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사랑은 말없이 도화지에 그리세요, <새드무비> 촬영현장
2005-07-04
글 : 문석
사진 : 조석환
네 커플의 사랑 이야기 <새드무비> 이기우-신민아 커플편 촬영현장

불꽃놀이가 끝난 놀이공원의 밤은 적막하다. 아니 을씨년스럽다. 손님들을 떠나보낸 뒤 쓸쓸히 휴식을 취하는 회전목마와 관람차, 그리고 분수대를 지나치자 몇 시간 전까지 밝은 불을 뿜어내며 자랑스레 광장을 휘젓던 퍼레이드카들이 대형 충전기 옆에 붙어서 내일의 에너지를 채우고 있다. 이 퍼레이드카들의 옆구리 사이로 환한 빛이 튀어나오고 있으니 필시 여기가 촬영장이렷다.

6월20일 밤 10시30분, 용인 에버랜드의 퍼레이드카 창고 안에서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이 영화의 제목은 <새드무비>다. 네 커플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오밀조밀 엮어내는 영화이다보니 커플별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의 커플은 이기우와 신민아. 현장에서 사용되는 레저용 의자에 긴 몸을 접어넣은 채 콘티를 들여다보는 이가 이기우고, 즉석에서 천막으로 만들어진 피팅룸 안에서 가녀린 실루엣만 보여주는 이는 신민아다. <새드무비>에서 신민아는 백설공주 탈을 뒤집어쓰고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공연단원 수은을, 이기우는 놀이공원에서 손님들에게 캐리커처 그림을 그려주는 아르바이트생 상규를 연기한다. 둘은 계속 마주쳐왔지만, 항상 수은이 탈을 뒤집어쓴 상태였기 때문에 상규는 수은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한다. 이날 촬영분은 그러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해 대화를 나누고 초상화를 그리는 장면이다.

권종관 감독

마침내, 11시50분이 되자 첫 번째 컷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촬영장은 고요하다. 모두들 30도 가까운 끈적후끈한 대기 안에서 낮 촬영을 마친 탓이기도 할 것이고, 수은이 청각장애자인 탓에 이기우만 대사를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참, 우리 서로 이름도 말 안 했네. 이름이 뭐예요?” 초상화를 그리던 이기우의 질문에 신민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만 짓는다. 그리고 휴대폰에 문자로 이름을 찍어 보여준다. ‘수은.’ 촬영은 순조로운 듯 보인다. 그럼에도 권종관 감독은 모니터 앞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배우들 곁이나 카메라 옆에서 촬영을 지켜본다. 다음날 동이 트기 전까지 19컷이라는 할당량을 모두 찍어야 하는 탓이리라. 이들이 촬영도구를 접을 때쯤이면 놀이공원은 슬슬 기지개를 켜며 새로운 날을 시작할 채비를 할 거다.

이날로 37회차를 마친 <새드무비>는 60% 정도를 촬영한 상태. 정우성-임수정, 차태현-손태영 커플의 분량은 거의 끝났고 이기우-신민아 커플의 촬영은 6월 말까지 끝내게 된다. 염정아, 여진구의 엄마와 아들 이야기만 남게 되는 것. 제목처럼 사랑과 이별에 관한 슬픈 영화지만, “눈물이 나더라도 맑은 날의 여우비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는 권종관 감독은 “이별이 주는 느낌 중에는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지만, 여기서는 관객 모두가 공감하는 추억으로 담으려 한다”고 밝혔다. <새드무비>는 7월 중 촬영을 마치고 가을 개봉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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