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광활함 안의 폐쇄성, 과잉 안의 결핍, <배트맨 비긴즈>
2005-07-06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세계의 과도기 보여주는 <배트맨 비긴즈>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세계는 음울하다. 도식적인 기승전결의 구조가 선사하는 쾌락을 그의 영화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호기심에서 긴장으로, 긴장에서 짜릿함으로 이어지는 스릴러의 기본 줄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 모든 것을 진공 상태로 만드는 기묘한 기운이 존재한다. <메멘토>와 <인썸니아>가 시종일관 뿜어내던 우울한 가스는 영화 속 반전의 충격을 녹여버리곤 했다. 이를테면, 그의 영화에서는 복잡한 실타래가 풀려 마침내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에도 아무런 쾌감이 밀려오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터 줄곧 영화 전체를 꽉 메우던, 멀미가 날 것 같은 기운이 여전히 포화상태로 영화 끝까지 숨을 짓누를 뿐이다. 그 기운은 기발하고 탄탄한 내러티브나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만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분위기, 말하자면 ‘놀란표’ 아우라였다. 그러므로 다섯 번째 <배트맨> 시리즈의 감독으로 놀란이 선택된 것은 꽤 시의적절해 보인다. 캐릭터와 내러티브적 측면에서 이미 네번의 다양한 실험을 거치고 위기에 빠진 배트맨은 이제 무엇으로 구원될 것인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는 그의 전작들에 비해 한층 화려하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바탕에는 놀란 고유의 색채가 곳곳에 배여 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배트맨은 ‘놀란적’ 세계 속에 존재하는 단독자로 재탄생한다.

과잉 속의 결핍 보여주는 놀란식 스펙터클

그의 공간은 언제나 황량하다. 인간의 온기가 부재한 그의 공간들에는 이야기와 관계없는 영화적 흐름이 있다. <메멘토>에서 그것이 주인공이 전전하던 어둡고 획일적인 모텔 방들로 형상화되었다면, <인썸니아>와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그 공간이 좀더 초자연적으로 확장된다. 알래스카의 거대한 강줄기와 눈덮인 산맥, 그리고 히말라야와 고담시의 빌딩 숲에서는 인간과 분리되어 홀로 존재하는 웅장하면서도 공허한 침묵의 울림이 퍼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광활한 공간들에서 풍겨져나오는 폐쇄성이다. <메멘토>의 주인공이 모텔 방에서 낯선 이와 전화하며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줄곧 흑백으로 처리되어 영화 중간중간, 신과 신의 흐름을 끊는다. 비연속적으로 삽입되던 이 모텔 방은 영화의 흐름뿐만 아니라, 현실의 흐름에서 붕 떠 정체된 이미지를 지닌다. 이후, 놀란은 영화의 배경을 알래스카로 넓혔지만, 여전히 그 공간의 폐쇄성에 천착한다. 하루종일 낮이 반복되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여기저기 빛뿐인 그 밝음 속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숨쉴 틈을 찾지 못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은 오히려 하나의 거대한 폐쇄적 공간이 되고 뿌옇게 피어올라 시야를 가리는 안개는 주인공을 드넓은 자연 속에 고립시킨다. 이 희뿌연 안개는 <배트맨 비긴즈>에서 무국적적 도시를 감싸는 황폐한 이미지들로 이어진다. 물론 여기에는 브루스 웨인의 대저택처럼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성을 상실한 듯한 공간이 있고 화려한 네온과 고속철의 역동성으로 꽉 막혀 오히려 썩어가는 듯한 고담시가 있다.

이처럼 특정한 공간에서, 특히 드넓은 공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폐쇄적인 이미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놀란이 자주 의존하는 것은 빛이다. 그것은 곧 어둠을 이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빛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어두운 공간보다 훨씬 더 암울하고 답답할 수 있음을 알며, 어둠뿐인 공간의 한줄기 빛이 전체를 밝게 만들 수 있음을 안다. 그리하여 그의 영화에서는 빛에 의해 어둠의 테두리가 느껴지는 순간들이 창조된다. 빛 혹은 어둠에 의해 질감을 얻은 놀란의 공간은 또 하나의 요소, 미세한 현실의 소리들에 의해 좀더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획득한다. 예컨대, <인썸니아>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귀에 울리는 극대화된 일상의 소리들이나 <배트맨 비긴즈>에서 고담시를 가로지르는 고속철의 쇳소리, 배트맨의 펄럭이는 움직임 소리 등은 날카로운 굉음처럼 부각되어 현실적 그림에서 벗어난다. 그 소리들은 외부로 분출되지 못하고 언제나 닫힌 공간 내부에서 메아리처럼 맴도는 느낌을 준다.

빛과 어둠, 광활한 대지와 삭막한 도시의 풍경, 그리고 현실성을 잃은 소리를 통해 놀란이 창조한 스펙터클은 언제나 ‘넘친다’. 그런데 이 넘침의 스펙터클은 화려한 볼거리와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여타의 광경들과는 차별된다. 놀란의 스펙터클은 과잉 속에서 건조함을 유지하고 과잉 속에서 무언가 결핍됨을 보여주는, 그 자체로 이중적인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스펙터클에는 특별한 클라이맥스 없이도 공간의 긴장을 포화상태로 지속시키고 그 과잉된 긴장을 언제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허무한 틈이 존재한다. 놀란의 공간은 긴장과 이완의 반복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 않고 과잉이 터져서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게 만든다.

적은 그들 안에 있다

감독 자신이 누누이 강조하듯, <배트맨 비긴즈>의 브루스 웨인은 아무런 초자연적인 힘을 갖지 못한 현실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배트맨의 특성은 놀란의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극단적인 환경에 내던져진 단독자이다. 여기서 이들이 초현실화된 공간 속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꽤 흥미롭다. 그들은 관념화된 상상력이나 판타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몸으로, 즉 지극히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부딪힌다. <메멘토>의 주인공은 자신의 온몸에 글자를 새기며 기억을 저장하여 거짓된 세상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인썸니아>의 형사는 동물적인 직관과 감각에 의존하여 낯선 공간을 견디어내며, <배트맨 비긴즈>의 웨인은 가면을 만들고 외투를 주문하고 탱크를 사들여 배트맨으로 변신한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몸에 생채기를 내며 이미 현실을 벗어난 어떤 현실과 맞선다. 그들은 그 어떤 현실에 끊임없이 대항하면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끝없이 그 어떤 현실 속으로 빠져든다. 그들은 패배하지도 않지만 영원히 승리하지도 못하며 언제나 적과 싸우지만 적을 완전히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몸은 늘 지독한 피로에 휩싸여 있다.

이는 놀란의 인물들이 결국은 자신이 주조한 세계에 고립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그들은 모두 어느 순간 자신이 만든 가짜 세계에 빠져 가짜 기억과 문서에 의존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썸니아>의 형사가 알래스카라는 위압적인 자연 속에서 보임과 보이지 않음의 경계를 상실하고 자신이 무엇을 쫓는지조차 혼돈스러워할 때, 브루스 웨인은 정의가 절대선이 되는 이상향의 세계를 꿈꾸며 홀로 영웅의 길로 진입한다. 그들은 현실에서 고립되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기만의 세계 속에 파묻혀 끊임없이 진실을 만들며 그 진실을 시험한다. 놀란은 이미 그의 장편 데뷔작, <미행>에서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누군가를 미행하기 시작하고 점차 미행 대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 스스로 갇혀버리고 마는 상황. 이는 놀란의 인물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강한 동력인 ‘적’의 존재가 외부에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적은 그들 안에 있다. 그것은 <배트맨 비긴즈>가 누차 강조한 두려움, 바로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메멘토>와 <인썸니아>에서 범인에게로 향했던 독살은 결국 주인공들 자신에게로 돌아오곤 했다. 그들은 자신이 주조한 세계와는 맞서 싸우지만, 정작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묻어 있는 기억의 흔적에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들이 범인을 쫓으며 꾸던 꿈은 언제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이었다.

그런데 <배트맨 비긴즈>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전작의 인물들처럼 적을 쫓으며 자기 내부로 치닫지 않는다. 웨인이 과거의 두려움을 이기고 만들어낸 세계는 개인적 상처를 합리화하는 곳이 아니라 공공의 선을 위한 정의로운 곳이다. 놀란은 분명 자기반성과 강인한 의지로 무장한 한층 성숙해진 캐릭터를 데려왔지만, 놀란의 외적 세계는 이전의 모호함을 깨고 좀더 명확히 암울해졌다. 두려움을 이긴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정의로운 이상향과 부패한 현실간의 좁혀질 수 없는 괴리감이다. 그가 두려움을 쓰러뜨리고 이상향에 대한 믿음을 꿈꾸는 순간, 그의 앞에는 영원한 승리가 아니라 그 괴리감에 의해 끊임없이 몸에 새겨질 생채기와 반복될 패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악몽의 끝, 위태로운 건강함

놀란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언제나 상실, 슬픔, 분노, 죄의식을 지나 복수의 길에 이르렀다. 납득할 수 없는 상실감이 복수의 길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공간은 정상적 궤도를 이탈하고 주인공들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피로한 형사처럼 같은 자리에서 맴돈다. 그들은 복수의 대상을 잃어버리고, 죄의식과 분노의 근거를 상실한다. 그리고 상실감은 지속된다. 그것은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도 여전히 악몽이 지속되는 듯한, 그러나 그 악몽의 내용을 기억할 수 없는 찝찝함이다. 놀란은 <배트맨 비긴즈>에 이르러 그 악몽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초현실로부터 새어나오는 현기증 나는 정서와 스스로의 정신과 육체를 혹사시키는 단독자의 이야기는 여전하지만, 그의 주인공은 실로 건강해졌다. 건강하지 않은 세상에서 건강해지려고 무던히 애쓰는 이 영웅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 시리즈라기보다는 ‘놀란적’ 세계의 과도기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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