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한달 용돈을 털어 바바리를 사입고, <첩혈쌍웅>
2000-02-29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어떤 영화로 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제의를 받는 순간부터 한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쫙 펼쳐졌기 때문이다. 바로 주윤발의 <첩혈쌍웅>이다. 수백편의 영화 가운데 내 인생의 영화를 주저없이 꼽을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영화감독으로서 나는 행운아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것이 내가 영화를 업으로 삼은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주인공의 인생을 끊임없이 동경해왔다면 말이다.

지금부터 나는 어쩌면 개인적인 고백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평범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고 오해(?) 받을 수 있을 텐데 괜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80년대 중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들어간 연극영화과. 그곳의 강의실에서는 어렵고 지루한 영화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교수님과 선배들이 훌륭하다고 칭송하는 <시민케인>을 보고, 불행히도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아무리 학점이 눈앞에 왔다갔다 한들 재미없는 강의를 재미있어죽겠다는 얼굴로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재빨리 머릿속을 정리했다. 단적으로 <시민케인>류는 내가 만들고 싶은 진정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일단 나는 강의실 밖의 영화에 더 관심을 가졌다.

저렴한 가격에 한 영화를 여러 번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나는 주로 변두리 동시상영 극장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어둡고 칙칙한 냄새가 나는 그곳에서 주윤발을 만났다. 영화 속 음침한 뒷골목 같은 그런 영화관이었다.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이 눈에 익어갈 무렵 <영웅본색>을 보고 <첩혈쌍웅>을 보았다. 지금에야 이들 영화가 ‘홍콩누아르’라는 계보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 무협 영화와 다른 새로운 홍콩영화로 관객에게 다가설 때였다.

탁한 붉은 빛을 뒤로 하고 깃을 세운 바바리에 담배를 문 입, 우수에 젖은 눈동자. 새하얀 양복 위에 걸친 머플러. 그 양복에 번지는 검붉은 핏자국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옥죄었다. 그는 꼭 늦은 저녁 노을지는 항구에서 담배를 피워물었고 담배연기를 오래오래 그려올렸다. 총을 다루는 방법도 특이했다. 서양배우들처럼 좀스럽게 한개의 총에 만족하지 않았다. 양손으로 악당들을 응징했다. 그 모습이 슬로모션으로 처리되는 것을 보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매번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 나는 영화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곧 영화 속 주윤발의 모든 것은 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한달 용돈을 털어 발목까지 오는 바바리를 사입었으며(그것도 삼복더위에…), 성냥을 입에 무는 기술은 꽤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들여 마스터했던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날씨에 상관없이 많은 ‘싸나이’들이 바바리를 입고 짙은 색 선글라스를 끼고 이를 쑤시며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첩혈쌍웅>과 더불어 <영웅본색> <영웅본색2>도 그 맥을 같이했다. 검은 바바리를 입고 거리낌없이 위조지폐 따위에 담뱃불을 붙이는 주윤발, 그리고 미소년 장국영의 그 눈빛은 가슴마저 시리게 만들었다. 이들 ‘홍콩누아르’의 3총사는 금세 ‘싸나이’와 블랙의 이미지에 강렬한 총격전이 보태져 액션 영화의 전형을 이루었다. 그들은 대사도 길게 내뱉지 않는다. 평소 입 안에서 우물우물 한다고 생각했던 중국어가 그렇게 힘있는 언어라고 느껴진 것도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집을 나설 때마다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젊은이가 되었다. 바바리 코트에 이쑤시개에 선글라스에 라이터에 담배에…. 그리고 나는 그들처럼 어색한 저음들을 만들어갔다. 따꺼… 워 쓸러….

그 시절 무엇이 나를 그토록 미치게 했을까? 사실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의 주윤발이 연기한 영웅의 모습은 어지러운 80년대 후반 우리의 감성이 원하는 딱 그 모습이었다. 007 시리즈의 본드처럼 완벽한 사격 솜씨를 자랑하는 것은 기본. 거기에 인간적 고뇌와 여린 감성을 지녔으며, ‘영웅은 죽지 않는다’는 철저한 믿음을 깨고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죽어 우리의 눈물샘까지 자극했다.

어디 주윤발뿐인가. 주윤발이 음지에 근거한 ‘감성적인’ 영웅이었다면, <첩혈쌍웅>에 등장하는 형사 이수현은 양지에 자리잡은 ‘건강한’ 영웅이었다. 그는 형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순수한 ‘의리’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두 영웅의 감성을 꿰뚫는 키워드는 바로 ‘고독’. 그들은 서로에게 ‘영웅’으로서의 고독을 읽는다.

그리고 <첩혈쌍웅>의 최대 압권인 성당에서의 마지막 총격전. 성당을 꽉 채운 수천개의 촛불 속, 그들은 ‘죽음’에서조차 고독을 여지없이 배출한다. 훗날 오우삼이 할리우드로 건너가 만든 액션 대작 <페이스 오프>의 대결장면이 마치 <첩혈쌍웅>의 아류처럼 왜소하게 보이는 것도 그때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느 시대나 ‘뜨는’ 캐릭터가 있다. 일반인과 다른 카리스마를 가졌으나 기본적인 생각은 매우 단순한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영화를 만들 때는 주인공의 캐릭터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주유소 습격사건>만 해도 그렇다. 4명의 주인공 모두 매우 극단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무대포는 매우 단순무식하고, 노마크는 카리스마적이며, 딴따라는 신경질적이고 뻬인트는 여린 감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사실 네명의 캐릭터를 개개인의 것으로 파악할 필요는 없다. 그들을 하나로 합치면 평범한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내면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재미있는 캐릭터라도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내면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그것이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내 지론을 표현한다. <첩혈쌍웅>의 영웅 주윤발이 비현실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바로 이 평범한 코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최근 주윤발의 영화 <애나 앤드 킹>을 보았다. 이제는 나도 대학 시절의 어설픈 ‘싸나이’가 아닌 어느덧 네 작품을 끝낸 중견 영화감독으로서. 궁전의 화려한 기둥장식과 여배우의 그늘에 가려 작아만 보이는 그의 모습에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극장문을 나섰다.

글: 김상진/ 영화감독·<투캅스3> <주유소 습격사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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