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영화를 통해 바그너의 예술관이 성취된 것이다. <니벨룽겐의 반지>와 같은 바그너의 성취는 곧 독일 표현주의와 할리우드에 의해 선택됐는데, 대서사시 속에 인간의 모든 생애를 담으려고 하는 것은 예술을 행하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의 스펙터클이 된 낭만주의적 비전은 인간을 인간 이상의 것으로 담아낸다.

이미 <제5원소>에서 우주 활극이라는 순진한 스펙터클로 자신의 이상을 드러낸 뤽 베송이 프랑스의 영웅인 잔의 일대기를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사랑이 제5원소라고 주장하는 순진함만큼, 언니의 죽음이 잔에게 ‘메신저’의 사명을 부여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리베트처럼 명확히 나뉘어 있지는 않지만 분열적으로 제시된 전투 장면과 재판 장면은 영화문법의 모든 것을 차용하고 있으며, 유년 시절에서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인과율로 명확히 다루어낸다. 이러한 선택은 뤽 베송의 잔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문화적 인물로 만들었다(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여기에 뤽 베송의 놀라움이 있다. 그는 미국적인 방식이든 혹은 독일의 유산을 되살려내는 방식이든 프랑스의 영화적 전통을 과감하게 거스른다. 아마도 그 점에서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가장 멀리 나간 프랑스의 영웅일 것이다. 잔 다르크의 역사 위에서 이 영화를 주목할 만한 유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도 인간도, 역사도 전설도 아닌 존재를 그는 과감하게 인간화하고, 고통받는 영웅으로 서사시에 집어넣는다. 그로 인해 뤽 베송의 잔은 설명되는 존재지만, 그러나 오히려 전설에 가까운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에 반해 선배감독들은 항상 잔을 대하는 태도를 조심스러워했다. 누군가가 <잔 다르크의 재판>이 완성된 뒤 브레송에게 당신의 영화가 영웅의 존재와 영향력을 설명하는 데 기여했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위대한 것은 설명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 위대함을 따라갈 뿐이죠.” 그 대답은 브레송의 영화가 더 위대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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