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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꽃은 들러리 전문? <간큰가족>
2005-07-06
글 :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션 : 이관용
<간큰가족>, ‘남남북녀’의 눈물겨운 상봉에 ‘여성’은 없다

<간큰가족>은 남한사회의 통일에 관한 의식과 현실을 잘 보여준다. 첫째, 통일의 당위성은 여전히 민족적(혈연적) 동질성으로부터 나온다는 믿음, 둘째, 통일은 현실적으로 경제문제이며 미래의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인식, 셋째, 그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선 상존하는 군사적 위협(서해교전)과 적개심(“이런 놈들과 무슨 통일을 한다고”)을 눈속임해서라도 ‘평화’를 상연(上演)해야 한다는 통찰이 녹아 있다. 그러나 <간큰가족>이 누설하는 ‘우리 사회 통일론’의 진정한 비급(秘급)은 따로 있다. 남한사회의 가족질서와 통일사업을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으로 재현하는 이 영화는 우리 사회 통일 담론의 가부장적 성격과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상속법 바뀐 지가 언제인데, 장자상속이 웬말?

사건의 발단은 50억원 유산이었다. 그런데 처음 유산에 대해 들은 자도, 중간에 김 노인과 재론한 자도, 마지막 유서를 받는 자도 장남이다. 차남은 유산문제를 알고, 장남과 다투기도 하고, 이 사업에 열심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신윤동욱이 “남편의 유산을 직접 상속받지는 않는 부인”(508호)이라 쓸 만큼 상황에서 뒷전이다.

그러나 현행 민법에 따르면 처:장남:차남의 상속비율은 1.5:1:1(민법 제1009조)로 그녀는 가장 많은 액수(약 20억원)를 받게 되어 있으며, 통일부에 전액 기증한다는 유서가 있더라도 유류분 규정(민법 제1112조)에 의해 약 10억원을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 법정 상속액 15억원이나 유류분 7.5억원을 받을 수 있는 아들들에 비해 최대관계자이다. 영화 속 상황은 1958년에 제정된 민법을 바탕으로 한다. 호주상속자에 가중치를 두고, 여자는 남자의 반액을 인정하던 ‘쌍팔년도 법’에 의하면 처:장남:차남의 비율이 0.5:1.5:1로 그녀가 가장 무관해진다. 여성계와 여성 법조인들의 노력으로 1990년에 상속법이 대폭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상징적인 호주승계마저 없어진 지금, 시대극에나 나올 장자상속의 풍경이라니! 남편의 숨긴 재산과 남편의 북녘 가족의 존재로 경제적·정서적 소외를 겪으며, 통일 굿판에서 따돌려진 그녀는 남성중심의 통일론이 배제한 남한 여성의 상징이다.

통일 굿판에서 가장 혁혁한 공훈을 세우는 이는 여배우(신이)이다. 그녀는 ‘쇼단’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로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투자자/제작자/감독으로 이권에 직접 개입된 채권자/장남/차남과 달리 그녀는 이 사업을 통해 얻을 게 별로 없다. 그녀는 애초 차남에게 고용된 배우로서, 바뀐 시나리오대로 공연할 뿐이다. 그녀는 시종 일용직 노동자일 뿐 사업의 주체로 기획에 합류하지 못한다. 이는 남북한 양쪽에서 통일의 대의는 정치적/군사적/경제적/혈통적으로 남성들에게 선점당하고, 여성은 ‘통일의 꽃’ 혹은 들러리로 동원되는 현실의 유비이다.

북한 여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북한?

<휘파람 공주>, <남남북녀>, 미녀응원단, 최근 CF의 조명애에 이르기까지, 남한이 만나고자 하는 북한은 주로 여성으로 표상된다. <간큰가족>에서도 북녘가족은 처와 딸이다. 여기엔 성별화시켜 대상화하는 제국주의 혹은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숨어 있다. 즉 북한을 여성, 그것도 ‘순결한 전통 여성’의 이미지로 그리며, 주체적인 남한 남성의 ‘보호의 손길’로 껴안겠다는 권력적 욕망이 투사된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전통적인 여성관과 1인 숭배 체제가 유지시킨 가부장제는 남한 남성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성차적 고민없이 ‘민족적 동질성’만을 강조하는 통일운동은 자칫 남북의 ‘가부장적 통일’을 이뤄낼 공산이 큰 것이다.

비슷한 설정의 <굿바이 레닌>은 동독 여성을 이미지화하는 대신, 동독 여성의 입장에서 통일을 바라본다. 영화는 서독에 의한 통일을 사회주의 체제에 의한 통일로 가장하는데, 이는 통일 뒤 일자리와 정치참여를 잃고, 서독 여성들로부터도 반목당했던 동독 여성들에게 ‘통일자체’보다 ‘어떤 통일인지’가 더 중요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간큰가족>이 노정하는 핏줄에 호소하는 ‘감상적 통일론’과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리라는 ‘실리적 통일론’(경의선은 경제입니다!)은 성차와 계급의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더욱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남한 여성을 배제하고, 통일운동의 들러리로 세우면서 행해지는 남한 남성들의 ‘한핏줄 찾기’ 혹은 ‘다소곳한 북녀(北女) 만나기’ 프로젝트는 북한 여성들을 식민화하고, 북한 남성들을 열패감에 빠뜨리며, 남한 여성들의 숨통을 조르는 기획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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